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는 물론이고 스포츠 선수에게 에이징 커브는 은퇴를 연상하게 하는 단어다. 각종 성적지표가 나이와 함께 반비례하는 현상을 말하는 에이징 커브는 특히, 프로야구에서 최근 자주 사용한다. 그 전 시즌까지 펄펄 날던 선수가 다음 해 급격한 부진에 빠지면 그 선수의 나이를 살피고 30대 선수에게는 에이징 커브라는 말이 붙는다. 에이징 커브는 선수에게 전성기가 지나가 내리막만 남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에이징 커브를 극복하고 반등하는 선수도 있다. 2022 시즌 35개의 홈럼으로 홈런왕에 오른 KT 박병호는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나이와 함께 찾아온 긴 슬럼프와 타격 부진으로 리그 최고 홈런왕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박병호는 2021 시즌 후 FA 자격이 주어졌지만, 시장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최고 전성기를 함께 했던 원 소속팀 키움도 그와의 FA 계약에 미온적이었다.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던 박병호는 베테랑 중심 타자가 필요하던 KT의 오퍼를 받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히어로즈 선수 생활을 끝내야 했다.
이런 박병호를 영입한 KT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많았지만, 박병호는 보다 타자 친화적인 KT의 홈구장 환경과 타격폼 변화가 성공하며 홈런왕의 위용을 되찾았다. 박병호는 부상 선수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나홀로 팀 타선을 굳건히 지켰고 KT가 초반 부진을 딛고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KT의 박병호 FA 영입은 대 성공이었다. 올 시즌도 박병호는 부상 후유증으로 지난 시즌의 활약만큼은 아니지만, 중심 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KT의 박병호가 지난 시즌 에이징 커브를 극복한 대표적 선수라면 올 시즌은 NC 손아섭을 꼽을 수 있다. 손아섭은 지난 시즌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활약했던 롯데를 떠나 NC와 FA 계약을 했다. 롯데 팬들은 지역 라이벌 팀에 이대호에 이어 팀 간판 선수가 될 수 있는 손아섭을 빼앗겼다는 점에서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2번째 FA 자격을 얻은 손아섭의 롯데 잔류가 유력했다는 점에서 롯데 팬들은 구단의 협상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하지만 롯데 구단은 그동안 손사업이 롯데 선수로서 쌓아온 커리어와 팀 공헌도를 무시할 수 없지만, 미래 가치를 냉정히 평가했다. 팀의 세대교체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30대 후반에 접어든 손아섭의 향후 활약 가능성을 롯데는 높게 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 두 번째 FA 자격을 앞둔 2021 시즌 손아섭은 타격 각 지표에서 분명한 내림세를 보였다.
파워 저하는 물론이고 안타 생산이나 장타율과 출루률 모든 부분이 지난 시즌보다 확연히 떨어졌다. 무엇보다 15개의 병살타는 그의 타구 질이 이전만 못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손아섭은 점점 공을 띄우기 보다는 땅볼을 생산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는 득점권에서 생산능력을 떨어뜨렸다.
이렇게 롯데가 손아섭과의 FA 협상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NC가 나섰다. NC는 2021 시즌 후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중심 타자 나성범이 FA 계약으로 KIA로 떠난 이후 타선 약화를 메울 대안이 필요했다. NC는 두산의 중심 타자 박건우에 롯데 중심 타자 손아섭을 대안으로 여겼고 두 선수를 FA 영입했다. NC는 손아섭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
이런 NC의 판단은 지난 시즌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손아섭은 2022 시즌 그 전 시즌보다도 부진한 공격 지표를 남겼다. 타율은 2010 시즌 이후 가장 낮은 0.277을 기록했고 장점은 안타 생산 능력도 감소했다. 점점 떨어지던 장타율은 더 떨어졌고 출루률 마저 그의 평균을 크게 하회했다. 에이징 커브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2022 시즌이었다. 반면 손아섭을 떠나보낸 롯데는 외야의 고승민이라는 유망주가 등장하면서 그의 공백을 후반기 메웠고 외야진에 다수의 유망주를 기용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롯데가 손아섭과 두번째 FA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건 비즈니스적으로는 성공으로 보였다.
하지만 손아섭은 이대로 내림세의 커리어를 하나의 흐름이 되도록 하지 않았다. 2023 시즌 손아섭은 나이를 잊는 활약으로 그가 살아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손아섭은 올 시즌 경기를 치를수록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타격의 정교함에서 더 진화한 모습을 보였다.
손아섭은 그의 힘이 떨어진 상황은 인정하고 그의 타격에 대한 이론을 새롭게 정립한 듯 보였다. 장타률과 홈런에 집착하지 않고 보다 많은 안타와 출루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타격을 했다. 그의 힘을 뺀 타격은 도리어 떨어져가던 장타율과 출류률을 높이는 반전으로 이어졌다.
손아섭은 홈런이 늘지 않았지만, 좌. 우중간을 뚫는 갭파워를 발휘하며 이미 지난 시즌만큼의 2루타를 생산하고 있고 많아진 안타는 더 많은 출루로 이어졌다. 여기에 득점권에서 높은 타율은 중심 타자로서의 존재감을 되살리게 했다. 무엇보다 손아섭은 부상 선수가 속출하는 팀 상황에서 시즌 내내 꾸준히 라인업을 지키며 팀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 크다.
이런 활약의 결과 손아섭은 8월 5일 현재 리그 타율 부분에서 SSG 외국인 타자 에레디아, 삼성 구자욱 등과 함께 치열한 타이틀 경쟁을 하고 있다. 손아섭에게는 그의 프로선수 생활 중에서 타율왕은 단 한 번도 타이틀 홀더가 된 경험이 없다. 리그에서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 뛰어난 콘텍트 능력으로 구질과 구종에 상관없이 많은 안타를 양산하는 그의 공격적인 타격 스타일에 맞는 최다 안타왕은 있었지만, 타율왕은 손아섭과 거리가 있었다. 최근이었던 2020 시즌 0.352의 고타율에도 타율왕을 차지하지 못한 아쉬움도 가진 손아섭이다.
올 시즌 손아섭은 보다 정교해지고 완성도를 높은 그의 타격이 빛을 발하고 있다. 타율왕은 이런 변화의 성공을 상징하는 타이틀이기도 하지만, 그가 아직 리그 최고 수준의 타자임을 입증하는 상징이 될 수 있다.
손아섭의 꾸준한 활약은 올 시즌 NC가 예상을 깨고 포스트시즌 진출의 가능성을 높여가는 중요한 동력 중 하나가 되고 있다. 테이블 세터나 중심 타선 모두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손아섭은 그 성적뿐만 아니라 특유의 근성 넘치는 플레이를 더하며 젊은 선수가 많은 NC의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 활약이 NC의 포스트시즌 진출로 연결된다면 손아섭은 2017 시즌 롯데 소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출전 한 이후 오랜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다. 여러가지로 의미가 큰 손아섭의 2023 시즌이다.
손아섭이 에이징 커브의 파고를 넘어 지난 시즌 박병호의 홈런왕에 이어 베테랑의 반전 타이틀 홀더가 될 수 있을지 그의 남은 시즌 활약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사진 : NC 다이노스,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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