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728x170

 

프로야구 역사를 빛낸 수많은 레전드 선수들 중 최동원은 매우 극적인 선수 생활을 한 선수로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아마야구 시절부터 최고 투수로 국내외 대회에서 소속팀과 대표팀을 이끌었던 최동원은 그 과정에서 엄청난 혹사에 시달렸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투구 일정을 소화해야 했지만, 최동원은 묵묵히 던지고 또 던졌다. 

그가 1983년 프로에 입단한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는 프로야구 초창기로 선발, 중간, 마무리의 투수 역할 분담의 개념이 없었다. 준비 없이 시작한 프로야구인 탓에 장기 레이스를 버틸 수 있는 선수층이 아니었고 구단이나 경기 운영도 아마야구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의 기준이라면 도저히 프로라 할 수 없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있었다. 

이에 팀에서 잘 던지는 투수들은 선발과 중간, 마무리까지 모든 역할을 다하며 수시로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최동원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1984 시즌은 그에게는 최고의 시즌이었지만, 최악의 혹사를 감당해야 했던 시즌이었다. 

그해 최동원은 무려 284.2이닝을 투구했다. 선발로만 나선 기록도 아니었다. 하루 걸러 하루 등판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최동원은 자주 마운드에 올랐다. 당시 강한 전력이 아니었던 롯데는 그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동원은 그런 상황에서 빛나는 성적을 기록했다. 최동원은 그 해 27승 13패 6세이브 방어율 2.40의 성적을 남겼다. 여기에 오랜 세월 깨지지 않았던 시즌 223탈삼진의 대기록도 작성했다. 

 

 




지속적인 혹사에도 최고 투수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최동원 


최동원의 활약에 힘입어 롯데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뉘어 정규리그가 진행되던 시기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우승팀이 대결하는 방식이었다. 1984 시즌 전기리그 우승 팀 삼성은 한국시리즈에 진출을 확정했고 후기리그에서는 컨디션을 조절하며 한국시리즈를 대비했다.

그 과정에서 삼성은 후기리그 우승 경쟁을 하던 롯데와 지금의 두산인 OB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후기리그 막바지 롯데와 삼성은 마지막 연전에서 대결했다. 이 경기에서 삼성은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경기에 나서지 않았고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마운드 운영을 했다. 고의 패배 의혹이 강하게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누가 봐도 져주기 경기로 보이는 삼성의 모습이었다.

결국, 롯데는 삼성의 도움(?) 속에 후기리그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다. 삼성으로서는 한국시리즈에서 보다 수월한 상대인 롯데를 선택한 셈이었다. 그만큼 롯데의 전력은 삼성에 비해 크게 약했고 삼성은 당대 최고 레벨의 선수들이 투. 타에 걸쳐 즐비했다. 구단에 대한 모기업의 지원도 최고 수준이었다. 

롯데가 믿는 구석은 오직 하나 최동원이었다. 롯데는 최동원의 활용을 최대한 극대화하는 한국시리즈 전략으로 나섰다. 최동원은 1, 3, 5, 7차전 등판을 예정하고 있었다. 삼성은 최동원이 대단한 투수지만, 그 경기 중 한 경기만 승리하면 우승할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이에 한국시리즈는 롯데와 삼성의 대결이 아닌 최동원과 삼성의 대결로 전개됐다. 

 

 

반응형




1984년 한국시리즈 기적의 4승으로 롯데 우승 이끈 최동원 


최동원은 압도적인 구위로 1차전과 3차전을 각각 완투하며 롯데 승리를 이끌었다. 삼성은 2차전과 4차전을 승리했고 시리즈는 2승 2패에서 5차전을 맞이했다. 이 경기에서 최동원은 완투했지만, 승리투수가 아닌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시리즈 전적 2승 3패, 롯데는 최동원 없는 벼랑 끝 승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롯데는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초반부터 앞서나갔다.

롯데는 승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날 완투 경기를 한 최동원을 구원 투구로 마운드에 올렸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결국, 최동원은 남은 이닝을 책임지며 승리투수가 됐다. 그것만으로도 최동원은 초인 그 자체였다. 

하지만 최동원의 영웅 스토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7차전에서 최동원은 다시 한번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한국시리즈 5번째 등판이었다. 최동원은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지만, 롯데는 한국시리즈 마지막 승부에서 최동원 이상의 투수가 없었다. 그의 어깨에 다시 기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최동원 역시 마지막 승부를 피할 마음이 없었다. 

최동원은 롯데 선수단과 팬들의 염원을 함께 하며 선발 마운드에 올랐지만, 크게 떨어진 구위가 문제였다. 삼성 타선은 지친 최동원을 상대로 초반 4득점했고 앞서가는 경기를 했다. 최동원이 무너진 상황에서 롯데의 한국 시리즈 우승 꿈도 사라져갔다. 여기에 반전이 일어났다. 경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롯데 타자들이 각성했다. 

롯데 타자들은 강한 집중력을 보였고 점수 차를 좁혀갔다. 그 사이 최동원도 구위를 회복하며 추가 실점을 막았다. 롯데가 3 : 4로 추격한 8회 초 롯데 공격에서 기적 같은 드라마가 연출됐다. 롯데는 1사 1, 3루 기회에서 유두열이 타석에 섰고 그는 역시 한국시리즈 3승을 기록했던 김일융을 상대로 역전 3점 홈런을 때려냈다. 유두열은 한국시리즈에서 1할대 타율에 극히 부진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한방을 때려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선발 라인업에서 유두열의 타순은 5번 아니었지만, 기록원의 실수로 5번 타순에 들어갔고 롯데 감독이 그 타순을 변경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결국, 롯데는 최동원이 남은 이닝을 추가 실점 없이 막아내고 완투 경기를 하며 한국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우승할 수 있었다. 그 4승은 모두 최동원의 승리였다. 롯데의 한국 시리즈 우승은 최동원의 우승이라 할 수 있었다. 삼성의 져주기 파문과 최동원과 김일융이라는 당대 최고 투수들의 맞대결, 유두열의 극적인 역전 3점 홈런 등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던 1984년 한국시리즈였다. 롯데의 한국 시리즈 우승은 야구팬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야구에 흥미를 가지게 할 만큼 흥미로운 대결이었고 야구의 묘미를 그대로 보여준 경기였다. 

이렇게 롯데 구단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영웅 최동원이었지만, 이후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1984 시즌의 혹사는 그의 선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최동원은 연보 협상 등에서 구단과 수시로 마찰을 빚었고 민주화 열기에 뜨겁게 달아오르던 1988년 프로야구 선수협 창설을 주도하며 사회적은 큰 파문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시도는 구단들의 방해와 이로 인한 선수들의 미온적 자세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선수들의 처우개선과 프로야구 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첫 시도였다. 최동원은 고액 연봉을 받고 있었고 이를 주도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일에 앞장섰다. 


복복성 트레이드, 쓸쓸한 은퇴,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롯데로의 귀환


우려대로 최동원은 1988시즌 종료 후 돌연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다. 선수협 파문과 관련한 보복성 조치였다. 롯데의 우승을 이끌었던 레전드의 삼성행은 롯데 팬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큰 비난이 롯데 구단에 쏟아졌다.

이렇게 삼성으로 트레이드 된 최동원은 누적된 혹사 후유증으로 빠르게 에이징 커브가 찾아왔고 리그 최고 투수의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 어쩌면 누구보다 사랑했던 고향 팀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과 이로 인한 의욕 저하가 그를 무너뜨렸을지도 모른다. 최동원은 1990 시즌을 끝으로 조용히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 흔한 은퇴식도 없었다. 

 

 

 



이후 최동원은 야구 지도자로 방송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한때는 지방자치 선거에 출마해 정치인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경기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는 지도자로 그것도 롯데에서 새로운 인생을 열어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롯데는 그를 철저히 외면했고 과거 선수협 파동의 그림자는 그의 현장 복귀를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최동원이 지도자로 현장에 복귀한 건 한화이글스에서였다. 2001년 한화에서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최동원은 투구 코치와 2군 감독으로 지도자 이력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원했던 롯데에서의 지도자 생활을 끝내 현실화되지 못했다. 

이런 최동원에게 암이라는 큰 병이 찾아왔다. 최동원은 긴 투병 생활을 이어가며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지만, 2011년 9월 14일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도 매우 수척해진 모습으로 친선 야구 경기에 모습을 보이며 많은 이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았지만, 웃음 띤 얼굴로 행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생전 최동원이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인 마지막이었다. 


뒤늦은 추모 

 

 

 




최동원과 롯데의 관계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다시 이어졌다. 그의 사후 그가 지도자 생활을 했던 한화에서 장례 등 사후 지원을 하는 모습에 롯데 팬들이 크게 분노했다. 세상을 떠나는 레전드마저 외면하는 롯데 구단의 행태는 큰 비판을 받았다. 여론의 지탄에 롯데 구단은 부랴부랴 그의 장례에 예우를 갖추는 한편, 그의 등번호였던 111번의 영구 결번식, 사직 야구장 광장에 그의 동상을 제작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를 기리는 최동원상이 만들어져 매 시즌 큰 활약을 한 프로, 아마야구 선수들에 대한 시상을 하고 있다.  

이후 롯데 구단은 그의 기일이 되면 홈경기에서 추도식과 함께 관련 행사를 하고 있다. 얼마 전 9월 12일 롯데의 홈구장에서도 관련 행사가 있었다. 늦었지만, 그를 롯데 레전드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최동원 생전에 보였던 롯데 구단의 형태는 두고두고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예우에 보다 진정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또 하나 롯데가 해야 할 일은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다시는 하지 못하고 있는 우승의 역사를 되살리는 일이다. 롯데는 지금까지 1982 시즌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리그에 참여한 이후 단 한 번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올 시즌도 롯데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9월 12일 롯데는 최동원 12주기 추도식이 열린 홈경기에서 승리를 다짐했지만, 그 경기를 패하며 레전드에게 승리를 안겨주지 못했다.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1984년 최동원, 1992년 염종석까지 투수들의 초인적 투구에 기대어 이룬 성과였다. 두 투수는 모두 안경을 낀 투수였고 안경 에이스로 불리기도 한다. 두 투수는 팀에 우승의 영광을 안겼지만, 투수 생명이 단축되고 말았다. 그래도 염종석의 팀의 레전드로 대우받았고 지도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동원은 생전에 롯데로의 귀환이라는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는 매년 열리는 최동원의 추도식을 더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300x250




다시는 재현되지 말아야 할 선수 혹사


최동원이 세상을 떠난 지도 10년이 넘었고 그에 대한 기억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그 기억도 올드팬들이 있어 유지될 수 있다. 젊은 야구팬들에게 최동원은 너무 먼 기억 속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의 한국시리즈 4승은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기준이라면 상식 밖의 일이기도 했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동원의 이야기는 현실이었고 최동원은 한계를 모르는 투수였다. 한편으로서는 투수들에 대한 혹사가 투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아무렇지 않게 일상화됐던 시기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최근 프로야구는 투수들의 투구 이닝이나 투구 수를 관리하고 부상 방지에도 노력하는 모습이다. 투수에 대한 혹사는 팬들이 먼저 나서서 이를 비판할 정도로 성숙한 팬 문화도 만들어졌다. 

이 점에서 얼마 전 끝난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의 한 투수에 대한 혹사 논란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대표팀 감독은 규정에 입각해 이를 잘 활용했다는 식으로 변명했지만, 5경기 연투를 시킨 혹사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3위라는 성과를 남겼지만, 야구팬들에게는 특정 투수에 대한 혹사 논란만 남겼다. 진정 지도자라면 성적 이전에 선수를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 

프로야구 각 구단들의 지향점은 당연히 우승 등 더 나은 성적이지만,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들이 보다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과 관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선수들의 혹사를 바탕으로 한 성적은 이제 팬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글 : jihuni74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반응형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