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 정철과 윤두수가 주축이 된 세자 책봉을 둘러싼 비밀 회합은 선조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서먹한 자리가 된다. 선조는 서인의 영수 정철과 윤두수, 동인의 영수 이산해, 류성용에게 붕당 간의 대립에 대해 경고했다. 선조는 강력한 왕권을 신하들이 뒷받침해줄것을 은연중 내비쳤다. 당연히 선조의 후계자, 즉 세자 책봉을 위한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하지만 서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강력한 왕권을 원하는 선조와 정치적 동반자가 될 수 없었다. 신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차세대 권력이 필요했다. 그들은 미래 권력만큼은 서인의 정치 성향과 맞는 인물이 필요했다. 서인이 원하는 세자 후보는 광해군이었다. 서인은 이러한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동인과 관계에 있어 유화책을 펼쳤다..
jtbc 의학 드라마 라이프가 9월 11일 16회를 끝으로 종영됐다. 애초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드라마 비밀의 숲, 작가의 작품이었고 조승우, 이동욱 등 호화 캐스팅으로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상당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의 전개 과정에서 그 평가는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그 결말 역시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드라마는 상국 대학교 병원을 배경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 예진우와 새롭게 사장으로 부임한 구승효의 대립 구조가 큰 축이었다. 예진우는 어릴적 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하고 동생이 하반신 불구가 된 기억이 끝없이 그를 괴롭히고 있지만, 의사로서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이런 배경에는 어릴 적 동생의 사고에 대한 자책감으로 힘들어하던 그를 따잡아준 상국대학교 정신과 전문의이자 병원장이 있었다. 하..
임진왜란을 다룬 역사 드라마 징비록이 시작됐다. 징비록 1, 2회는 임진왜란 이전 조선 정치 상황과 일본의 상황이 함께 그려졌다. 당시 조선은 선조 즉위 이후 가시화된 동인과 서인의 정치적 대립 속에 동인 정권이 주요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징비록의 저자이자 주인공 류성룡은 선조의 두터운 신임 속에 조정의 요직에 있으면서 집권세력인 동인의 중심인물이었다.당시 임금이었던 선조는 직계 혈족이 아닌 방계 혈족으로 임금에 올라 정통성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었다. 왕권은 미약했다. 하지만, 선조는 명나라로부터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공인 받으면서 왕권에 확립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선조는 당시 동인에 밀려 권력에서 멀어진 서인을 이용해 비대해진 동인 세력을 숙청했다.서인은 동인 계열의 정여립이..
수많은 이들을 설레게 했던 드라마 도깨비가 막을 내렸다. 결말은 시청자 다수의 바람대로 모든 주인공들의 행복한 결말이었다. 물론, 영생의 삶을 살고있는 도깨비와 인간에게 주어지는 4번의 삶 중 2번째 삶을 살게 된 그의 도깨비 신부와 또 다시 아픈 이별을 해야하는 운명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사랑이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사람들을 가지면서 결말을 지켜봤다. 도깨비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사랑은 거의 1,000천년의 세월을 초월하고 있다. 주인공 김신은 고려시대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장군으로 그의 여동생은 황태후의 자리에 있었다. 당연히 권력에서 그는 최정점에 있는 인물이었고 그에 비례해 그를 견제하고 시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박중원을 중심으로 한 간신 세력은 황제 ..
지난 1, 2, 3회를 통해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함께하는 팩츄얼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로 임진왜란을 조명했던 드라마 임진왜란 1592, 그 네 번째 이야기는 명나라의 참전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전쟁 전 명나라를 비롯한 조선, 일본의 상황과 전쟁 후 명나라의 참전 과정, 명나라군이 참여했던 대표적 전투인 평양성 전투가 주 내용이었다. 그 속에서 명나라의 참전 배경과 한.중.일의 역학관계가 함께 조명됐다. 임진왜란 발발의 주요 원인은 알려진 대로 일본을 통일한 실력자 토요토미의 야욕이었다. 도요토미는 일본을 통일하긴 했지만, 여전히 지방의 실력자들은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을 모두 힘으로 누를 수 없었던 상황에서 토요토미는 일본을 벗어나 외부로 눈을 돌렸다. 도요토미는 집권 이..
조선 천문 프로젝트가 정치적 문제로 좌절된 이후 은둔의 삶을 살았던 장영실이 다시 돌아왔다. 당연히 그를 시기하고 제거하려 했던 대신들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편경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한 그의 관직 재 등용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리학을 숭상하는 조선에 있어 아악은 성리학적 이념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문제는 아악을 구성하는데 있어 음의 표준이 되는 편경이 음 구현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는 아악의 근본을 흔드는 것으로 조선왕실에는 큰 근심이었다. 각 분야에서 나라의 표준을 만드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었던 세종에도 이는 중요한 문제였다. 세종은 아악의 책임자 박연으로 하여금 정확한 음을 구현하는 편경 제작을 하도록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