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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40년 전은 1982년 3월 27일 오늘은 우리나라의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한 날이다. 프로야구는 우리나라 프로스포츠의 시작이었고 프로야구를 기점으로 프로씨름, 프로축구, 프로농구와 배구 등 여러 종목들의 프로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우리나라 스포츠는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추가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프로야구는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했고 지금도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프로야구는 1970년대 대중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고교야구의 흥행 요소를 그대로 가져왔다. 각 지역별도 연고 구단이 생겼다. 1960년 이후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대거 몰려들었다. 그들에게 각 지역을 대표하는 고교야구팀은 자신의 팀이었다.

지방에 연고를 둔 사람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고교야구 전국대회를 보기 위해 운동장으로 향했고 구름관중이 몰려들었다. 그에 비례해 응원열기도 뜨거웠다. 프로야구의 출범은 고교야구의 연장선상이었다. 각 지역을 연고로 탄생한 6개 구단은 지역민들에게 자신의 팀이었다. 엄청난 흥행 열풍이 불었다. 이는 어른은 물론이고 어린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프로야구가 시작할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팀의 옷과 모자를 쓰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프로야구 출범에는 어두운 이면이 존재했다. 프로야구는 당시 정권의 계획과 지원이 그 배경에 있었다. 정부 주도로 리그가 만들어졌다. 당시 제5공화 국 정부는 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극 등을 겪으며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들이었다. 신군부 세력은 언론을 장악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한편, 국민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스포츠와 영화산업, 유흥업 등을 진흥하도록 했다. 프로야구는 일종의 국민 우민화 정책의 한 단면이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는 당시 우리 경제규모가 국민 소득 수준은 프로스포츠가 정착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는 재벌 기업들에게 프로야구 창단을 사실상 압박했다. 대신 그에 필요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프로야구 구단들 대부분이 재벌 기업의 소유가 된 이유였다. 이런 배경 속에 프로야구는 프라임 타임 경기 중계가 보통일 정도로 언론과 미디어의 큰 지원도 함께 받았다. 프로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프랜차이즈 시스템과 대기업이 구단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일본의 프로야구 시스템을 조화시켰다. 프로야구는 민간이 주도하는 자생적 리그가 아니었고 이는 두고두고 프로야구의 리그의 한계점이 됐다.

정권의 필요에 의해 우격다짐으로 시작된 프로야구지만 그 열기는 뜨거웠다. 프로야구가 시작할 당시 마땅한 여가 선용의 장소가 없었던  상황에서 프로야구장은 최적의 장소였다. 우리 프로야구 특유의 응원단이 주도하는 응원문화와 열띤 분위기는 사람들을 이끄는 또 다른 요인이었다. 이곳에서 관중들을 또 다른 선수로 응원하는 팀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며 함께 하는 독특한 야구 문화가 자리 잡았다. 가족단위 팬들이 많은 미국 메이저리그와 조직적이고 질서 정연한 응원문화의 일본 프로야구와 우리 프로야구는 크게 달랐다. 

이렇게 출범 초기부터 흥행에 성공한 프로야구는 40년의 세월 동안 큰 양적 팽창을 이뤄냈다. 6개 구단에서 시작한 리그는 10개 팀이 됐고 800만 관중 시대도 열었다. 열악했던 구장 인프라도 크게 개선됐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됐다. 선수 등의 연봉 수준도 초창기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뛰어올랐다. FA 계약에서 100억원이 넘은 금액이 쉽게 나오고 있다. 초창기 무늬만 프로야구였던 프로야구단의 운영도 선진 야구 시스템이 정착하면서 프로답게 발전했다. 이제는 아마 야구의 틔를 완전히 벗고 프로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프로야구의 발전은 국제 경기 경쟁력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프로야구 리그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가져왔다. 국제 경기에서 야구는 그동안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하는 영광의 순간이었다. 이런 리그 수준의 발전과 함께 우리 리그를 거쳐 미국이나 일본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늘어났다. 이런 발전과정을 거치며 우리 프로야구 리그, KBO 리그는 주목받은 프로리그가 됐다. 

하지만 최근 프로야구는 발전이 정체되고 내실 면에서 아쉬움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선수들의 계속되는 일탈 뉴스와 일부 구단의 파행적 운영, 여전히 부족한 리그의 자생력, 경기력 저하 등의 문제가 보이고 있다. 이런 부정적 요소들은 최근 2년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맞물리며 프로야구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과거 프로야구는 많은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는 절대적인 콘텐츠였지만, 다양한 매체와 콘텐츠가 공존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그 매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프로야구 인기의 지속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젊은 층에서 프로야구는 점점 외면을 받는 모습이다. 최고 인기 스포츠의 위상도 여자 프로배구 등에 밀리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은 프로야구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우선, 선수들의 계속된 일탈은 이를 자체적으로 이를 정화하고 근절하지 못했다. 잊을만하면 터져오는 음주운전, 선수 간 폭력, 선수들의 범죄 소식은 프로야구를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지난 시즌에서 코로나 방역에 온 나라가 힘쓰고 있는 상황에서 방역 수칙을 어기고 외부인이 포함된 심야 술판으로 선수들이 코로나에 감염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은 사상 초유의 리그 중단 사태로 이어졌다. 이는 코로나 상황에서 국내. 외에서 인정받는 모범적인 방역을 해왔던 프로야구의 공든탑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팬들의 비난은 매우 거셌다 어쩌면 그동안 계속되 선수들의 일탈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무너진 신뢰가 표출된 일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태를 수습해야 할 KBO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팬들과 대중은 시선은 더 사늘해졌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리그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그 어느 스포츠보다 큰 혜택을 받았고 가장 높은 연봉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위치는 더 이상의 운동선수로만 국한될 수 없다. 그만큼 더 큰 관심을 받고 행동과 말에 대한 무게감이 크다. 높아진 위상만큼 그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지만, 일부 프로야구 선수들은 그 부분을 망각했다. 

일부 구단들의 행태도 프로야구 인기 하락에 원인을 제공했다. 선수들의 일탈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화를 더 키운 측면이 있다. 또한, 구단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야구 전문 기업으로 한때 성공적인 야구 구단 운영 모델을 보여줬던 히어로즈 구단은 대표이사의 범죄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경영권과 구단 지분과 관련한 갈등, 구단 수뇌부의 갑질  등 여러 문제가 얽혀있다.

우리 프로야구에서 볼 수 없었던 메인 스폰서 체제를 도입하고 구단 스스로 자생력을 갖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히어로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부조리가 숨어있었다. 이는 서울이라는 가장 큰 프로야구 시장과 수많은 스타 선수들을 보유하면서 히어로즈가 인기 구단으로 올라서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는 프로야구에 대한 또 다른 신뢰 하락을 가져오고 있다. 

 

 


다른 구단들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히어로즈를 제외하면 모기업의 지원이 구단 운영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구단의 수익 구조가 부실한 탓에 구단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스스로 조달하기 어렵다. 부족한 자금은 모 기업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모기업의 상황에 따라 프로야구 구단 운영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실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리그 최강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는 현대그룹의 막대한 지원으로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현대그룹의 재정적 위기와 함께 몰락을 길을 걸어야 했다. 결군, 현대 유니콘스는 구단 해체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히어로즈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 당시 8개 구단 체제의 붕괴까지 걱정해야 했던 현대 유니콘스의 위기는 리그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 일이었다.

이후에 프로야구가 국제경기 선전 등 요인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구단 수가 늘어나는 등 리그의 양적 확대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구단과 리그의 자생력 부재라는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여전히 모 기업의 지원은 프로야구 구단의 존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구단들의 입김은 프로야구 전체를 관장할 KBO의 독자적 운영에도 제한 사항이 되고 있다. 

외적 변수가 큰 영향을 받는 리그의 문제는 총재 선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KBO 리그의 역대 재들은 대부분 관료 출신이나 정치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정권의 성향에 맞는 인사들이 낙하산 식으로 추대되는 일이 보통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야구를 모르는 이들이었고 리그 전체를 운영할 수 있느 전문성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마저도 각종 비리에 연루되거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프로야구 구단 모기업 인사가 총재 자리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는 특정 구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면서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강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단적으로 최근 사임한 KBO 총재는 지난해 리그 중단과 관련한 논의에서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었던 기업이 모기업으로 있는 특정 구단에 유리한 의사결정을 하면서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KBO 리그는 말로는 리그는 운영하는 주체라고 하지만, 각종 사안에 대한 결정권이 사실상 없고 전문성도 부족한 상징적인 존재였다. 이는 야구의 각종 현안에 대해 주체적으로 이를 해결하고 리그의 발전을 위한 사업 추진력 등을 떨어뜨렸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리그 운영을 담당하는 인사가 전권을 행사하며 리그 전체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야구의 산적된 문제들은 구단들의 이해관계 등에 막혀 제대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당연히 프로야구 팬들의 KBO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쪘다. 

 

 


이 시점에 KBO 리그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KBO는 새로운 총재로 허구연 해설의원을 선임했다. 그는 최초의 야구인 총재가 됐다. 허구연 총재는 야구 선수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야구 해설위원으로 프로야구가 출범과 함께 했다. 그는 고인이 된 하일성 해설의원과 함께 양대 공중파 방송을 대표하는 해설위원으로 활약했고 지금도 현역 해설위원으로 시즌을 준비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야구에 대한 많은 지식과 새로운 야구 트렌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각종 국제경기에서 해설위원으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그는 한때 프로야구에서 잠깐 왔다가 사라진 구단인 청보 핀토스의 감독으로 깜짝 선임되어 지도자 생활을 했고 롯데 자이언츠에서 수석코치를 하기도 해다. 이후 수년간 메이저리그 팀에서 야구 연수를 하기도 했다. 이후 다시 해설위원으로 돌아와 오랜 세월 프로야구와 함께 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이와 함께 KBO와 야구협회에서 행정가로서도 역할을 하며 다방면에도 경험을 쌓았다. 그 누구보다 우리 리그와 야구, 야구인들을 잘 아는 이가 허구연 총재라 할 수 있다.

허구연 총재는 한편으로 야구의 각종 현안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고 여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특히, 야구 인프라와 관련해 그는 야구 역사에 걸맞지 않은 야구장 시설 개선과 신축구장 필요성을 지속해서 역설했다. 야구 중계를 하면서 그는 이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프로야구 구단들의 자생력과 관련한 문제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에 야구팬들은 그의 해설과 관련해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현안과 관련한 목소리에 상당수 호응하기도 했다. 

야구의 각종 현안과 관련 지식이 해박한 허구연 총재의 등장은 일단 긍정적이다. 당장 그는 각종 현안 해결을 위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KBO 리그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재벌 기업들의 입김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지켜볼 부분이다. 허구연 총재가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면 파열음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 순응한다면 이전 총재와 다를 게 없어진다. 그로서는 강약을 잘 조절해 KBO 리그를 이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허구연 총재를 구단들이 선택한 건 그만큼 지금 우리 프로야구가 큰 위기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야구의 오랜 숙원인 리그와 구단들의 자생력 확보, 각종 제조와 시스템 정비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또한 프로야구에 대한 신뢰 회복이라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중 수입과 중계권료 수입으로 단순화된 수익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메이저리그, MLB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고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는 점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KBO의 독자적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수익과 연결해야 한다. 그동안 구단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이와 관련한 사업이 힘을 얻지 못했다. 또한, 보다 대중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콘텐츠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 경기 시간 단축과 경기의 흥미를 이끌 수 있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연장 불변의 진리와 같은 월요일 휴식일을 없애고 4연전을 도입해 매일 프로야구 경기가 열릴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도 신인 드래프트 개선, 외국인 선수 제도 변화, 선수 최저 연봉 인상, 선수들의 이동 유연화, 아마야구와의 협력 강화를 통한 야구 저변 확대 등 산적한 과제가 많다. 그동안 KBO 총재들은 이런 현안들에 해법을 찾지 못하거가 실행에 이르지 못하고 의전 총재로만 남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야구를 잘 아는 허구연 총재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정말 오랜 세월이 흘렀다. 중간중간 어려운 과정이 있었지만, 프로야구는 40년 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프로스포츠였고 수많은 스타들과 이야기, 그 속에서 역사를 쌓아왔다. 이제는 더 큰 발전을 위한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대로 정체한다면 프로야구의 위기는 분명한 현실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총재와 함께 프로야구가 그드만의 공놀이가 아닌, 올 시즌 긍정적인 변화와 또 다른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사진 : KBO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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