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의 여운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시점에 야구의 월드컵이라 할 수 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23 WBC의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WBC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협회가 야구의 세계회과 저변 확대 등을 명분으로 창설한 국제 대회로 야구에서는 유일하게 프로선수들의 포함된 최강의 전력이 맞붙는 국가 대항전이다.
애초 이 대회는 이벤트성 성격이 강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주관하는 대회지만 정작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참가에 난색을 보였다. 대회가 열리는 3월은 스프링 캠프에 이어 리그 준비를 위한 과정에 있다. 이 기간 실전 경기를 하는 건 야구 선수들의 몸에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특히, 리그 준비과정에 길고 복잡한 투수들에게는 WBC 참가가 큰 부담이다. 실제 이 대회를 참가한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며 그 해 시즌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많았다. 이는 우리나라 리그도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회 참가를 위해 기존 루틴과 달리 몸을 일찍 만들고 실전에 나서는 건 부상 위험과 함께 체력적인 부담을 수반한다. 이런 이유로 대회 흥행을 좌우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 스타 선수들의 대회 참가 열기가 뜨뜻미지근했다. 스타 선수들에게 천문학적인 연봉을 지불하는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부상 위험이 있는 대회에 선수들이 참가하는 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WBC는 국가 대항전에 진심인 한국과 일본, 대만이 적극적으로 대회가 임하면서 그 위상이 높아지고 흥행에도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2006년 시작한 WBC 초창기, 한국, 일본, 대만은 리그 최상급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국가대표로 대회에 참가했다. 세 나라는 WBC에서 치열하게 대결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야구로 맞서기는 하지만, 이 대회에서 각 나라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최상의 전력으로 나설 수 없었다. 자국 국가와 리그를 대표하는 WBC의 의미가 남다른 아시아 3국이었다.
그중에서 한. 일전은 다른 구기 종목과 다를 것 없는 긴장된 경기였다. 애초 리그의 수준이나 시장의 규모, 선수 저변 등에서 한국은 일본에 밀린다는 평가였고 객관적 전력에서 한국의 열세는 분명했다. 하지만 한국은 2006년 1회 대회에서 일본에 거듭 승리하며 4강에 올랐다. 2009년 2회 대회에서도 한국은 결승전에 올라 일본과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한수 아래로 평가받았던 한국의 선전은 WBC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특히, 언더독의 반란이라 해도 될 정도로 한국의 대 일본전 선전은 야구팬들은 물론이고 국민적 관심사였다.
WBC의 거듭된 선전과 베이징 하계 올림픽 야구 금메달 등 국제 대회 선전은 프로야구의 인기 회복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반 프로야구는 심각한 인기 하락에 직면해 있었다. 이런 리그의 위축은 모기업에 절대 의존하는 프로야구의 기반을 흔들었다. 수많은 우승 이력을 쌓았던 KBO 리그의 명문 구단 현대 유니콘스가 모기업의 자금난에 해체 위기를 겪으며 당시 8개 구단 체제마저 무너질 위기였다. 현대 유니콘스는 야구 전문 기업을 표방하는 히어로즈에 인수됐고 8개 구단 체제가 힘겹게 유지됐다.
하지만 국제 대회에서 야구에 선전을 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야구의 흥행 열기가 되살아났다. 이는 기업들의 관심을 다시 불러왔다. 신생 구단 창단 경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제9구단인 NC 다이노스, 제10구단인 KT 위즈가 새롭게 창단됐다. NC는 이전 프로야구에 없었던 IT 기업을 모기업으로 하는 구단으로 프로야구의 판을 더 커지게 했다. KT 역시 기업 오너 경영 체제가 아닌 기업의 프로야구 참여라는 점에서 이전과 달랐다. 그만큼 프로야구의 홍보, 마케팅적 가능성이 입증되고 시장이 커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프로야구의 시장은 커지고 그에 비례해 야구장 등의 인프라도 발전했지만, 이런 프로야구의 인기를 이끌었던 국제 대회 성적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2009년 WBC 준우승을 기점으로 국제대회에서 한국은 고전하기 시작했다. 그 중간 또 다른 국제대회인 프리미어 12 우승의 기억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내림세가 분명했다.
야구에서 가장 큰 국가 대항전이라 할 수 있는 WBC에서 한국은 1라운드 통과마저 하지 못할 정도로 부진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주축이고 그마저도 어렵게 선수들을 끌어모은 네덜란드, 이스라엘 야구와는 거리가 먼 국가들에 연달아 패하면서 야구 대표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해 리그 규모만 커졌지 선수들의 경기력 등 리그 경쟁력은 오히려 퇴보했다는 비난과 우려가 이어졌다. 이전과 달리 WBC 대회 참가에 미온적인 선수들의 구단의 태도, 부족한 준비 등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여기에 더해 프로야구 선수들의 높아진 위상에 비례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일탈 행위는 프로야구에 대한 인기 하락으로 연결됐다.
2021년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터져 나온 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포함된 프로야구 선수들의 코로나 방역 지침을 무시한 심야 술판 파동은 야구계 전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더 확산시켰다. 또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최소 동메달 이상의 획득할 것으로 예상했던 대표팀이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야구의 위상은 더 크게 추락했다.
이 대회를 위해 프로야구 리그를 중단하고 나름 최정예 멤버로 대회가 나섰지만, 최강 전력이라 할 수 없는 미국과 일본에 연패당하고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주축인 중남미 국가들에도 고전하는 야구 대표팀의 모습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이는 프로야구 리그 수준에 대한 강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 프로야구 리그를 운영하고 있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리그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등 세계적 관심을 받았던 KBO 리그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가 하는 냉소적인 시선이 쏟아졌다.
2023 WBC는 실추된 프로야구, KBO 리그의 명예를 회복한 기회다. 이번 대회에서도 무기력한 경기를 한다면 코로나 팬데믹을 넘어 리그 정상화로 향해가는 KBO 리그의 발걸음이 다시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표팀은 비효율적이었던 전임 감독제를 폐지하고 전 시즌 우승 팀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하도록 했다. 야구 대표팀 감독에 대한 부담으로 너도나도 감독직을 고사하는 상황 속에서 이미 현직에서 멀어진 감독을 선임하면서 생기는 경기 감각 저하와 이로 인한 경기 운영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2021 시즌 우승팀인 KT 위즈의 이강철 감독이 2023 WBC 대표팀을 지휘할 예정이다. 이강철 감독은 2021 시즌 KT의 창단 첫 정규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감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KBO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고 대표팀 선수 차출과 관련해 구단들도 협조적이다.
이에 더해 선수 국적에 유연한 대회 특성을 이용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선수들의 대표팀 참가에도 KBO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있는 야구팬들이 알만한 선수들이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대회가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KBO는 WBC 성적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최근 KBO가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우는 국제 경쟁력 강화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서 최상의 전력으로 2023 WBC 대표팀이 구성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우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참가가 불투명하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 류현진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로 올 시즌 후반기에나 실전 등판이 가능하고 중심 타자로 활약이 기대됐던 최지만도 수술 재활 등으로 WBC에서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기대했던 메이저리그 한국계 선수들의 가세도 가장 필요한 투수 부분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워 보인다. 대표팀은 KBO 리그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회가 나서야 할 상황이다.
이는 마운드에 있어 오랜 세월 대표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했던 김광현, 양현종 등 베테랑들에 다시 의존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은 리그에서 여전히 정상급 투수로 활약하고 있지만, 30대 후반의 나이다. 컨디션을 대회에 맞게 끌어올리는데 부담이 크고 최상의 투구를 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문제는 이들을 대신할 수 있는 선발 투수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박세웅이나 원태인, 고영표, 소형준, 이의리 구창모 등 자원인 풍부하지만, 국제 경기 경험 면에서 아쉬움 있다. 리그에서 외국인 투수들에 비해 확실한 비교 우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도 기대보다 걱정을 앞서게 한다. 지난 시즌 외국인 투수들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리그 최고 선발 투수로 우뚝 선 안우진이 고교 시절 학폭 문제가 발목이 잡혀 대표팀에서 배제된 건 경기력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불펜진 역시 지난 시즌 세이브왕 고우석이 있지만, 불펜진의 핵심을 이룰 투수들의 경험 부족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타선 역시 최근 국제 경기에서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주축인 상대 팀 투수들에 고전했던 타선이 폭발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23 시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기대하고 있는 리그 최고 타자 이정후를 축으로 각 구단의 중심 타자들로 구성된 타선이 이번 대회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한국이 대표팀 구성에 고심을 하는 사이 다른 국가들은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대거 참가하는 강력한 전력을 만들고 있고 미국은 대형 스타 선수들의 참가가 확정적이고 일본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투. 타 모두 정상급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오타니를 포함해 국. 내외 리그 선수들을 망라한 대표팀 구성을 예고하고 있다. 대만 역시 다수의 해외파 선수들을 포함해 최상 전력으로 나설 예정이다. 중남미 국가들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전과 달리 WBC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국가 대항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각 나라의 관심과 함께 우수한 선수들의 참여가 확대되는 분위기가 이번 대회 더 분명해지고 있다. 바꿔 말하며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한층 더 어려워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할 수 있다.
대표팀은 3월 8일부터 시작되는 대회에서 도쿄에서 열리는 본선 1라운드 리그전에 나선다. 한국인 일본, 호주, 중국, 체코와 함께 1라운드 B조에 속해있다. 대표팀은 1라운드부터 일본과 대결해야 한다. 1라운드 통과의 최소 조건인 조 2위까지는 무난해 보이지만, 이전 WBC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로 1라운드에서 탈락했던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호주는 마이너리그에 다수의 선수들이 있고 겨울 리그를 지속적으로 여는 등 결코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갖추고 있다. 결코 방심할 수 없다. 1라운드부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야구는 1980년 초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후 우리나라 최고 인기 스포츠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양적 성장에 미치지 못하는 질적 수준과 여전히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시스템,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리그 환경, 무엇보다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국제 경기 경쟁력 부재 등으로 그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팬들의 수준은 한층 높아졌지만, 그에 비례해 커진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는 게 우리 야구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젊은 층에서 그 인기 하락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금 프로야구의 위치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위기는 누적된 문제들이 삽시간에 나타날 수 있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고 계기가 필요하다. 2023 WBC는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야구 강국들이 모두 나서는 이 대회에서 경쟁력을 보인다면 야구 팬들의 마음도 다시 뜨겁게 할 수 있고 2023 프로야구의 열기도 더 크게 할 수 있다. 대회에 임하는 선수단이나 KBO 역시 철저히 준비하고 더 단단한 마음으로 대회에 임해야 한다.
과연 2023 WBC에서 야구가 2022 카타르 월드컵 축구 못지않은 감동을 안겨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진 : WBC,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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