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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과 롯데를 거친 베테랑 투수 노경은에게는 풍운아라는 별명이 붙는다. 그만큼 프로야구 선수로서 그의 이력은 평범하지 않았고 다사다난했다. 밝게 빛나는 시간은 길지 않았고 시련의 연속이었다. 가끔은 괴짜와도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베테랑들이 홀대받는 최근 프로야구 흐름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1984년생,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39살이 되는 이 투수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는 시선이 여전하다. 

올 시즌 후 노경은은 야구 인생의 큰 고비를 맞이했다. 2016 시즌부터 함께 했던 롯데와의 FA 계약이 끝난 이후 노경은은 더는 롯데와 인연을 이어갈 수 없었다. 젊은 팀으로서의 팀 리빌딩을 지속하고 있는 롯데는 최근 수년간 우월한 기량이 아니라면 베테랑들보다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특히, 마운드는 젊은 선수들이 점점 그 주축을 이루고 있다. 노경은도 그 변화 속에 점점 자리를 잃어갔다.

시즌 노경은은 1군에서 14경기 등판에 그쳤고 성적도 3승 5패 방어율 7.35로 부진했다. 노경은은 제5선발 투수 경쟁군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페이스를 빠르게 끌어올리지 못했다. 선발 등판 기회가 있었지만, 내용은 좋지 않았고 1군과 2군을 오가는 상황에 몰렸다. 그 중간 부상으로 인한 공백기도 있었다. 노경은이 자리를 내준 사이 롯데 선발 마운드는 외국인 투수 2명에 박세웅의 3선발로 자리했고 이승헌, 서준원, 시즌 후반기에는 이인복이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됐다. 노경은의 자리가 없었다. 

롯데는 선발 마운드가 시즌 내내 불안정했지만, 노경은을 대안으로 적극 활용하지 않았다. 시즌 후반기 선발 마운드가 붕괴되는 상황에서도 노경은은 1군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롯데는 후반기 불펜 투수로 노경은의 활용 가능성을 찾아보려 했지만, 불펜 투수 노경은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노경은은 9월 5일 NC전 등판 이후 더는 1군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노경은은 2군에서 몸을 다시 만들었고 퓨처스리그에서도 꾸준히 선발 등판하며 1군 등판을 위한 준비를 지속했지만, 롯데는 사실상 그를 전력 외로 분류했다.

 

 

노경은

 


롯데는 올 시즌 성적도 중요했지만, 젊은 투수들이 더 많은 경험을 쌓는데도 신경을 쓰는 리그 운영을 했다. 이런 구단 운영의 프로세스 변화 속에 노경은은 점점 소외됐다. 노경은은 시즌 후 젊은 선수들이 주로 출전하는 교육리그 마운드에도 오르는 열정을 보였지만, 롯데는 그와의 이별을 택했다. 

이제 30대 후반의 나이인 노경은으로서는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미 그보다 훨씬 어린 30대 선수들 상당수가 방출 후 은퇴를 길을 가는 게 보편화된 최근 프로야구 현실에서 노경은이 현역 선수로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노경은은 포기하지 않았다. 노경은은 여전히 140킬로 중반을 넘어서는 직구 구위가 살아있고 국내 투수들로서는 거의 유일한 너클볼에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는 투수다. 올 시즌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고 부상이 겹치면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면도 분명 있었다.

이런 노경은에게 SSG 랜더스가 관심을 보였다. 노경은은 마무리 캠프에서 테스트를 거쳐 입단이 확정됐다. 노경은으로서는 세 번째 프로구단이다. SSG로서는 노경은의 30대 후반의 나이지만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 SSG는 내년 시즌에도 선발 마운드에 고민이 크다. 수술 후 재할 중인 국내파 선발 투수 박종훈, 문승원의 재활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후반기에나 선발 등판이 가능하다. 여기에 외국인 투수 2명의 자리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사실상 선발 마운드를 원점에서 재 정비해야 하는 SSG다. SSG는 가능하면 많은 선발 투수를 확보하는 게 필요했다.

노경은은 경험이 풍부하고 언제든 선발 등판이 가능하다. 많은 나이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이미 SSG에는 1982년생 외야 듀오 추신수, 김강민이 건재하고 라인업 곳곳에 베테랑이 다수 존재한다. 베테랑 선수들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SSG는 구단 운영 방침이 리빌딩보다는 성적에 집중하는 윈나우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당장 내년 시즌 즉시 전력감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이런 SSG의 필요와 현역 선수 생활 연장에 대한 의지가 강한 노경은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노경은은 프로에 데뷔 한 두산 시절 최고 유망주 투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성장이 더디면서 구단을 애태우게 했다. 2003 시즌 두산의 1차 지명 선수로 입단한 유망주는 2011시즌까지 선발과 불펜 어디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말년 유망주, 노망주로 남을 수 있는 상황까지 몰렸다. 

2012 시즌 노경은은 강력한 선발 투수로 완벽히 변신했다. 투구폼을 수정하면서 제구를 잡았고 일전한 투구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기존의 빠른 직구에 날카롭게 떨어지는 포크볼의 조합이 이상적으로 결합했다. 그해 노경은은 12승 6패 방어율 2.53으로 사실상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2013 시즌에도 노경은 다소 주춤했지만, 10승 10패 방어율 3.84로 선발 투수로 완벽히 자리를 잡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14 시즌 노경은은 깊은 부진에 빠졌다. 꾸준히 선발 등판하긴 했지만, 3승 15패 방어율 9.03으로 무너졌다.

2015 시즌에도 노경은의 부진은 계속됐다. 그의 짧은 전성기가 이대로 저무는 듯 보였지만, 노경은은 한국시리즈 호투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해 두산은 당시 최강팀 삼성을 밀어내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두산은 준 플레이오프에서 시작해 한국시리즈에 올라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극적인 업셋 우승에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노경은이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이런 기대에도 노경은은 좀처럼 제 페이스를 찾지 못했다. 2016 시즌 노경은은 승리보다 패전을 훨씬 더 많이 쌓는 선발 투수였다. 노경은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던 두산도 더는 그에게 선발 투수의 역할을 맡기지 않았다. 절대적이었던 두산에서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2군행을 통보받았다. 트레이드 대상에 올라 팀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런 구단의 방침에 노경은은 크게 반발했고 은퇴의 가능성까지 보였다. 그 과정에서 노경은과 두산의 갈등이 깊어졌다. 더는 두산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긴 어려웠다.

결국, 노경은은 롯데 투수 고원준과 트레이드되면서 팀을 옮겼다. 롯데는 보여준 게 있었던 노경은에 큰 기대를 했다. 그가 환경을 바꾸고 심기일전하면 부활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하지만 노경은 롯데에서도 선발 투수로서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못했다. 2016 시즌 3승 12패로 부진했고 2017 시즌에도 2패의 기록만 남겼다. 등판은 9경기에 불과했고 방어율도 두 자릿수로 1군에서 도저히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다. 은퇴라는 말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위기에서 노경은은 2018 시즌 깜짝 활약을 하며 부활했다. 기존의 직구와 포크볼 위주의 투구 패턴을 버리고 다양한 변화구와 강약을 조절하는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다.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국내 선수들에 생소한 너클볼까지 장착한 노경은은 매우 효율적인 선발 투수가 됐다. 노경은은 불펜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시즌 중반 이후 선발 로테이션에 안착했다. 노경은은 긴 부진의 세월을 이겨내고 9승 8패, 방어율 4.08을 기록했다. 그해가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의 최절정기였음을 고려하면 매우 준수한 성적이었다.

당시 롯데 마운드가 전체적으로 부진한 상황인 탓에 노경은의 투구는 매우 빛났다. 긴 부진의 터널을 벗어난 노경은에게 롯데 팬들은 노경은총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붙여주며 응원했다. 마침 그 해는 그가 FA 자격을 앞둔 시즌으로 FA로서의 가치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노경은의 야구 인생은 순탄하게 풀리지 않았다. 2019 시즌을 앞둔 FA 시장에서 노경은은 주목받지 못했다. 30대 후반의 나이가 중요한 걸림돌이었다. 2018 시즌의 호성적이 잠깐의 반등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영향을 줬다. 여기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보상 선수 보상금 규정이 FA 노경은의 선택지를 좁히고 말았다. 싸인 앤 트레이드의 문도 열리지 않았다.

노경은의 협상 창구는 원 소속팀 롯데 외에 없었다. 롯데와 노경은은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는 시점까지 협상을 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노경은은 FA 미아가 되고 말았다. 롯데는 마지막 조건에서 더는 변화된 제안을 하지 않았고 노경은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 물로서지 않았다. 이런 경우 선수가 구단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시즌을 준비하는 게 보통이지만, 노경은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시즌을 통째로 날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했다. 이후 노경은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서 마이너리그 팀 입단을 타진하기도 했고 나름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초조할 수 있는 상황에도 노경은은 몸을 만들며 마운드에 설 준비를 했다. 

마침 2019 시즌 롯데는 투. 타에서 극심한 부진에 빠지며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노경은과의 FA 계약을 체결하기를 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롯데가 원칙을 지킨다며 방치한 노경은의 이름이 팬들 사이에서 터져 나올 정도로 롯데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만큼 2018 시즌의 임팩트가 강렬했다. 

롯데와 노경은의 교착상태는 2019 시즌 후반기 단장이 교체되면서 풀렸다. 시즌 막바지 노경은은 극적으로 롯데와 2년의 FA 계약을 맺었다. 이후 그는 경기 감각 회복을 위해 호주 윈터 리그에서 등판하며 다음 시즌을 대비했다. 1년여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 1년이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2020 시즌 노경은은 25경기 등판해 5승 10패 방어율 4.87을 기록했다. 아쉬움이 있었다. 2018 시즌보다 전체적으로 퇴보한 성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타선의 지원 부족과 불펜진의 난조 등 승운이 따르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를 우려할 수 있는 결과였다.

여기에 노경은의 다양한 변화구 위주의 투구 패턴이 분석된 것도 영향을 줬다. 이는 롯데가 노경은에 대한 평가에 있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올 시즌 노경은은 1군 전력에서 서서히 멀어졌고 기회의 우선권은 젊은 투수들이 가져갔다. 노경은 역시 이런 변화 기류를 분명 알고 있었지만, 2군에서 실전 경기에 나설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하며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노경은에게 주어진 기회는 크게 줄었다. 

 

노경은

 


올 시즌 후 노경은은 롯데와 인연을 정리했다. FA 계약은 종료됐고 롯데는 그의 보류권을 풀었다. 그에게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차례 경험했던 은퇴의 갈림길에 다시 섰다. 노경은은 포기보다 도전을 택했다. SSG의 필요가 맞물리며 그는 내년 시즌을 선수로서 준비할 수 있게 됐다. 노경은은 변화구 위주의 투구에서 다시 구속을 회복한 직구를 주 무기로 하는 투구 패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실제 연습경기에서 노경은은 전성기를 연상하게 하는 직구 구속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나이는 이제 40살을 향하고 있다. 한두 번 호투를 할 수 있지만, 시즌 내내 지속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SSG 역시 다수의 젊은 투수 유망주들이 있어 그들에게 우선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SSG에게 노경은은 투수진의 뎁스를 두껍게 하고 만일에 대비하는 보험용 성격이 강하다. 이는 노경은에게 주어질 기회가 한정적이고 그 기회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다시 1군에서 멀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전히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건 변함이 없다. 노경은으로서는 생존을 위해 스프링캠프부터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베테랑에게는 버거운 일이지만, 노경은은 도전을 택했다. 

풍운아라는 말이 딱 맞는 굴곡진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한 노경은이었다. 다른 선수 같으면 이미 은퇴 후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고비에도 노경은은 버티고 또 버텨냈다. 수많은 베테랑들이 세월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지는 와중에도 노경은은 그 투수로서 마운드에 서고 또 섰다. 여전히 그는 쓰임새가 있는 선수로 인정됐고 현역 선수의 이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가 롯데로 트레이드되었을 당시 트레이드 카드로 두산으로 건너갔던 20대 투수 고원준이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2시즌 이후 조용히 은퇴한 것과는 크게 대조되는 노경은의 모습이다. 

노경은은 자신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순간까지 선수 생활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어찌 보면 고집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노경은이 다시 기회를 잡았다는 건 그의 매력이 여전히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노경은이 이제 마지막일 수 있는 기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을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만큼 마운드에 서고 후회 없이 선수 생활을 정리할 수 있을지 분명한 건 노경은은 아직 그의 현역 선수로서의 야구를 끝낼 마음이 없다는 점이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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