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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6일 신문이나 포털의 스포츠면을 채운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물론이고 야구팬들에게도 익숙한 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미국인 케리 마허, 1년 넘게 암 투병 중이었던 그는 최근 코로나 감염과 그에 따른 합병증인 폐렴이 악화되면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먼저 들려왔고 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향연 68세, 그는 50대가 넘은 나이에 한국에 와 부산에 정착한 이후 한국 프로야구에 매료됐고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됐다. 그는 원어민 교사와 대학교수로 일하는 도중에 롯데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의 매일 야구장으로 향했다. 원정경기장까지 방문해 롯데를 응원했다. 열혈팬 그 이상이었다. 

이런 이방인의 롯데 사랑은 큰 화제가 됐다. 마치 어느 유명 패스트푸드 캐릭터 또는 산타 할아버지를 연상하게 하는 덥수룩한 수염과 거구의 체구는 금세 눈에 띄었다. 이런 이방인이 롯데 경기가 있는 날이며 관중석에 롯데를 응원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케리 마허 교수는 어느새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 인사가 됐다. TV 중계 화면에도 자주 노출되면서 야구 팬들이 역시 그의 이름을 모를지언정 그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다. 케리 마허 교수의 변함없는 롯데 사랑과 경기장 방문은 롯데를 상징하는 모습이 됐다. 그가 롯데와 함께 한 기간 롯데는 롯데 팬들에게는 최고의 시간 중 하나인 로이스터 감독의 공격 중심의 노피어 야구를 경험하기도 했고 긴 세월 하위권에 머문 암흑기도 겪었다. 2017 시즌 후반기 대반전을 통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도 했다. 

 

 

 



케리 마허 교수는 이런 롯데의 최근 모습과 함께 했다. 성적이 좋건 나쁘건 그는 한결같았다. 많은 롯데 팬들의 롯데의 부진한 성적과 경기력에 실망하며 경기장을 외면했지만, 그는 늘 관중석 한 편을 지키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속된 말로 찐 팬이었다. 

이런 그의 열성과 진심은 롯데 구단도 움직였다. 2019년 그는 정년퇴직을 하면서 한국에 머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비자 연장을 위한 직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60대의 고령인 그가 일할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롯데 구단은 그를 구단의 홍보위원으로 영입했다. 롯데 구단의 배려에 그는 한국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는 구단 직원으로 경기장에서 롯데와 함께 했고 오랜 한국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롯데 외국인 선수들의 적응에 도움을 주는 매니저 역할을 했다. 

롯데는 케리 마허 교수의 마케팅적 역할을 고려했고 팬들의 강력한 요청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게 롯데와 케리 마허 교수의 인연은 오랜 세월 이어졌다. 케리 마허 교수에게 롯데는 인생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성공한 롯데 팬이었던 케리 마허 교수는 최근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으로 인해 긴 암 투병을 했다.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가 이어졌지만, 그는 시간이 나면 경기장을 찾아 롯데를 응원했다. 얼마 전 그의 SNS에는 경기장을 찾아 롯데를 응원하는 모습과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있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병마를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또 다른 병마가 그를 찾아왔다. 다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에 그는 감염됐다. 고령에 큰 지병을 안고 있는 그에게는 결코 찾아오지 말아야 할 불청객이었다. 쇠약해진 그의 몸은 코로나19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몇몇 보도를 통해 전해지고 롯데 팬들은 그의 쾌유를 기원했지만, 그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이렇게 롯데는 누구보다 사랑했던 한 팬이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그는 평소 롯데의 포스트시즌 경기 응원을 고대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최근 롯데의 가장 마지막 포스트시즌 경기였던 2017 시즌 플레이오프 5차전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의 또 한 번의 포스트시즌 시구는 이제 실현될 수 없는 일이 됐다.

대신 그가 떠나는 길을 외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 구단은 그의 부고 소식을 전하고 장례 절차에 적극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지인들이 상주로 나서 그와 함께 하고 있다. 팬들의 추모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 구단은 경기 전 그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롯데 팬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았던 그로서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롯데 홈구장인 사직야구장에서 팬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서는 열혈팬 한 명의 부고에 왜 이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케리 마허 교수는 열성팬 그 이상의 존재였다. 롯데 하면 떠오르는 인물로 그 상징성이 컸다. 롯데 구단의 역사 한 편에 자리할 수 있을 정도다.

프로스포츠에서 구단이 존재함에 있어 팬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케리 마허 교수의 부고에 대한 롯데 구단의 배려는 팬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배려와 추모에도 케리 마허 교수는 생전의 아쉬움을 완전히 풀지 못했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롯데의 포스트시즌 진출, 한국시리즈 진출을 그는 끝내 볼 수 없었다.

올 시즌도 롯데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하지만 롯데는 포기할 수 없다. 계속된 팀 부진에 실망한 팬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시즌 마무리를 해야 하기도 하고 은퇴 투어를 진행 중인 롯데 레전드 이대호의 현역 마지막 시즌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방인이었지만, 최고 롯데 팬의 평생소원을 이뤄야 한다는 목적이 하나 더 생겼다. 물론, 그가 진짜 원한 건 마지막까지 승리를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서 롯데는 응원하던 그의 진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케리 마허 교수, 한국을 사랑했고 항상 인자한 모습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롯데를 응원했다. 그의 모습은 롯데 팬들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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