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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에서 한번 기량이 떨어진 베테랑 선수가 상황을 반전시키는 매우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 능력이 저하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베테랑들에 대한 변화한 프로야구 리그의 분위기도 베테랑들의 입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해마다 많은 신인들이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하고 일부는 신고 선수 형식으로 팀에 합류한다. 선수단 규모를 무한정 확대할 수 없는 현실에서 매 시즌이 끝나면 누군가는 팀을 떠나야 한다. 이에 방출 선수 명단 작성은 매 시즌 후 각 구단의 연례 행사다.

그 과정에서 기량이 한계에 이른 선수들이나 연봉 대비 활약이 부족하다 평가받는 베테랑들도 그 명단에 포함된다. 점점 선수 육성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확실한 주전급 기량을 갖추지 못한 베테랑들은 매 시즌 종료후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방출 선수 중 일부는 타 구단에 영입되기도 하지만, 그 숫자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지도 있었던 선수들도 하나 둘 알게 모르게 현역 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나마 은퇴식을 치르면서 자신의 선수 생활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들도 있지만, 그 숫자는 극히 미미하다. 

이런 현실에서 부상과 부진으로 입지가 좁아진 베테랑의 선수 생활을 말 그대로 가시방석이다. 그 선수로 인해 신고 선수에 머물고 있는 유망주들의 엔트리를 빼앗고 있다는 눈총을 받기도 하고 저비용 고효율이 구단 운영의 중요한 트렌드가 된 현실에 역행하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분명 그 선수는 현역으로 남아있지만, 팬들에게는 점점 잊히는 존재가 된다는 점은 선수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자신은 반등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지만, 그 노력이 외면받는 건 더 큰 고통이 될 수 있다.

베테랑들에게는 더 삭막한 프로야구 현실에서 의미 있는 선발 승을 기록한 베테랑 투수가 있다. 두산의 장원준이 그 주인공이다. 장원준은 5월 23일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나서 5이닝 7피안타 4탈삼진 무사사구 4실점 투구를 했고 타선의 지원이 이루어지며 승리 투수가 됐다. 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결과였다. 

 

 

 



그의 마지막 승리 기록은 2018 시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5년여의 시간이 흘러 장원준은 승리 투수로 그 이름을 올렸다. 이 승리는 그의 프로야구 통산 130승이었다. 이를 통해 장원준은 끝났다는 평가를 뒤집었고 다음 등판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 선발 등판 자체가 큰 이슈였던 장원준이 이룬 반전이라 할 수 있다. 

장원준은 롯데와 두산을 거치며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 투수로 그 명성을 쌓았다. 당대 최고 좌와 투수인 김광현, 양현종, 봉중근, 류현진 등과 시대를 같이 하면서 상대적으로 덜 빛나긴 했지만, 장원준은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2008 시즌부터 2017 시즌까지 매 시즌 10승 이상을 달성했고 2006 시즌부터 2017 시즌까지 매 시즌 150이닝 이상을 소화한 이닝이터이자 꾸준함을 상징이었다. 그 사이 특별한 부상 이슈도 없었다. 프로 데뷔 초기 기복이 심한 투구로 롤러코스터 투구를 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장원준은 어느새 꾸준함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장원준은 롯데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기도 했다. 특히, 장원준은 2008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롯데 감독을 역임하며 만년 하위팀 롯데는 특유의 노피어 공격 야구의 팀으로 변모시키며 상위권 팀으로 이끈 로이스터 감독 시절 기량이 급속히 발전했다.

그 시절 로이스터 감독은 선발 투수들을 가능한 오랜 이닝을 투구하도록 하는 선발 야구를 했고 그 속에서 장원준은 꾸준한 선발 등판 기회를 보장받았다. 롯데 팬들에게는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중심 타선인 이대호, 조성환, 가르시아, 홍성흔 등이 이끄는 롯데 타선은 역대급 활력을 보여줬고 이는 선발 투수들의 부담을 한층 덜어주었다. 장원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후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 이후 수차례 감독이 교체되는 등 변화가 있었고 부침을 거듭했지만, 장원준의 꾸준함은 여전했다. 하지만 장원준은 한창 전성기를 보내야 하는 시점에 군 입대를 해야 했다. 병역혜택의 기회를 잡기 위해 국가대표팀 선발이 절실했지만, 최고 좌완 투수들이 즐비한 현실에서 그의 자리가 없었다. 결국, 장원준은 2011 시즌 15승 6패, 방어율 3.14의 호성적을 거두고 군 입대를 해야 했다. 장원준은 두 시즌 동안 퓨처스 리그 경찰청 야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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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기간에도 장원준은 기량을 잃지 않았다. 롯데로 복귀한 이후에도 두 자릿수 승수와 함께 특유의 이닝 이터의 면모를 유지했다. 장원준은 2014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고 검증된 좌완 투수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뜨거웠다.  당시 롯데에게는 장원준 잔류가 최대 현안이었다. 많은 이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장원준의 롯데 잔류를 예상하는 시점에 장원준은 두산과 계약하며 팀을 떠났다. 

예상외의 결과였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외부 FA 선수 영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당연히 FA 선수 영입에 많은 금액을 투자하지 않는 팀이었다. 이런 두산이 장원준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고 장원준은 두산보다 나은 제안을 한 원 소속팀 롯데의 제안을 마다하고 두산행을 선택했다. 이와 관련해 이면 계약설 등이 대두될 정도였다. 

두산은 많은 이닝을 책임질 선발 투수가 필요했고 장원준은 선수 생활에서 변화가 필요했다. 마침 롯데는 선수단 원정 숙소 CCTV 사건 등으로 구단 이미지가 실추된 상황이었고 구단 운영과 관련해 이런저런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는 장원준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선수 생활에서 우승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마음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과 장원준의 만남은 결과적으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장원준은 이전보다 넓어진 홈구장에서 장타에 대한 부담을 덜고 더 자신감 있는 투구를 할 수 있었고 리그 최고 수준의 내야진의 수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불펜진에 비해 선발 투수진에 약점이 있었던 두산은 풀 타임 시즌 내내 선발 로테이션 한자리를 책임질 투수 영입으로 마운드 운영이 한결 수월해졌다. 

장원준 영입 이후 두산은 2015 시즌 한국 시리즈 우승 이후 2021 시즌까지 7시즌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리그 최고 강팀으로 거듭났다. 두산 왕조라 해도 될 정도로 두산의 전력을 강했다. 두산 선수들은 국가대표의 핵심을 이뤘다. 이런 강팀 두산에서 장원준은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이에 장원준의 두 번째 FA 전망도 밝아 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 FA 자격을 앞둔 2018 시즌 장원준은 깊은 부진에 빠져들었다. 구위가 급격히 저하됐고 부상도 뒤따랐다. 2018 시즌 장원준은 극도의 부진 속에 3승 7패 방어율 9.92를 기록했다. 그전 시즌에도 14승을 기록했던 장원준이었기에 그의 2018 시즌 성적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두산은 그에게 휴식을 주기고 하고 불펜으로 그 역할을 변경해 보기도 했지만, 그의 반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매 시즌 많은 이닝을 책임졌던 장원준의 누적된 어깨 피로가 원인이라는 진단을 하기도 했다. 스포츠 용어로 데드암 증후군이라고도 하는 이 증상은 선수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증상을 겪는 선수들 중 상당수는 현역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장원준 역시 좀처럼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두산은 그의 부활을 기대하며 매 시즌 엔트리 한자리를 보장해 주었지만, 장원준은 점점 1군 전력에서 멀어졌다. 선발 투수에서 불펜 투수로 전환하며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보기도 했지만, 1군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2군으로 내려가기 일쑤였다. 마음은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장원준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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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그의 나이는 30대 후반이 됐고 은퇴를 고려할 시점이 됐다. 두산으로서도 그에게 계속 기회를 주기는 어려운 상항이었다. 마침 두산은 2022 시즌 누적된 전력 약화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하위권으로 그 성적이 추락하는 아픔이 있었다. 이에 두산은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을 단행했고 상당수 베테랑 선수들을 정리했다. 장원준 역시 그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이승엽 감독이 결단을 내렸다. 이승엽 감독은 장원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다. 장원준이 여전히 현역 선수 생활에 큰 의지를 보이고 있고 두산의 왕조 시대를 이끌었던 상징성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장원준이 과거 명성에만 의지해 엔트리 한자리를 차지하는 선수였다면 이끌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장원준은 한때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였지만, 거듭된 부진 속에 그 연봉이 5천만원으로 급감했다. 이미 선수로서 우승도 경험했고 FA 대박을 이루기도 했던 그였다. 이룰 것을 다 이룬 장원준이지만, 장원준은 최조 수준의 연봉과 한참 어린 후배 선수들과의 긴 2군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부활을 위해 긴 시간을 보냈다. 

이런 장원준의 의지와 노력은 2023 시즌 선발 등판의 기회로 이어졌다. 베테랑에 대한 예우 이전에 두산의 구멍 난 선발 투수진의 대안으로 그가 선택됐다. 두산은 외국인 투수 딜런이 스프링 캠프에서의 부상 후유증 등으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교체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여기에 국내 선발투수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단. 선발 투수 한자리를 책임져야 할 이영하는 긴 소송으로 전력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두산은 외국인 투수 알칸타라와 국내 선발 투수로서 분전하고 있는 최원준 외에 확실한 선발 투수가 없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젊은 선발 투수들도 거듭된 등판에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선발 투수진에 힘을 더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이에 두산은 퓨처스 리그에서 꾸준히 선발 등판을 하고 있었던 장원준을 콜업했다.

 

 

 



시즌 첫 선발 등판에서 장원준은 뚝 떨어졌던 속구의 구속을 회복한 모습을 보였고 무사사구 경기를 할 정도로 안정된 제구력을 선보였다. 타자들을 압도할 만한 구위는 아니었지만,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경기 운영 능력을 변함이 없었다. 과거와 같이 에이스 역할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4, 5선발 투수로서는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또한, 시련을 이겨내고 재기한 베테랑 투수의 투구는 젊은 투수들이 대부분이 두산 마운드에도 긍정의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다시 기회의 문을 열었지만, 장원준의 입지가 단단한 건 아니다. 장원준은 대안으로 선택을 받았고 기존 선발 투수들이 돌아오면 그 자리를 내줘야 한다. 젊은 선수들의 육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구단 정책상 우선순위에서도 밀리는 게 현실이다. 확실한 경쟁력을 보이지 못한다면 언제든 2군으로 내려갈 수 있는 장원준의 상황이다. 

하지만 장원준에게는 이런 불안한 입지보다는 한 경기 한 경기 마운드에 설 수 있는 상황이 즐겁다. 장원준에게는 쫓기듯 밀려 은퇴하기보다는 자신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은퇴하길 소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5월 23일 선발 등판은 장원준에게 큰 의미가 있다. 그 등판에서 장원준은 아직 경쟁력이 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동안 팀의 그에 대한 배려에 대한 보답으로 장원준은 통산 130승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선수단에게 피자 30판을 돌리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앞으로 장원준이 자신의 부활을 지속성을 가지고 입증할 수 있을지 이는 두산 마운드 운영에도 중요한 상수로 작용할 수 있다. 그의 다음 등판이 기대되는 이유다. 



사진 : 두산 베어스,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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