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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에서만 19시즌, LG 원클럽맨이자 레전드 박용택이 조금 늦은 은퇴식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박용택은 2020 시즌 은퇴를 했지만, 은퇴식을 미뤘다. 그가 은퇴하는 시점은 코로나 팬데믹이 심각했고 프로야구 관중 입장에 제한이 있었다. 박용택은 가능한 많은 팬들이 함께 하는 은퇴식을 원했다. 그리고 그의 소망이 7월 3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이뤄졌다. 

박용택은 특별 엔트리 규정에 따라 1회 말 수비 시 좌익수로 출전했고 시구도 했다. 그의 현역 선수 기록은 2020 시즌 끝났지만, 7월 3일 경기 출전으로 그의 현역 마지막 출전 기록은 2022시즌으로 마무리됐다. 박용택은 경기 중 중계방송 해설의원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고 경기 후 만원 관중들이 함께 하는 은퇴식을 했다.

은퇴식 후에는 밤늦은 시간까지 경기전 하지 못한 사인회를 하면서 현역 선수로서 마지막 팬 서비스에 임하는 프로의 모습도 보였다. 그의 은퇴 경기에서 LG는 경기 후반 집중력을 발휘하며 4 : 1로 롯데에 승리했다. 은퇴하는 박용택에는 또 하나의 큰 선물이었다. 

박용택은 2000년대 이후 LG의 구단 역사를 상징하는 선수다. 이에 LG는 그의 등번호 33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LG 구단의 영구 결번은 선발투수와 마무리 투수로 프로야구 한 시대를 풍미했던 투구 김용수와 천재 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또 한 명의 레전드 이병규가 있었다. 그만큼 박용택이 LG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박용택은 2002 시즌 신인으로 입단한 이후 LG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신인 때부터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고 긴 세월 LG의 외야를 지켰다. 그 기간 박용택은 꾸준한 활약으로 팀 중심 선수로 자리했다. 이병규와 김재현에 이어 박용택은 야수로서 팀을 대표했다. 

 

 

 



성적도 준수했다. 박용택은 19시즌을 치르면서 통산 타율 3할을 넘었고 2504개의 안타와 213개의 홈런, 1192타점을 기록했다. 야구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충분히 입성이 가능한 성적이었다. 박용택의 성적이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나이를 먹으면서 오히려 더 성적이 향상됐다는 점이었다. 박용택은 30살이 넘은 나이에 정확도에 파워를 더한 타자로 거듭났고 30대 후반의 나이를 넘어 40대 나이에도 현역 선수로 주전 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다. 프로야구의 흐름이 점점 베테랑들에게 야박해지는 상황이고 LG에 다수의 유망주들이 즐비한 환경에도 박용택은 실력으로 베테랑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고 그의 현역 선수 커리어를 이어갔다.

이런 박용택에게 3번의 FA 계약은 큰 선물이었다. 하지만 박용택의 FA 계약은 대박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첫 번째 FA 계약에서는 많은 옵션이 들어간 내용이었고 두 번째 FA 계약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팀의 제안을 거부하고 LG를 택했다. 세 번째 FA 계약은 선수의 현역 연장 의지와 구단의 배려가 함께 한 계약이었다. FA 자격을 3번 취득하기도 어렵지만, 박용택은 그 계약을 모두 원 소속팀과 하면서 월클럽맨이 되기를 선택했다. 돈으로 말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보기 드문 소속팀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박용택에 대한 LG 팬들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박용택에 대한 LG 팬들의 사랑이 늘 한결같은 건 아니었다. 박용택은 입단 이후 스마트한 이미지로 주목받았다. 그의 실력과 함께 마케팅 면에서도 크게 득이 되는 선수였다. 이런 유명세는 그를 스타 선수로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능력에 비해 노력이 부족하다는 불성실한 선수라는 이미지를 가져다줬다. 박용택은 전성기로 접어들 시점에 오히려 성적이 내림세를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그가 주저앉았다면 LG의 박용택은 그대로 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후 다시 심기일전했고 2009 시즌 0.372의 타율로 타율 1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18 시즌까지 매 시즌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꾸준함을 유지했다. 2015 시즌부터 2018 시즌까지는 30대 후반의 나이가 무색하게 두 자릿수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며 파워히터의 면모도 보였다.

 

 

 



그 기간 LG는 마운드에 비해 타선의 약세로 고심했다. 박용택은 이런 LG 타선의 해결사였다. 베테랑의 분전은 LG 팬들에게 인상적이었다. 그가 은퇴 시즌까지 팬들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였다. 그의 은퇴식이 은퇴 후 2시즌이나 지나서 성사됐음에도 만원 관중이 들어찬 건 분명 박용택과 LG가 가지는 특별한 관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박용택이 왜 롯데전에서 은퇴식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박용택과 롯데와의 특별한 인연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 팬들에게는 악연이 될 수도 있다. 박용택은 현역 시절 롯데 홈구장인 사직 야구장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다. 이에 야구팬들은 박용택에게 사직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만큼 롯데 홈 팬들에게 박용택은 아픔을 주는 존재였다. 

이런 이유 탓인지 박용택이 두 번째 FA 자격을 취득했을 당시 그의 롯데행을 예상하고 원하는 롯데 팬들의 목소리가 꽤 있었다. 사직 야구장에서 강한 박용택이 롯데 타선이 힘을 불어넣을 수 있고 롯데 투수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실리적 계산도 있었다. 박용택의 롯데행은 없었지만, 사직택이라는 별명은 그가 은퇴할 때까지 유효했다.

또 하나의 사건은 2009 시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즌에서 박용택은 롯데 소속이었던 홍성흔과 치열한 타율왕 경쟁을 하고 있었다. 좌우 베테랑 타자의 경쟁은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이어졌다. 두 선수는 타율왕을 놓고 시즌 막바지 경기에서 맞대결했다. 그 경기에서 LG는 볼넷을 내줄 것을 각오하고 홍성흔을 철저히 경계했다. 박용택은 시즌 막바지 팀의 배려로 타율을 관리했고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타율왕을 놓고 치열한 대결을 원했던 야구 팬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롯데 팬들의 아쉬움이 더 컸다. 롯데 팬들을 중심으로 그에게 졸렬택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는 박용택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생기게 했다. 박용택은 훗날 2009 시즌 타율왕 경쟁 과정에서의 문제를 사과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그때 쌓인 롯데 팬들의 악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 못했다. 이는 박용택이 은퇴 시즌 은퇴 투어를 하는 데 있어 반대 여론을 형성하게 하는 원인이 됐다. 결국, 박용택은 은퇴 투어를 하지 못했다.

박용택은 은퇴식에서 이 문제를 다시 한번 언급하며 롯데 팬들에게 사과했다. 그 의미로 그는 1루쪽 LG 팬들에게는 물론이고 3루쪽 롯데 팬들에게도 큰 절을 했다. 잠실 구장 한 편을 매운 롯데 팬들은 이에 따뜻한 박수로 응답했다. 이로써 박용택은 은퇴식을 통해 롯데와의 악연을 완전히 정리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롯데전에서의 은퇴식은 의미가 있었다. 

 

 

 



화려한 은퇴식을 한 박용택이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우승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는 공교롭게도 그가 프로에 데뷔한 2002시즌이었다. 이후 LG는 한 번도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했고 당연히 우승의 영광도 없었다. 아무리 선수로서 성공적인 이력을 쌓았다 해도 우승 기록이 없다는 건 큰 오점이 될 수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나 프로 농구에서 우승을 위해 연봉의 상당 부분을 양보하고 우승 후보팀으로 팀을 옮기는 일도 있다. 그만큼 선수로서 우승은 큰 영광이고 큰 성취다. 

박용택은 그 영광과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 그의 마음 한 편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런 박용택의 마음을 올 시즌 은퇴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대호도 마찬가지다. 박용택보다 1년 앞선 2001 시즌 프로에 데뷔한 이대호 역시 우승은 물론이고 한국시리즈 진출의 기억이 없다. 올 시즌도 롯데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대호 역시 우승의 기억 없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해야 할 상황이다. 박용택과의 동병상련의 처지다.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박용택은 LG 선수로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충분히 훌륭했다. 늦은 나이에도 기량을 발전시키며 활약을 했다는 점과 그 누구보다 적극적인 팬 서비스를 한 선수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박용택은 은퇴 후에도 야구 해설위원과 예능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야구와 함께 하고 있다. 이제는 LG의 박용택은 넘어 야구인 박용택, 예능인 박용택 등으로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열어가고 있다.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가던 프로야구 선수로서 젠틀한 이미지 LG 트윈스맨으로서의  이미지는 영원히 야구 팬들에게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랜 세월 선수 생활을 유지했던 그의 노하우가 후배 선수들에게 알려지고 전수될 수 있는 지도자의 길도 함께 열렸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그리고 그 길이 롯데와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해도 롯데 팬들은 그를 사직택으로서 열렬히 환영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LG 트윈스,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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