[TBS 역사스테이 흔적] 인천 부평구, 일제 강제 징용의 역사, 일본군 조병창과 지하호
우리 근. 현대사에서 인천은 서양의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교류를 한 개항장으로 그 의미가 있다. 비록 개항이 1876년 일본과의 불평등 조약이었던 강화도 조약의 산물이었지만, 인천은 그때 합의한 부산, 원산에 이어 3번째 대외에 문을 연 항구였다. 인천은 그 위치가 수도 서울과 인접해 있어 서구 문물의 전파 속도가 빨랐고 파급력도 컸다. 가장 먼저 철도가 들어왔고 전기, 전화가 들어왔다. 다수의 외국 상인들이 인천을 기반으로 무역활동을 했다. 이미 조선 후기부터 인천은 국제 무역항의 면모를 보였다. 그 속에서 인천은 시대 변화와 함께했다. 하지만 인천은 그 발전과 함께 일제 강점기 일제 수탈의 최 일선에 있었던 아픈 역사도 있다. 조선 후기에는 경제 침탈의 전진기지였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조선에..
문화/미디어
2022. 7. 2. 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