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영국의 발명가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상용화하면서 시작된 영국의 산업혁명은 인류사적으로 큰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이었다. 석탄을 원료로 한 동력 기관을 이용해 자동화 설비가 가능해졌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생산성 향상을 이룰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혁명적 변화였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가능하게 했다. 영국은 급속한 산업화에 성공했고 세계에서 가장 먼저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
산업화의 진전과 함께 영국은 증기 기관차를 이용한 철도 등 교통 인프라가 급속히 발전했고 지하철이 등장하면서 도시 교통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인적, 물적 교류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게 했다. 국가의 발전은 나라의 부와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은 세계질서를 선도하는 초강대국이 됐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서 전 세계에 걸쳐 식민지를 구축했다.
이렇게 나라는 크게 발전했지만, 산업혁명 시기 산업화의 최하단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산업혁명 시기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이 일상화됐다. 노동환경은 극도로 열악했다. 생활 환경 역시 최악이었다. 산업화와 함께 도시가 발전하고 그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와 새로운 기회를 위해 몰렸지만, 그렇게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은 빈민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실제 산업화의 과실은 소수의 자본가와 상류층 인사들의 몫이었다. 인류 생활 전반을 발전시킨 산업혁명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한층 커진 빈부격차와 노동자들의 어려운 삶이 극단적으로 공존했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더디지만 노동자들의 삶도 조금씩 나아졌다. 특히, 기술을 가진 숙련공들은 조금이나마 더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노동법의 개정과 노조활동이 활성화되면서 노동자들은 그들의 고용주, 자본가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또한, 사회 전반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여론도 커졌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상승하고 노동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휴일 휴식도 보장되고 참정권 등 시민으로서의 권리 확대도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노동자들은 점점 여가시간을 가질 기회가 많아졌다. 그 시간을 통해 노동자들은 그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노동자들의 시선은 축구로 향했다. 축구는 장비가 그리 필요치 않고 넓은 운동장만 있으면 많은 이들이 할 수 있었다. 축구 종주국인 영국에는 축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있었다. 이렇게 하나 둘, 노동자들은 우리의 조기축구회같이 여가 시간에 축구를 하기 시작했고 축구팀을 조직해 대결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각 지역 축구팀이 대결하는 리그가 형성됐다.
하지만 영국에서 축구는 귀족들과 상류층이 심신을 단련하는 수단이었다. 철저하게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신사들의 스포츠였다. 이런 축구에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건 귀족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 와중에 축구는 점점 노동자들의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지만, 영국 내 주류 사회의 축구에 대한 인식은 럭비나 크로켓, 폴로, 조정 같은 귀족 스포츠에 비해 비중이 크지 않았다. 심지어 가난한 노동자들이나 하는 천하고 야만적인 스포츠라는 인식도 있었다.
이런 사회적 인식에도 영국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이 적극 참여하는 축구는 점점 그 규모가 커졌다. 노동자들은 일과 운동을 병행하는 축구클럽을 만들었고 그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노동자들이 경기장으로 몰렸다. 주말이면 그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고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조직한 축구 클럽도 등장했다. 영국의 작은 도시 다웬에서 만들어진 다웬 FC라는 구단은 작은 방직공장의 노동자들이 주축이 됐다. 1878년 다웬 FC는 영국 축구 교회 교인들이나 대학생들이 주축을 이뤘던 팀들을 누리고 8강 토너먼트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들의 승리 의지는 전문 선수의 영입으로 연결됐다. 당시 축구 선수들은 일과 운동을 병행하는 게 보통이었다. 대부분 노동자들은 일주일 내내 일하고 주말을 이용해 축구를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류층들이 주축을 이루는 팀들과의 대결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웬 FC는 전문 선수를 영입하며 축구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퍼거스 수터였다. 그는 석공 노동자였지만, 축구를 직업으로 삼는 프로 축구선수로 됐다. 그는 영국 축구 역사에서 최초의 프로 축구 선수로 자리하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또 다른 노동자 축구팀이 생겨났고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축구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 FC가 이에 속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맨체스터 지역에서 1878년 중산층 노동자들이 모여 시작됐다. 이들은 애초 쉬는 시간 여가 선용이 주 목적이었지만, 프로 축구 구단으로 발전했고 1902년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구단 이름을 가지게 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프로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구단 중 하나로 손꼽힌다. 프로 축구 리그에서 많은 우승 이력을 쌓았고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이 팀을 거쳐갔다. 우리나라 축구의 대표적 스타인 박지성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최 전성기를 보냈고 우리 축구사에 남을 이력을 쌓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58년 선수단의 비행기 추락 사고라는 큰 비극을 이겨낸 구단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는 원정 경기장이 있는 유고슬라비아로 향했다. 그 과정에 경유지 독일 뮌헨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세계 축구사에서도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이 뮌헨 참사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은 큰 타격을 입었지만, 빠르게 팀을 재건하고 영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축구를 선도하는 유명 구단으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북 런던을 연고로 하고 있는 영국 프로 축구의 또 다른 명문 클럽, 아스널 FC 역시 그 시작은 노동자들의 연합이었다. 아스널 FC는 과거 왕립 무기고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팀이었다. 아스널 FC의 엠블럼에는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포 모양이 있다. 아스널 FC는 1891년 독립구단으로 발전했고 1913년 지금의 아스널 FC로 구단 이름을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후 아스널 FC는 은 영국 축구리그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그 입지를 단단히 하고 있다. 아스널 FC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 축구 스타인 손흥민이 속한 같은 토트넘과 지역 라이벌로 우리 축구팬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런 변화는 축구의 대중화로 연결됐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조직한 또는 지역의 프로 축구팀을 열렬히 응원했고 주주로 참여하기도 했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박봉이지만, 돈을 아껴 경기를 보러 경기장을 찾았다. 점차 축구는 귀족 등 여유 있는 계층들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팀을 응원하면서 삶의 고단함을 순간 잊고 활력을 얻었다. 노동자들에게는 그들의 주체가 된 팀이 귀족들과 상류층들이 중심을 이룬 팀에 승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노동자들은 축구장에서만큼은 그들이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노동자들은 마음껏 소리 지르고 상대 팀에 야유를 보낼 수도 있었다. 조금 거친 응원도 용인됐다. 축구장은 하나의 해방구였다. 이에 많은 관중들로 채워졌다. 노동자들은 축구를 통해 내면에 쌓였던 어려 울분들을 털어낼 수 있었다.
이는 사회적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됐다. 일부 과격한 팬들이 홀리건 형태로 나쁘게 발전하기 했지만, 건전한 여가선용의 장으로서 축구장은 순기능을 담당했다. 영국에서 축구는 지역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늘어나는 축구 팬들의 수는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높였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경기장으로 모여드는 스포츠인 축구는 빠르게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속된 말로 돈이 되는 사업에 자본의 유입을 불러왔다. 영국 프로 축구에는 노동자들이 많은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팀들이 창단되어 경쟁했고 그 팀이 너무 많아 1부 리그 2부 리그의 식의 승강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선수들의 모습도 변화했다. 과거 일과 축구를 병행했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축구만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 선수들이 늘어났다. 축구만 잘하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프로 축구 선수들 중 일부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됐고 그들이 축구의 인기를 견인했다. 이에 초기 열악했던 선수들에 대우와 처우도 크게 개선됐다.
이런 배경과 함께 하는 현재 EPL이라 불리는 영국 프로 리그는 세계 최대 프로 축구 리그로 성장했다. 그 안에서 움직이는 돈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선수들의 연봉과 구단을 옮길 때 책정되는 이적료 역시 전 세계 프로스포츠에서 최고 수준이다. 전 세계 축구 선수들이 선망하는 리그가 EPL이다.
이렇게 축구는 역사의 발전과 그 맥을 함께 한다. 만약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가 없었다면 축구는 귀족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과 같은 거대한 시장도 없었다. 축구는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계층이 된 노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대중화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러한 대중성과 자생력은 영국 프로 축구를 든든하게 지키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런 영국의 프로 축구 모델은 이후 전 세계 프로 축구 리그의 표준이 됐다.
이는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축구까지 국가 주도로 재벌기업들이 자본을 투입해 시작한 우리 프로스포츠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리그가 시작된 후 수십 년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자생력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우리 프로 스포츠의 현실과 비교하면 매우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영국 프로 축구의 역사는 프로스포츠 발전을 위해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영국 프로 축구의 역사 속에는 프로 스포츠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나와있다. 대중과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프로스포츠가 팬들이 중심이 되는 모두의 스포츠로 발전한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다.
사진 : 픽사베이 / 위키백과,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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