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선전을 바탕으로 겨울 최고 인기 실내 스포츠로 떠오른 여자 프로배구가 예상치 못한 변수에 시달리고 있다. 수차례 우승을 했던 IBK 기업은행의 특정 선수와 코치의 팀 무단이탈로 시작한 팀 내분 상황이 한 달여의 시간 동안 해결이 안 되고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 중 선수가 팀을 무단 이탈한 것도 큰 뉴스였지만, 코치가 이에 동조해 함께 팀을 이탈한 건 다른 프로스포츠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초유의 일이었다. 이전에는 이런 사태의 원인이 감독이나 코치들의 부당한 지도 방식이나 폭력, 각종 비리 등이었다. 대부분 선수들이 피해자였고 마지막 수단으로 이런 선택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양상이 크게 달랐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당연히 해당 선수와 코치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IBK의 대처는 상식을 크게 벗어났다. IBK는 팀을 무난 이탈한 선수와 코치에 오히려 끌려가는 행태를 보였고 배구팬들의 큰 비난을 받았다.
이런 구단의 난맥상은 연일 스포츠 뉴스 1면을 채웠다. 배구 시즌이 한창이지만, 경기 결과나 선수들의 동향, 경기와 관련한 내용이 아닌 특정팀의 분란이 가장 관심을 받았다. 여자배구 현대건설의 연승 행진과 1위부터 6위까지 큰 차이 없이 전개되는 치열하게 전개되는 남자배구의 순위 경쟁 소식은 그 뉴스에 묻히고 있다. 유례가 없었던 일에 언론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가장 많은 클릭을 받을 수 있는 한 마디로 돈이 되는 기삿거리를 언론들이 놓칠 리 없었다. 언론들에게 IBK의 사태는 중요한 먹잇감이었다. 앞다투어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당연히 소속 구단의 선수들의 취재 공세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구단의 혼란은 더 깊어졌다. 성적 또한, 최하위권으로 추락했다.
IBK에는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전 센터였던 김수지와 주전 라이트 공격수 역할을 했던 김희진, 보조 공격수로 역할을 했다 표승주가 주전으로 뛰고 있다. 이들 중 김수지와 김희진은 올림픽 예능 프로그램 곳곳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더 높였고 스타 선수로 자리했다. IBK 배구단의 멤버 구성은 상위권을 충분히 노려볼만했다. 한국계 외국인 선수로 큰 화제를 모았던 레베카 카셈을 영입해 배구팬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지난 시진 후 팀 내 갈등설이 돌기도 했지만, 여자배구에서 오랜 지도자 생활을 했던 덕장 서남원 감독을 올 시즌 영입해 조직력을 다졌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서 악재가 터지고 말았다. 정상적인 구단이라면 상황을 수습하고 빠르게 정리해야 하지만, IBK 구단의 대처는 미숙하기만 했다. 프로구단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이라는 옛 속담과 달리 구단이 오히려 팀 내 갈등을 부추기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내부 갈등을 구단이 조장했다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IBK는 팀 내분과 성적 부진을 이유로 서남원 감독과 단장을 전격 경질했다. 구단 운영의 책임이 있는 인사들의 경질은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남은 건 수습이었다. 여기서 IBK는 비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팀을 무단이탈했던 코치가 돌연 감독대행으로 임명됐다. 분란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팀 내분에 대해 구단이 특정 선수와 코치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무단이탈한 선수에 대한 징계도 제대로 이루어지 못했다.
IBK는 그 선수와의 계약을 해지하기도 결정했지만, 그와 관련한 절차와 규정을 따르지 않아 징계건이 프로배구협회에서 반려되는 망신을 당했다. 선수와 구단간의 표준 계약서에는 선수와의 계약 해지에 있어 상호 합의와 거면 동의서가 있어야 하지만, IBK는 선수의 동의서를 받지 않고 계약 해지를 하려 했다. 기본적인 상황마저 무시했거나 무지한 구단의 처사였다.
이에 구단은 선수에 대한 징계를 프로배구협회에 떠넘기는 모습도 보였다. 징계위원회가 열릴 예정이지만, 해당 선수는 자신의 입장을 소명하기 위해 일정을 연기하며 이에 대비하고 있다. 그는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고 있다. 뭔가 할 말이 많음을 암시하고 있다. 프로배구 협회로서도 팀 내 내분과 관련해 징계를 한다는 점이 부담이다. 징계 결정을 한다 해도 그 효력과 관련해 법적인 분쟁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구단의 부담을 프로배구협회에 떠넘겠다는 비난이 IBK에 더 추가됐다.
이런 IBK의 미숙한 대응은 여러 추측과 오해만을 증폭시켰다. 여기에 감독대행 자리에 오른 코치의 각종 매체를 통해 인터뷰는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그는 전 감독의 폭언이 사태의 원인이었던 듯 말했다. IBK의 주축 선수들도 이에 동조하는 인터뷰를 했다. 졸지에 서남원 감독은 나쁜 지도자가 됐다. 이에 서남원 감독이 즉각 반발했고 진실게임 양상으로 사태가 변질됐다. 이후 정황상 감독의 폭언 등이 사실과 크게 다름이 드러나면서 감독대행의 입지는 더 줄어들었다.
이런 IBK의 계속되는 내분은 여자배구 흥행에 치명적이었다. 뉴스의 메인은 이 사태가 차지하면서 부정적 여론이 늘어났다. 사태 해결을 못하고 미적거리는 구단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 마치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는 안이한 구단의 대처는 후폭풍을 몰고 왔다. 심지어 배구계에서도 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해졌다. IBK를 제외한 6개 여자배구단 감독들은 IBK 감독대행과의 악수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를 감독대행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항의였다. 한정된 배구판의 구조 속에서 언제든 서로를 볼 수 있는 관계임을 고려하면 이런 결정은 IBK 내분 사태에 대한 타 구단들과 배구인들의 불만이 얼마나 큰 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결국, 감독대행에 올랐던 코치는 3경기만에 사퇴를 결정했다. 일부에서는 성공한 쿠데타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내부 사태의 원인 제공자가 여론의 압력과 배구계의 압력에 마지못해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 자리에 오르지 말았어야 했고 자신은 한시적인 대행으로 새로운 감독이 선임되면 물러난다는 메시지만 내놓았어도 사태가 이지경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코치는 자리에 크게 연연하는 모습이었고 마치 자신은 이 사건과 관련이 없고 오히려 피해자임을 강변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그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IBK의 구단주인 은행장이 거론되기도 했다. 구단주의 후광을 업고 있는 코치라면 감독에 함부로 그를 대할 수 없는 게 우리 프로스포츠의 현실이다. 이는 구단 운영의 파행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이다. 감독과의 관계가 유연하게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없지만, 갈등의 빚어진다면 힘이 균형이 크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치판의 파워게임이 프로구단에서 벌어질 수 있고 감독의 권위와 역할이 크게 축소되는 건 불가피하다.
이는 감독이 원하는 대로 선수 운영을 할 수 없게 한다. 대신 감독은 성적과 여러 문제들에 대해 책임만 지는 속된 말로 바지 사장과 같은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팀 운영은 어렵게 되고 특정 파벌들이 구단을 지배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러한 파행적인 구단 형태는 그동안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프로축구 등에서 암암리에 있었다. 팀 내 파벌이 형성되면서 갈등이 지속되고 구단이 이를 해결하지 보다는 특정 파벌에 힘을 실어주면서 갈등을 더 증폭시키는 일이 실제 있었다. 경기에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란 프로스포츠에서 내부 정치가 횡횡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IBK 사태는 이런 퇴행적인 행태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실망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여자배구의 지금 인기는 남자배구보다 훨씬 나은 국제경기 실적에서 차별을 받았던 불합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올림픽 4강의 성과를 낸 그들의 감동 스토리가 큰 영향을 줬다.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배구는 예선 통과도 어렵다는 평가에도 강팀과의 대결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배구팬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도 그들의 경기에 관심을 가지도록 했다.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그들의 보여준 투지와 노력은 메달 이상의 의미가 있었고 국민적인 응원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스타 선수 김연경은 자신의 경기력은 물론이고 여자배구에 대한 차별과 불합리한 협회 운영 등에 목소리를 내며 이를 개선토록 하는 역할을 했다. 김연경은 세계 최고 선수 반열에 오른 경기력과 함께 여자배구 전체의 발전과 후배 선수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힘을 썼다. 올림픽 후 각종 방송 출연을 하면서 후배 선수들과의 동반 출연을 고집하며 여자배구의 저변을 넓히고 선수들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도록 배려했다. 여자배구의 인기는 김연경을 중심으로 한 선수들의 오랜 노력의 결과로 결코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IBK 사태는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과 성원을 배신하는 일이다. 여자 프로배구는 최근 스포츠 시청률에서 프로야구를 능가하는 등 인기 콘텐츠로 자리하고 있다. 그 덕분에 제7구단이 창단되기도 했다. 그만큼 선수들에게 기회의 문이 커졌다. 각 팀의 주력 선수들은 이제 스타 선수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연봉 수준도 매우 높아졌다. 억대 연봉 선수들이 다수 존재한다. 남자 배구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이렇게 높아지는 인기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IBK 사태는 우리 프로스포츠의 추악한 일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IBK 구단은 전혀 프로답지 않았고 해당 선수와 코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작은 기득권에 집착해 구단 전체를 망쳤다. 이에 동조하는 듯한 베테랑 선수들도 책임을 면하긴 어렵다. 이미 IBK에는 선수 간 갑질과 관련한 의혹이 있기도 했다. 팀을 무단이탈한 선수는 갑질을 한 선수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는 여론에 밀려 징계를 받긴 하겠지만, 그 선수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심증이 커지는 게 사실이다.
만약, 해당 선수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또 다른 발언을 한다면 사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자칫 구단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다. 이는 여자 프로배구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가뜩이나 여자배구는 경기력 저하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족한 선수 자원 탓에 기존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실력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는 여론도 나오고 있다. 높아진 위상과 인기에 상응하는 책임감과 경기력을 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 IBK 사태는 높아진 위상을 엉뚱하게 활용한 예라 할 수 있다.
여자 프로배구는 최근 선수들의 연이은 일탈과 일부 구단들의 파행적 구단 운영, 경기력 저하, 국제경기 부진 등이 겹치며 인기가 추락한 프로야구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이제 여자배구는 도쿄 올림픽 주력 선수들의 잇따른 대표팀 은퇴로 아시아 무대에서도 크게 고전할 수 있는 상황이다. 국내 리그의 수준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지금의 인기에 취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그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IBK 사태의 빠른 수습과 함께 높아진 여자프로배구의 인기 이면에 가려진 문제들에 대한 성찰과 개선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인기는 언제든 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다. IBK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단장에 전문가를 영입해 프로배구단 다운 운영을 할 수 있는 전권을 줘야 하고 새롭게 선임할 감독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권위와 권한을 줘야 한다. 또 다신 구단이 팀은 흔들거나 특정 파벌에 힘을 실어주는 등의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운영되는 배구단은 동호회만도 못하고 존재 이유가 없다. 팬들의 애정 어린 비난 여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는 특정 구단뿐만 아니라 여자배구 전체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언론들 역시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낼 게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구조적인 문제나 그 해결책에 대한 해법을 내놓는 등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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