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이 쇼트트랙 강국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냈다. 쇼트트랙 마지막 날 경기에서 대표팀은 남자 5,000미터 계주에서 은메달, 여자 1,500미터에서 최민정이 금메달을 수확했다. 한국은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따냈다. 이전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의 성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수많은 악재를 이겨낸 결과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쇼트트랙의 선전으로 한국 선수단은 목표로 했던 금메달 2개 이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됐다.
쇼트트랙은 평창 올림픽 이후 내부의 문제들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 전 국민이 다 아는 특정 대학교 출신들과 그 반대편에 있는 세력 간 파벌 싸움이 여전했다. 이 문제 속에 쇼트트랙은 승부 조작과 관련한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대표팀 선발과 관련한 잡음도 계속됐다.
심지어 선수들 간 이력 관리를 위해 대회 출전의 편의를 봐주거나 출전을 조절하는 일도 있었다. 선수들을 잘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선수들도 파벌싸움의 주체가 되고 말았다. 선수들은 출신 대학별로 별도로 훈련을 한다던가 코치가 다른 상황 속에 놓였다. 그때문에 대표팀 남자 선수 중 일부가 여자 선수와 훈련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동계 올림픽에서 최고의 효자 종목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쇼트트랙은 그런 내부 문제들로 점점 여론의 지지를 잃어갔다. 메달의 영광이 퇴색되고 말았다.
2014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 빅토르 안, 안현수에 대한 국민들의 성원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안현수는 올림픽 3관왕 출신의 대표팀 에이스였지만, 부상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그는 부상 회복과 함께 대표팀 복귀를 기대했지만, 제대로 된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양보와 은퇴를 강요당했다. 현역 선수로서의 의지가 강했던 안현수의 선택은 러시아 귀하였다. 그는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소치 올림픽에서 다관왕에 오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러시아 선수로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안현수의 모습은 쇼트트랙의 각종 문제를 함축하는 일이었다.
악화된 여론 속에 빙상연맹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내부 자정 노력을 하고 공정한 선수 선발과 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모습을 보였지만, 오랜 세월 굳어진 악습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었다. 여전히 파벌 문제의 핵심 인사는 빙상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그를 따르는 세력과 그렇지 못한 세력 간 관계는 언제든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평창올림픽의 성과로 그 문제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 뿐이었다.
쇼트트랙의 문제는 예상치 곳에서 터져 나왔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자팀의 코치가 특정 선수에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 코치는 그와 관련한 징계를 받고 대표팀을 떠났다. 상응하는 현사 처벌도 받았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는 폭행한 선수를 미성년자였던 시절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 선수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그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코치는 국내에서 입지를 잃고 중국 쇼트트랙 코치로 활동할 예정이었다. 피해 선수는 국제 경기 등을 통해 가해자를 지속적으로 만나야 하는 상황은 고통스러웠고 진실을 밝혔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이었다. 직위와 힘을 이용한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스포츠계도 예외는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사실 스포츠계에서는 그동안 지도자들의 폭력 행사와 가혹행위 외에 여성 선수들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만연해 있었다. 하지만 피해 선수들은 상하관계가 엄격하고 인력풀이 좁은 스포츠계의 현실 속에서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이력을 이어가기 위해 부당함을 참아내야 했다. 그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묻혀왔다. 피해 선수의 용기는 관련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고 그 선수는 큰 찬사를 받았다. 그 선수는 큰 충격을 딛고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계주 금메달에 일조했고 이후에도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당당히 대표팀에 선발됐다.
이런 그에게 또 다른 이면이 있었다는 건 대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언론 등을 통해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그 선수는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대표팀 에이스 최민정과 동료 선수들에 대한 음해성 발언을 지속했다. 그와 친한 관계였던 모 코치와의 SNS 대화에서 해당 발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고의적으로 경기 중 최민정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심지어 다른 나라 선수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남기거나 계주에서도 승부조작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최민정은 경기 중 그 선수와 충돌하며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그 말과 사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용기 있는 피해자였던 그 선수는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그를 지지하고 크게 성원했던 국민들은 큰 실망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와 한 팀을 이루고 있었다는 건 선수들에게 특히, 최민정에게 큰 충격이었다.
최민정은 성폭력 피해 선수의 재판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 선수의 법정 증언은 이후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최민정에 대한 그 선수의 마음이 결코 일시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최민정은 쇼트트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특정 대학교와 무관한 선수다. 파벌이 아닌 실력으로 대표팀에 선발됐고 최고 자리에 올랐다. 최민정과 그 선수는 동료로서 라이벌로 발전적인 경쟁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선수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최민정은 평창 올림픽에서 충돌의 여파로 부상을 입었고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최민정은 인간적인 배신감과 함께 동료 선수로서의 신뢰를 잃은 그와 함께 할 수 없었다. 매우 단호한 태도로 그 선수의 대표팀 합류를 반대했다. 충분히 이해 가는 일이었고 여론의 지지도 받았다. 결국, 그 선수는 대표팀을 떠났고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최민정으로서는 마음의 짐을 덜고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문제 선수는 남자부에서도 있었다. 그 선수는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베이징 올림픽에서 유력한 메달 후보였다. 하지만 그는 훈련 과정에서 여성 선수들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후배 선수의 바지를 벗기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과거에는 장난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시대는 변했다. 그 충격과 모멸감으로 후배 선수는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후배 선수는 가해 선수를 고소했고 이 문제가 공론화됐다. 결국, 가해 선수는 대표팀에서 제명됐다. 왜곡된 선후배 관계와 불러온 일이었다. 그 선수는 이후 중국으로 귀화하며 중국인으로서 큰 충성심을 발휘하는 중이다. 그때 피해 선수는 남자 대표팀 에이스로 성장했다. 그 이름은 황대헌이었다.
이렇게 대표팀에는 동료에게서 크게 배신당하고 아픔을 겪은 두 명의 에이스 있었다. 그들에 대한 가해자들은 대표팀에서 큰 몫을 담당하는 선수들이었다. 이에 대표팀 전력 약화에 다한 우려가 컸다. 역대 쇼트트랙 대표팀 중 가장 약하다는 평가 속에 그만큼 그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 컸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개최국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견제였다. 중국은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한국 대표팀 감독을 영입했고 러시아 인이 된 안현수를 코치로 영입했다. 다분히 한국을 의식한 일이었다. 이런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견제는 심각한 편파 판정으로 이어졌다.
최민정과 황대헌은 함께 출전한 혼성 계주에서 편파 판정을 실감했다. 직접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중국은 실격 사유가 될 상황을 모면하고 결승에 올랐다. 개인전에도 편파 판정은 이어졌다. 황대헌은 자신이 출전한 남자 쇼트트랙 1,000미터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에 희생되며 준결승에서 실격당했다. 편파판정의 수혜를 입은 중국은 혼성 계주와 남자 1,0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를 두고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언론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선수단 역시 강하게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최민정은 쇼트트랙 여자 500미터에서 경기 중 미끄러져 탈락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나라들의 급성장이었다. 남자부는 편파판정을 등에 업은 중국에 헝가리와 캐나다 등 여러 나라들의 기량이 돋보였다. 여자부는 네덜란드의 전력이 막강했다. 이런 상황은 쇼트트랙의 메달 전망을 어둡게 했다. 선수단 전체에도 암운이 드리웠다. 지난 올림픽에서 메달을 수확한 설상 종목과 트랙 종목은 코로나 상황과 지원 감소 속에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 당연히 메달 전망도 밝지 않았다. 유력한 메달 후보였던 스노보드 이상호마저 아쉽게 탈락했다.
메달이 나올 수 있는 종목은 빙상뿐이었다. 쇼트트랙은 스피드 스케이팅과 함께 그 중심이었다. 하지만 여러 악재들이 쇼트트랙을 흔들었다. 이 위기에서 에이스들이 큰 힘을 발휘했다. 황대헌은 남자 1,500미터에서 압도적 기량으로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남자 대표팀은 메달이 어렵다는 전망을 깨고 남자 5,000미터 계주에서 은메달의 성과를 냈다.
여자부도 최민정을 중심으로 힘을 냈다. 최민정은 여자 1,000미터에서 은메달을 차지했고 여자 3,000미터 계주에서도 은메달을 이끌었다. 올림픽에서 대부분 금메달을 차지했던 여자 3,000미터 계주였음을 고려하면 아쉬운 결과일 수 있었지만, 최민정 투 톱을 이룰 선수의 개인적 일탈에 따른 대표팀 탈락, 주전급 선수의 부상 이탈로 약해진 전력을 고려하면 큰 성과였다.
힘든 상황을 이겨낸 쇼트트랙 여정의 마지막은 최민정이 장식했다. 최민정은 주 종목인 여자 1,500미터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예선에서는 장기인 후반 폭발적인 질주로 하위권에서 선두로 치고 나오는 전략을 선보였고 결승전에서는 이전에 없었던 중반 이후 선두에서 레이스를 이끄는 전략이 성공했다. 최민정의 레이스는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정감과 여유가 넘쳤다. 여자 1,000미터 은메달 직후 여러 복잡한 감정이 복받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그는 1,500미터 결승 직후 환하게 웃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이겨낸 자신에 대한 기쁨의 미소였다. 파벌과 무관한 그에 대한 음해와 견제, 동료의 배신, 부상, 편파판정,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최민정은 실력으로 이겨냈다. 1,500미터 결승전에서의 미소는 세상 그 어떤 미소보다 아름다웠다.
이렇게 한국 쇼트트랙은 다시 한번 동계올림픽 최고 메달 종목임을 입증했다. 여러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황대헌이라는 새로운 남자부 에이스가 등장했고 최민정 역시 굳건했다. 이전과 달리 선수들의 끈끈한 팀워크를 과시하며 결과에 상관없이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모으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결과에 상관없이 모처럼 원팀이 된 쇼트트랙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의 위협이 한층 심화되고 있어 지속적인 기량 발전이 필요함을 절감하는 대회이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동계올림픽 성과에 묻혀 내재된 각종 부조리와 문제들을 외면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파벌 문제는 여전히 시한폭탄처럼 자리하고 있다. 연맹의 단호함이 필요하다. 계속되는 선수들의 일탈도 관심이 필요하다. 쇼트트랙에서는 보이는 문제 외에 스포츠 도박 사건이나 남녀 선수들의 부적절한 행동 등 각종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의 성과에 묻힐 뿐이었다. 이제는 성과는 물론이고 그 과정에 공정함과 정정당당함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제 국민들은 당당하지 못한 결과에는 결코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지난 도쿄 하계 올림픽은 물론이고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도 국민들은 온 힘을 다한 선수들을 응원했다. 메달은 중요하지 않았다. 최민정에 대한 응원은 그의 메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러 어려움을 이겨낸 그에 대한 응원과 격려였다. 더는 최민정과 같은 선수가 경기 외적인 문제로 상처받고 마음고생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른 스포츠 종목도 마찬가지지만, 쇼트트랙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시 하는 달라진 시대 흐름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쇼트트랙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유지토록 하는 길이다.
사진 : 베이징 동계 올림픽,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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