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그 사람의 진가가 알려지거나 성공한 사람에게 대기만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롯데 자이언츠 선발 투수 이인복은 그에 잘 맞는 선수다. 이인복은 2014 시즌 프로에 데뷔했지만, 그동안 그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대졸 선수로 데뷔도 상대적으로 늦었고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1군에서의 공백기도 있었다. 그 사이 이인복의 나이는 30살을 훌쩍 넘어섰다. 투수로서는 기량이 정점을 지나는 시점이 됐다.
하지만 이인복은 새로운 전성기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인복은 4월 30일 LG전에서 7이닝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로 시즌 3승에 성공했다. 이인복은 그 경기에서 4개의 안타만 허용했고 단 한 개의 사사구도 없는 투구를 했다. 탈삼진은 2개과 불과했지만, 뛰어난 범타 유도 능력으로 효율적인 투구를 했다.
롯데 타선은 1회 초 3득점이 후 수차례 득점 기회에서 추가 득점을 하지 못하고 답답함을 보였지만, 이인복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올 시즌 타선이 힘이 크게 강해진 LG 타선이었지만, 이인복의 투구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이인복은 올 시즌 가장 많은 이닝과 함께 처음으로 퀄리티스타트 그 이상의 투구를 했다. 이인복의 7이닝 투구는 의미가 컸다. 롯데는 SSG, LG로 이어지는 강팀과의 연이은 3연전에서 불펜진 소모가 많았다. 특히, 필승 불펜진은 김유영, 나균안의 투구 수가 많았다. 전날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나균안, 김유영이 마운드에 서며 많은 투구수를 기록했다. 투구 이닝이 쌓이면서 피로도가 커질 수 있는 시점에 이인복이 불펜진의 부담을 덜어줬다. 이인복 개인으로도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선발 투수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인복의 장점은 변화가 심한 직구다. 투심 또는 싱커볼이라 부르는 그의 직구는 공끝이 타자 앞에서 가라앉거나 공꼬리가 좌우로 변화한다. 타자들이 방망이가 나갈 시점에 그런 변화가 생기면서 다수의 땅볼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런 투구는 투구 수를 줄이는 장점도 있다. 이인복은 그런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인복은 스트라이크 위주의 공격적인 투구로 매 경기 임하고 있다. 직구 자체가 변화구나 다름없는 구질은 타자들에게 까다롭게 다가온다. 이는 우완 투수인 이인복이 좌타자 승부에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이인복의 투구 스타일은 롯데 선발 마운드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유용하다. 롯데 선발 투수진은 강력한 직구의 바탕으로 한 파워피처 유형이 많다. 외국인 투수 스파크맨과 박세웅, 김진욱은 모두 직구의 힘을 앞세우는 유형이다. 반면에 에이스로 우뚝 선 반즈와 이인복은 공의 변화로 승부한다. 같은 유형의 선발 투수들로 채워진 선발 로테이션은 상대팀이 적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롯데 5인 선발 투수들은 이상적인 조합니다. 이인복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어느새 이인복은 롯데 선발 투수진의 당당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인복은 지난 시즌 후반기 선발 투수로 가능성을 보였다. 당시 롯데는 부상과 외국인 투수들이 부진이 겹치면서 선발 로테이션 유지에 어려움이 있었다. 2군에서 여러 투수들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이인복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인복은 프로 입단 후 주로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선발 투수 후보군으로 스프링캠프를 치른 경험도 있지만,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인복은 멀티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불펜 투수로 주로 추격조 역할을 담당했다. 1군에서 기회를 꾸준히 얻었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직구의 구속은 타자들을 압도할 수준은 아니었고 구종도 다양하지 못했다. 1군과 2군을 오가는 그저 그런 불펜 투수로 프로선수 이력을 쌓았다. 2020 시즌 이인복은 투심 패스트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존재감을 높였다. 그 해 이인복은 47경기 45.1이닝을 책임지며 1군 불펜에서 역할 비중을 키웠다. 하지만 2021 시즌 초반 이인복은 1군에서 입지가 다시 흔들렸다.
롯데는 젊은 투수들에게 점점 기회를 주기 시작했고 30살을 넘어서는 이인복은 점점 그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인복은 선발 투수 전환으로 반전을 모색했다. 2군에서 꾸준히 선발 등판하며 이닝 수를 늘렸고 콜업의 기회를 잡았다. 이인복의 역할은 대체 선발 투수였지만, 호투를 거듭하면서 후반기 로테이션에 포함됐다. 이인복은 프로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온전히 소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인복은 2022 시즌 풀 타임 선발 투수에 도전했다. 스프링 캠프 내부 경쟁이 첫 관문이었다. 롯데는 외국인 투수 2인에 박세웅까지 3인의 선발 로테이션을 확정하고 4, 5 선발 투수 오디션을 진행했다. 마침 선발 투수 후보군이 많았고 경쟁은 치열했다.
이인복 외에 유망주 투수 이승헌, 서준원에 좌완 에이스로 기대를 받고 있는 김진욱도 있었다. 지난 시즌 긴 기다림 끝에 선발 투수로 가능성을 보여준 최영환에 포수에서 투수로 성공적인 전환을 한 나균안도 있었다. 모두 이인복 보다 어리고 미래가 기대되는 투수들이었다. 롯데의 선수단 운영 정책과 맞물려 이인복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었다. 이미 롯데는 선발 투수로 여전히 그 가치가 있는 베테랑 투수 노경은을 방출하기도 했다. 이인복으로서는 어렵게 잡은 선발 투수의 기회를 놓칠 수 있었다.
이인복의 시즌 개막은 선발과 불펜을 오갈 수 있는 5, 6번 선발 투수였다. 4선발 투수 자리는 좌완 유망주 김진욱이 자리했고 이인복은 남은 한자리를 놓고 나균안, 이승헌 등과 경쟁해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펜 등판도 해야 하는 스윙맨의 위치였다. 실제 이인복은 올 시즌 불펜으로 2경기 등판하기도 했다.
그 사이 나균안이 뛰어난 구위를 바탕으로 선발 투수 경쟁에서 돋보이기 시작했다. 이인복은 나균안과 5선발 자리를 공유하거나 한 경기를 함께 책임지는 투수가 되기도 했다. 아직 팀을 이인복에 확실한 신뢰를 보내지 않았고 그의 이닝 수도 제한이 있었다. 투구 수에 여유가 있음에도 마운드를 물러나기도 했다. 이인복은 그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고 선발 투수로서 입지도 단단히 했다. 투구 이닝도 점점 늘어났다. 4월 30일 LG전은 선발 투수 이인복을 바로 알리는 경기였다.
이인복은 무리 없는 투구를 하고 제구가 안정적이다. 그의 투구는 예측이 가능하고 계산이 선다. 볼넷을 남발하며 흔들리는 투수가 아니다. 내구성과 이닝이터의 능력도 입증했다. 이런 이인복을 선발 투수로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현재로서는 기복 있는 투구를 하는 김진욱에 앞선 4선발 투수로 로테이션을 돌 가능성이 크다. 그와 경쟁했던 나균안은 멀티 이닝 소화가 가능한 필승 불펜으로 또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선발 투수 이인복의 자리를 흔들 요소가 없다. 2군에서 꾸준히 선발 등판하고 있는 최영환 등이 선발 투수 경쟁에 함께 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인복과의 경쟁은 아니다.
오랜 기다림이었다. 이인복은 입단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에 맞는 투구 패턴과 구종을 찾았다. 그의 주무기 투심 패스트볼은 몸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범타를 유도할 수 있는 구종이지만, 제구의 꾸준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손에 익히는데 시간이 필요하고 일정함을 유지하는데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인복은 이 공을 자유자재로 던지고 있다. 그의 직구 구속은 140킬로 언저리에 있지만, 공의 움직임은 이인복 특유의 직구 구종 가치를 끌어올렸다. 이에 더해 슬라이더와 커브 등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요령도 생겼다.
이인복은 자신이 공이 통한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마운드에서 여유가 넘치고 자신감 있는 투구를 하고 있다. 그에 비례해 투구 인터벌도 짧고 빠른 템포의 투구를 하고 있다. 이는 야수들에게 긍정 메시지로 다가올 수 있다. 4월 30일 경기에서 롯데 야수들은 수차례 호수비로 이인복을 도왔다. 타자들의 방망이를 이끌어내 승부하는 이인복에게는 야수들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4월 30일 경기는 그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이인복까지 선발 투수로 확실히 자리하면서 롯데 마운드는 한층 더 힘이 생겼다. 불펜진의 부담을 일정 덜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롯데는 다수의 마운드 예비 자원도 갖추고 있다. 장기 레이스에서 마운드만큼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롯데다. 이인복은 그 한 축이다. 늦깎이 선발 투수 이인복의 올 시즌 투구를 롯데 팬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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