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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롯데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7차전, 당시 롯데는 1승 3패의 열세를 극복하고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왔습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삼성의 우세를 점치는 상황이었고 투타 모두 삼성이 롯데를 압도하는 전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승부는 마지막까지 이어졌습니다. 과열된 승부는 관중이 던진 이물질에 기인한 호세 선수의 방망이 투척 사건과 롯데 선수들의 집단 퇴장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우여곡절 경기는 9회초 1사 1루, 3:5 로 뒤진 상황에서 롯데의 마지막 공격으로 끝날 듯 했습니다. 호세 선수는 퇴장을 당했고 삼성의 투수는 당시 최고의 마무리였던 임창용 선수였습니다. 호세 선수는 퇴장당해 없었고 롯데 벤치는 한방이 있는 선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임수혁 선수, 임창용 선수의 공을 힘있게 밀어친 타구는 그대로 펜스를 넘었습니다. 기적같은 동점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한방으로 경기는 연장으로 이어졌고 롯데는 접전을 6:5 승리로 마무리하면서 한국시리즈로 진출했습니다. 임수혁 선수의 이 한방은 롯데 팬들의 기억속에 항상 등장하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삼성과의 접전으로 기력이 크게 떨어진 롯데는 한화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4로 지면서 준 우승에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명승부만으로 팬들은 선수들의 선전에 큰 박수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멋진 승부의 주인공 임수혁 선수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2000년 4월 18일 갑작스런 심장 발작으로 그라운에서 쓰러진 이후 10년 가까운 투명생활을 했지만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투명기간 수 많은 팬들과 동료 선수들이 그를 돕고 응원했지만 그 바램을 뒤로 그는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임수혁 선수는 롯데 입단 당시부터 대형 포수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의 장타력은 소총부태 롯데 타선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공격력을 갖춘 대형 포수로 오랜기간 롯데 안방을 지켜줄 것 같았습니다. 7년간의 선수생활 동안 통산 타율 0.266, 홈런 47, 타점 257을 기록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성적이지만 임수혁 선수는 찬스에 강했고 결정적인 장타가 많았던 선수로 기억됩니다. 극적인 상황을 많이 만들었던 선수이기에 팬들의 안타까움은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부재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오랜 암흑기가 시작된 것도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게 하는 요인이었습니다.
사실상 회복 불능의 식물인간 판정을 받은 임수혁 선수였지만 그가 다시 일어날 것이란 믿음을 팬들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인 모금 운동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롯데 뿐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도 힘을 보탰습니다. 그에 대한 성원은 한 개인에 대한 성원이기 보다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함께 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쓰러질 당시 제대로 된 응급체계만 있었더라면 응급처치가 가능한 요원이 한명만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직도 많이 남습니다.
이후 경기장에 엠블란스와 의사가 상주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지만 쓰러진 임수혁 선수는 외로운 투병을 계속 해야했습니다. 가족들은 경제적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이에 대한 책임지는 이가 없었습니다. 오랜 소송끝에 롯데, LG 구단으로 부터 일부 보상을 받을 수 있어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구단들의 행태는 씁쓸함을 자아냈습니다.
최고의 인기스포츠라는 겉 모습과 달리 너무나 열악한 경기장과 각종 시스템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경기장 시설물로 인해 부상을 입는 경우는 여전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길도 없습니다.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개선을 위한 노력들이 느리지만 조금식 진행된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 단초가 된 임수혁 선수는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임수혁 선수, 그의 모습은 2000년 4월 18일 잠실야구장 2루 베이스에서 멈췄고 팬들은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는 그를 볼 수 없습니다. 그의 48호 홈런도 볼 수 없습니다. 그저 기억속에서만 그를 추억해야합니다. 임수혁 선수는 화려하게만 보이던 프로야구의 이면을 생각하게 했고 아직도 그것이 완전히 개선되지 않았기에 그의 죽음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임수혁 선수는 병상에 있는 동안 그를 응원하던 팬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을까요? 그가 일어나기를 고대하던 가족들의 바램을 알 고 있었을까요? 이런 응원들이 그를 지탱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하늘나라도 떠났지만 슬퍼하지만은 않으려 합니다. 힘겨운 삶의 짐을 이제는 벗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짊어졌던 짐들은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 프로야구가 발전하기 위해 해야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떠나는 임수혁 선수도 우리 프로야구가 계속 발전하기를 바랬겠지요?
하늘나라에 있을 임수혁 선수에게 마지막으로 바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그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야구를 계속하기를 말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파서 쓰러지거나 쓰러진 그를 몇 십분동안 방치할 일도 없겠지요. 힘차게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고 더 많은 홈런도 칠 수 있는 임수혁 선수가 되기를 이곳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잘 가세요 임수혁 선수, 당신은 영원한 자이언츠 선수입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우여곡절 경기는 9회초 1사 1루, 3:5 로 뒤진 상황에서 롯데의 마지막 공격으로 끝날 듯 했습니다. 호세 선수는 퇴장을 당했고 삼성의 투수는 당시 최고의 마무리였던 임창용 선수였습니다. 호세 선수는 퇴장당해 없었고 롯데 벤치는 한방이 있는 선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임수혁 선수, 임창용 선수의 공을 힘있게 밀어친 타구는 그대로 펜스를 넘었습니다. 기적같은 동점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한방으로 경기는 연장으로 이어졌고 롯데는 접전을 6:5 승리로 마무리하면서 한국시리즈로 진출했습니다. 임수혁 선수의 이 한방은 롯데 팬들의 기억속에 항상 등장하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삼성과의 접전으로 기력이 크게 떨어진 롯데는 한화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4로 지면서 준 우승에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명승부만으로 팬들은 선수들의 선전에 큰 박수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멋진 승부의 주인공 임수혁 선수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2000년 4월 18일 갑작스런 심장 발작으로 그라운에서 쓰러진 이후 10년 가까운 투명생활을 했지만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투명기간 수 많은 팬들과 동료 선수들이 그를 돕고 응원했지만 그 바램을 뒤로 그는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임수혁 선수는 롯데 입단 당시부터 대형 포수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의 장타력은 소총부태 롯데 타선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공격력을 갖춘 대형 포수로 오랜기간 롯데 안방을 지켜줄 것 같았습니다. 7년간의 선수생활 동안 통산 타율 0.266, 홈런 47, 타점 257을 기록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성적이지만 임수혁 선수는 찬스에 강했고 결정적인 장타가 많았던 선수로 기억됩니다. 극적인 상황을 많이 만들었던 선수이기에 팬들의 안타까움은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부재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오랜 암흑기가 시작된 것도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게 하는 요인이었습니다.
사실상 회복 불능의 식물인간 판정을 받은 임수혁 선수였지만 그가 다시 일어날 것이란 믿음을 팬들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인 모금 운동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롯데 뿐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도 힘을 보탰습니다. 그에 대한 성원은 한 개인에 대한 성원이기 보다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함께 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쓰러질 당시 제대로 된 응급체계만 있었더라면 응급처치가 가능한 요원이 한명만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직도 많이 남습니다.
이후 경기장에 엠블란스와 의사가 상주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지만 쓰러진 임수혁 선수는 외로운 투병을 계속 해야했습니다. 가족들은 경제적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이에 대한 책임지는 이가 없었습니다. 오랜 소송끝에 롯데, LG 구단으로 부터 일부 보상을 받을 수 있어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구단들의 행태는 씁쓸함을 자아냈습니다.
최고의 인기스포츠라는 겉 모습과 달리 너무나 열악한 경기장과 각종 시스템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경기장 시설물로 인해 부상을 입는 경우는 여전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길도 없습니다.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개선을 위한 노력들이 느리지만 조금식 진행된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 단초가 된 임수혁 선수는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임수혁 선수, 그의 모습은 2000년 4월 18일 잠실야구장 2루 베이스에서 멈췄고 팬들은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는 그를 볼 수 없습니다. 그의 48호 홈런도 볼 수 없습니다. 그저 기억속에서만 그를 추억해야합니다. 임수혁 선수는 화려하게만 보이던 프로야구의 이면을 생각하게 했고 아직도 그것이 완전히 개선되지 않았기에 그의 죽음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임수혁 선수는 병상에 있는 동안 그를 응원하던 팬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을까요? 그가 일어나기를 고대하던 가족들의 바램을 알 고 있었을까요? 이런 응원들이 그를 지탱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하늘나라도 떠났지만 슬퍼하지만은 않으려 합니다. 힘겨운 삶의 짐을 이제는 벗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짊어졌던 짐들은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 프로야구가 발전하기 위해 해야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떠나는 임수혁 선수도 우리 프로야구가 계속 발전하기를 바랬겠지요?
하늘나라에 있을 임수혁 선수에게 마지막으로 바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그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야구를 계속하기를 말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파서 쓰러지거나 쓰러진 그를 몇 십분동안 방치할 일도 없겠지요. 힘차게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고 더 많은 홈런도 칠 수 있는 임수혁 선수가 되기를 이곳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잘 가세요 임수혁 선수, 당신은 영원한 자이언츠 선수입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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