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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시즌 우리 프로야구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그동안 외국인 선수 제도가 처음으로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선수 부족에 시달리던 프로야구 초창기, 일본 프로야구 경험이 있는 재일 동포 선수들이 각 구단별로 영입돼 활약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외국인 선수는 아니었다. 아직 프로야구 전반에 외국인 선수의 영입에 대하 이해나 관련 정보도 부족했다.

하지만 1994년 박찬호가 미국 명문 구단 LA 다저스와 전격 계약하며 우리 야구 역사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되면서 해외 야구, 가장 크고 선진 야구를 하는 메이저리그에 대한 대중들이 관심이 커졌다. 박찬호가 LA 다저스의 선발 투수로 큰 활약을 하고 그의 경기가 전국에 중계되면서 야구 팬들은 메이저리그 경기에 매료됐다. 선진 야구, 더 나은 리그 경기력에 대한 갈증이 생겨났다. 이는 리그의 문을 여는 데 있어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이미 프로야구 각 구단들도 해외 스프링캠프를 하면서 미국과 일본에서 선진 야구를 습득하고 그 효과를 느끼는 중이었다. 자연스럽게 외국인 선수 제도의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1998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한 트라이아웃이 미국 현지에서 열렸다. KBO 리그행을 원하는 다수의 외국인 선수들이 이에 참여했다. 그들에게는 KBO 리그의 미지의 땅이지만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고 KBO 리그 역시 외국인 선수 영입이 리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야구팬들은 더 발전한 야구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외국인 선수 제도는 이후 그 제도가 지속 보완되고 발전됐고 외국인 선수는 각 구단의 전력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 엔트리가 3명으로 제한되고 타자와 투수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없지만, 통상적으로 투수 2명, 타자 1명으로 구성되는 외국인 선수의 활약 여부는 그 팀의 그 해 농사를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이제 외국인 선수의 영입과 관리는 그  팀의 성적에 직결되는 문제다. 

 

 

2013 시즌 시구 행사시 호세

 


이런 외국인 선수 제도 속에서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KBO 리그를 찾았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이들도 많았지만, 야구팬들이 기억 속에 남을 활약을 한 선수들도 다수 있다. 몇몇 외국인 선수는 오랜 세월 팀과 함께 하면서 레전드 급 사랑을 받기도 했다. 두산에서 활약했던 투수 니퍼트와 타자 우즈는 올해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4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롯데 자이언츠 역시 롯데 팬들의 기억 속에 남는 외국인 선수들이 있다. 단연 돋보이는 이름을 펠릭스 호세다. 선수 등록명 호세로 리그에서 활약했던 그는 롯데에서 4시즌만 활약했지만, 그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그는 리그에서 보기 드문 좌. 우 타석에 모두 설수 있는 스위치히터였고 모두 뛰어난 장타력을 자랑했다. 상대를 압도하는 피지컬도 있었다. 여기에 성적도 뛰어났다. 1999 시즌 롯데에 영입된 그는 그 해 36홈런 122타점을 기록하며 롯데는 물론이고 리그 최상위급의 타자가 됐다. 호세를 중심으로 한 롯데 타선은 매우 강력했다. 호세 효과였다. 

그 해 롯데는 지금도 포스트시즌의 중요한 명 승부로 기억되는 삼성과의 플레이오프를 7차전 끝에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 한화에 패하며 우승에 이르지 못했지만, 롯데의 포스트시즌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롯데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7차전은 최고의 명승부였다. 그 경기에서 롯데는 초반 밀리는 경기를 했지만, 경기 후반 타선이 힘을 내면서 삼성을 추격하는 흐름이었다. 여기서 호세의 홈런이 나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경기가 열렸던 삼성의 홈 대구야구장은 삼성 팬들의 일방적 응원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 중 일부 과격한 삼성 팬들이 호세가 홈런을 때리고 홈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운동장에 오물을 투척했다. 홈으로 향하던 호세가 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 롯데 더그아웃에 근처에 있던 삼성 팬 일부가 각종 오물을 다시 투척하면서 상황이 커졌다. 마침 그 팬이 던진 오물이 호세를 맞추고 말았다. 흥분한 호세는 야구 방망이를 삼성 팬들이 있는 관중석을 향해 던지는 과격한 행동을 했다. 이후 롯데 선수들과 삼성 팬들이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고 운동장은 삼성 팬들이 던지는 각종 오물들로 뒤덮이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이미 경기 내내 일부 삼성 팬들의 과격한 응원으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던 상황이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호세는 경기에서 퇴장을 당했다. 

하지만 롯데 선수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를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고 주장 박정태를 중심으로 짐을 싸 경기장을 나가려 했다. 코치진들의 만류로 선수들은 돌아왔지만, 경기장 분위기가 정리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 롯데는 중심 타자 호세 없이 경기를 이어갔다.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그 사건은 롯데 선수들을 더 강하게 뭉치고 집중하게 했다. 롯데는 경기 후반 지금은 고인이 된 임수혁이 삼성 에이스 임창용으로부터 동점 홈런을 때려내며 경기를 연장으로 몰고 갔고 연장전 끝에 승리할 수 있었다.

호세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지만, 선수를 위해 하는 부당한 행동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고 공감을 얻기도 했다. 롯데 팬들에게는 그의 존재가 확실히 마음속에 각인되는 일이었다. 

이런 활약에도 호세는 메이저리그 도전을 위해 롯데와 재계약하지 않았고 2000시즌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양키즈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 롯데와 롯데 팬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이 아쉬움은 2001 시즌 호세가 롯데와 다시 계약하며 돌아오며 사라졌다. 

 

 

 



2001 시즌은 호세에게 최고의 시즌이었다. 그 시즌에서 호세는 0.335의 타율에 36홈런, 102타점을 기록했고 0.503의 출루율과 함께 0.695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1.198의 OPS는 역대급 기록이었다. 더 놀라운 건 호세가 무려 127개의 볼넷을 얻어냈다는 사실이었다. 호세는 2019 시즌의 122타점보다 줄어든 타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상대 투수들이 득점권에서 그를 철저히 견제한 결과였다. 상대 팀은 볼넷을 주는 한이 있었도 득점권에서 그에 대한 승부를 피하려 했다. 그만큼 호세는 리그를 지배하는 공포의 타자였다. 정규 시즌 MVP 후보로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시즌 막바지 삼성과의 경기에서 호세는 삼성 투수 배영수를 경기 중 주먹으로 가격하는 폭행 사건을 일으켰고 잔여 경기 출전 금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 경기에서 배영수는 호세에 이어 또 다른 외국인 타자 얀에게도 연거푸 몸 맞는 공을 던졌다. 호세는 자신의 몸 맞는 공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후속 타자의 몸 맞는 공에 격하게 반응했다.

호세는 만류하는 선수들과 코치진을 뒤로하고 마운드로 향했고 강 펀치를 날렸다. 거구의 몸이었던 그의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 당한 배영수는 그대로 쓰러졌다. 호세는 리그에서 정상급 선발 투수인 배영수가 몸 맞는 공을 연속으로 그것도 상대 중심 타자들에게 던졌다는 건 분명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호세의 참교육으로 각색되어 야구팬들에게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호세는 훗날 그 행위를 동료를 보호하기 위한 일이었다고 했다. 실제 메이저리그에서는 고의로 타자를 맞히는 빈볼이나 야구의 불문율을 어기는 비신사적 행위 등에 대해 응징하는 일이 많고 이로 인한 벤치클리어링도 다반사다. 호세의 행동은 KBO 리그를 무시한 것이었다기보다는 야구 문화의 차이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빼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1999 시즌 관중석 방망이 투척 사건에 이어 2001 시즌 경기 중 폭행 사건으로 호세는 악동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우람한 체격에 강한 인상까지 더해져 호세에게는 나쁜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하지만 롯데 팬들에게는 달랐다. 호세의 뛰어난 성적과 거칠어 보이는 이미지는 롯데 팬들을 매료시켰다. 수비보다 공격에 더 중점을 두고 분위기에 크게 좌우되는 팀 색깔과 호세는 잘 어울렸다. 

이런 호세와 롯데의 인연은 2001 시즌을 끝으로 정리되는 듯 보였다. 중징계를 받은 호세는 2001 시즌의 잔여 경기에 나설 수 없었고 시즌 후 각종 시상에서도 배제됐다. 그의 악동 이미지는 재계약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호세 또한, 메이저리그 도전에 목표를 두면서 그는 과거의 외국인 선수로 남을 것으로 보였다. 대신 호세가 떠난 자리에는 롯데는 물론이고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 이대호가 들어섰다. 2001 시즌 호세의 '참교육' 사건 이후 호세는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이대호가 그 자리에 들어왔다. 이대호는 투수로 입단했지만, 타자로의 전환을 준비 중이었다. 호세의 돌출 행동이 이대호 시대의 개막과 연결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끝나는 듯 보였던 롯데와 호세의 인연은 2006 시즌 다시 이어졌다. 이미 메이저리그 이력도 더는 이어가지 못하고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있었지만, 호세는 다시 롯데와 손을 잡았다. 전성기 기량은 아니지만, 롯데는 그의 관록을 믿었다. 또한, 큰 침체기에 있었던 롯데로서는 팀 분위기를 바꿀 카드가 필요했다. 점점 멀어져 가는 팬들의 관심을 불러올 수 있는 카드로 호세는 적격이었다. 

2006 시즌 호세는 40살이 넘은 나이에도 22홈런, 78타점의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2001 시즌 괴물타자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중심 타자로 제 역할을 했다. 호세는 재계약하며 2007 시즌에도 롯데와 함께 했다. 순조롭게 이어진 것으로 보이는 2006 시즌이었지만, 사건이 있었다. 

2006 시즌이 한창이던 시점에 롯데와 지금은 SSG 랜더스가 된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사건이 발생했다. 그 경기에서 호세는 SK 투수 신승현에게 공을 강하게 맞았다. 호세는 그 공이 의도적이라 판단했고 마운드로 돌진했다. 주변 선수들의 만류와 글러브를 집어던지며 빠르게 피신(?) 한 신승현의 대체로 또 한 번의 참교육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모두를 놀라게 했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벤치로 돌아간 투수 신승현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나온 호세에 도발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발전했다. 이에 자극받은 호세는 다시 SK 벤치 쪽으로 돌진했다. 폭력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여기에 롯데 코치진과 SK 코치진 양 팀 선수들이 호세를 넘어뜨려 말렸고 더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지금도 많은 야구팬들이 기억하는 경기 중 난투극이었다. 호세와 신승현은 직접적인 충돌이 없었던 탓에 벌금의 징계만 받았다. 하지만 호세의 남다른 성격이 드러나는 일이었다. 

 

 

롯데 시절 호세

 



이렇게 호세는 선수 생활 말년에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았다. 이런 호세를 롯데 팬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호세 역시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07 시즌 호세는 극심한 타격 부진에 빠졌다. 팀이 기대하는 홈런포가 실종됐다. 노쇠회가 뚜렷했다. 호세는 시즌 첫 홈런을 때려내고 얼마 안가 교체되고 말았다. 롯데 팬들의 큰 지지와 응원을 받았던 그였지만, 냉혹한 비즈니즈의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아쉬운 이별을 했지만, 롯데와 호세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2013 년에는 롯데의 초청으로 방한해 구단이 주체하는 각종 행사와 시구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에도 종종 우리 방송 매체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의 근황을 소개하고 그가 KBO 리그에서 활약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비록, 4시즌이었지만, 호세에게도 롯데에서의 경험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롯데에서 활약하던 시절 호세는 부산에서 최고 유망 인사였다. 어디를 가던 큰 환영을 받았고 자신의 돈을 내고 식사를 한 적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은 다소 야구 열기가 식었지만, 야구만 잘하면 부산에서는 최고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을 호세는 몸소 체험했다. 호세로서는 어디서도 느끼지 못한 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 팬들은 호세에게서 강렬한 에너지를 느꼈다. 그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롯데 성적이 크게 엇갈렸다는 점도 그에 대한 긍정적 인상을 남기는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다. 또한, 호세는 강렬한 이미지였지만, 팬 서비스에는 아주 적극적이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팬들의 소중함을 아는 프로선수이기도 했다.

이제 펠릭스 호세의 이야기는 정말 먼 기억 속의 이야기가 됐다. 하지만 짧았던 롯데에서의 선수 생활 속에 호세는 롯데 팬들에게 지워지지 않은 기억을 남겨줬다. 롯데는 그를 검은 갈매기라 불렀다. 길지 않은 롯데에서의 선수생활 동안 그는 롯데 그 자체였다. 앞으로 롯데에서 호세 이상의 기억을 남겨줄 외국인 타자가 나올 수 있을지 아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글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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