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수년간 열리지 못했던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3년 만에 열렸다. 그동안 주로 지방 경기장에서 열렸던 올스타전은 이번에 프로야구 40주년을 맞이해 가장 큰 규모의 잠실 야구장에서 만원 관중과 함께 했다. 프로야구 팬들은 모처럼 스타 선수들이 함께 하는 경기를 현장에서 즐겼고 선수들도 승패에 대한 부담을 덜고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
경기는 올스타전의 전통인 팬들과 함께 하는 식전 행사와 불꽃놀이 각종 공연에 더해 처음 시도하는 드론 쇼 그리고 올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한 프로야구 레전드 이대호를 위한 행사까지 다채롭게 채워졌다. 팬들에게는 색다른 경험과 올스타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를 함께 할 수 있었다.
경기 내용도 흥미로웠다. 그동안 올스타전은 이벤트 형식이 강하고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도 있었지만, 이번 올스타전은 재미와 경기력을 함께 잡았다. 경기 중간중간 선수들의 퍼포먼스가 재미를 주었다면 승리에 대한 경한 의미는 경기를 접전으로 만들었다.
경기는 연장 승부치기까지 이어졌고 10회 초 한화 정은원이 결승 3점 홈런을 날린 나눔 올스타의 6 : 3 승리였다. 패한 드림 올스타는 경기 중반 이후 3 : 1 리드를 지키며 승리의 가능성을 높였지만, 나눔 올스타는 8회 초, KIA 황대인의 2점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승부를 연장으로 이끌었다.
그 상황에서 해프닝이 일어났다. 연장전에서 드림 올스타는 마운드에 설 투수가 있었다. 오승환이 남아있었지만, 그는 마운드에 오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드림 올스타는 감독 추천 선수로 올스타전에 출전한 SSG 포수 김민식을 마운드에 올렸다. 시즌 중에도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 승부가 크게 기운 상황에서 마운드 소모를 줄이기 위해 야수들이 마운드에 오르는 일이 있긴 하지만, 올스타전이라 해도 접전의 경기에서 야수가 마운드에 오른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우려에도 김민식은 승부치기를 위해 주자 2명을 1, 2루에 두고 마운드에 올라 안정된 제구와 변화구까지 구사하며 2아웃을 잡아냈다. 그 중간 야수들의 호수비도 있었다. 아웃카운트 하나만 더 잡으면 드림 올스타의 궁여지책이 성공적 선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은원의 3점 홈런이 경기의 승패를 엇갈리게 했다. 감독 추천 선수로 올스타전에 출전한 정은원은 이 홈런 한 방으로 경기 MVP에 올랐다.
이렇게 극적인(?) 승부를 펼친 올스타전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은퇴 시즌을 치르고 있는 롯데 4번 타자,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였다. 이대호는 팬 투표를 통해 드림 올스타 지명타자로 선정되며 베스트 12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소속팀에서 익숙한 타순인 4번 지명타자로 경기에 나섰다. 이대호는 전날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 1위에 오르며 올스타전 통산 3번째 홈런 레이스 우승자가 되기도 했다.
현역 선수로서 마지막 올스타전에서 이대호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였다. 본 경기에서도 이대호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의 행동, 말이 모두 관심이 대상이었다.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국에서는 그의 경기 장면과 벤치에서의 모습, 말들을 담으려 애썼다. 이대호는 애써 담담하려 했고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자신을 감출 수 없었다. 이대호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 탓인지 그는 안타 한 개를 때려내긴 했지만, 공언했던 홈런포와 타점을 기록하진 못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은퇴를 앞둔 레전드가 올스타전에서 뛴다는 사실이 팬들에게 중요했다. 5회가 끝나고 그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대호는 이승엽에 이어 두 번째로 KBO가 주관하는 은퇴 투어 대상자가 됐고 그 시작이 올스타전이 됐다.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전에서 그것도 코로나 이후 처음 만원 관중이 입장한 올스타전에서 은퇴 투어를 시작하는 건 이대호에게 큰 영광이었다.
경기장 화면에는 그의 그동안 활약상과 그의 은퇴를 축하하는 이들의 소감이 함께 보였다. 그가 4년간 활약했던 일본 리그 팀의 인사들도 있었다. 이대호에게는 그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그림과 올스타전에 함께 한 선수 코치진, 관중들의 축하가 더해졌다.
여기에 그의 아내와 아들딸까지 가족들이 그 순간을 함께 했다. 이대호는 소감을 말하는 순간, 억눌렀던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경기장에서 항상 무뚝뚝하고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였지만, 더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에는 선수로서 겪었던 많은 순간순간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이 그의 은퇴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는 올 시즌이 현역으로 마지막 시즌임을 실감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대호의 은퇴 투어는 성대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시작됐다. 앞으로 이대호를 위해 롯데 외에도 9개 구단의 원정 경기에서 축하행사가 열리고 그를 의미하는 선물이 전해질 예정이다. KBO가 주관하는 만큼 각 구단, 구장 특색에 맞는 은퇴 투어 장면들이 기대된다.
이대호의 은퇴 투어는 올 시즌 시작 전 일부 팬들의 부정적 여론으로 먹구름이 끼기도 했다. 이대호 역시 이에 부담을 느껴 은퇴 투어를 고사하는 의견도 보였다. 이대호에 앞서 LG의 레전드 박용택의 은퇴 투어가 팬들의 부정 여론에 밀려 열리지 못한 예도 부담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호는 충분히 은퇴 투어의 자격이 있는 선수다. 그는 몇 안 되는 한국, 일본, 미국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선수다. 각 리그에서 이대호는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
2001 시즌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지명으로 고향팀 롯데에 입단한 이대호는 투수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부상으로 투수로서의 길을 포기했다. 대신 그의 타격 재능을 눈여겨본 코치진에 의해 타자로 전환했다.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낸 건 아니었다. 그 중간에는 롯데 팬들에게는 금기어가 된 롯데 암흑기를 더 깊게 한 모 감독의 무리한 체력 훈련으로 부상을 입고 긴 재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그의 가능성을 믿고 그를 기용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2004시즌 이대호는 시즌 20홈런을 기록하며 거포로서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이후 이대호는 장타 능력과 정교한 타격 능력을 겸비한 만능 타자로 거듭났다. 거구의 몸에도 수준급 수비 능력까지 갖춘 거포 3루수로 리그를 평정하기 시작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대호의 타격 지표도 우상향했다.
2010 시즌은 이대호에게 잊지 못한 시즌이었다. 그 시즌에서 이대호는 누구도 이루지 못한 타격 7관왕에 성공했다. 도루를 제외하고 이대호는 타격 전 부분 1위에 올랐다. 그 시즌에 이대호는 그의 KBO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44개의 시즌 홈런과 133타점을 기록했다. 여기에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진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이대호의 시즌이었다. 당연히 시즌 MVP도 그의 차지였다.
하지만 시즌 후 이대호는 또 다른 이유로 주목을 받았다. 시즌 후 연봉협상에서 이대호와 롯데 구단의 의견이 엇갈렸다. 이대호는 7억 원을 주장했다. 롯데는 최종 6억 3천만 원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양측의 대립은 연봉 조정으로 이어졌다. 리그 최고 타자의 연봉 조정 조정 신청이라는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됐다. 결과는 구단의 승리였다. 이 과정에서 롯데 팬들은 롯데 구단에 반감 여론이 커졌다.
롯데 구단에는 짠돌이 구단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사실 이대호의 주장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다. 그의 그동안 누적된 기록과 최전성기의 기량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7억 원은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연봉 조정 협의 과정에서 이대호는 부실한 근거자료로 패하고 말았지만, 당시는 지금의 에이전트 제도나 선수 평가 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했다. 이대호는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조력을 받지도 못했다.
롯데는 7천만 원을 아끼고 구단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너무 많은 걸 잃었다. 2011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이대호는 해외 진출을 선언하고 일본 오릭스 구단과 계약했다. 이대호의 일본행은 또 한 번 롯데 팬들의 강한 비난 여론을 불러왔다. 지금의 프로야구 흐름이라면 이대호는 롯데가 FA가 되기 전 장기계약으로 묶어야 했었다. 롯데 구단은 구태의연하게 선수 가치를 평가하고 협상에 임했다. 물론, 이대호가 지속적으로 일본 구단에 관심을 받았고 KBO 리그에서 모든 걸 이뤘다는 점도 있었지만, 2010 시즌 후 7천만원 사건도 일정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 리그 진출 이후 이대호는 오릭스와 소프트뱅크를 거치며 팀 중심 타자로 4시즌 활약했다. 소프트뱅크에서는 팀 정규 시즌 우승과 재팬시리즈 우승에 큰 역할을 하며 2015 시즌 재팬시리즈 MVP에 오르기도 했다. 이대호는 KBO 리그에서 이루지 못한 우승의 꿈을 일본에서 이뤘다. 이후 이대호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일본 리그에 머물렀다면 대형 계약으로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야구할 수 있었지만, 이대호는 그의 마지막 꿈을 위해 도전을 택했다. 하지만 이미 30대 중반을 향하는 나이와 포지션이 제한되는 상황이 계약을 어렵게 했다. 일본 유턴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대호는 메이저리그 엔트리가 보장되지 않은 계약을 수용하고 시애틀과 계약했다. 이대호는 스프링캠프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메이저리그 엔트리에 포함됐다. 확실한 주전도 아니고 경기 출전이 제한되는 플래툰 시스템 속 출전이었지만, 이대호는 14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7 시즌을 앞두고 이대호가 다시 한번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메이저리그 도전을 더 지속하기 어려운 상화에서 이대호는 일본 리그와 KBO 리그 복귀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받았다. 일본 리그는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대호의 선택은 롯데 복귀였다. 이대호는 4년간 150억원이라는 역대 최고 FA 계약으로 롯데로 돌아왔다.
복귀 후 이대호는 여전히 최고 타자의 면모를 보였다. 롯데는 팀을 상징하는 레전드 이대호의 복귀를 통해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팀 분위기를 바꾸고 우승이라는 큰 꿈을 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17 시즌 롯데는 후반기 대반전에 성공하며 정규리그 3위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대호는 34홈런 111타점의 활약으로 팀 타선을 이끌었다. 2018 시즌에도 이대호는 37홈런 125타점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롯데는 기대와 달리 2017 시즌 정규리그 3위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을 물론이고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2019 시즌에는 최하위로 쳐지고 말았다. 그 사이 이대호 역시 에이징 커브의 조짐을 보였다. 홈런 등 장타 생산 능력이 떨어지고 각종 타격 지표가 확실한 내림세를 보였다. 팀의 부진과 맞물려 그의 책임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리그 최고 연봉을 받는 그가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그의 복귀에 큰 지지를 보냈던 롯데 팬들 역시 이대호에 대한 불만을 보였다. 심지어 경기 후 팬이 던진 물건을 맞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팀의 레전드이자 팀을 상징하는 선수 이대호는 롯데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연봉 대비 부족한 활약이 비판이 대기도 했다. 구단의 그에 대한 평가도 점점 냉정해졌다. 내림세가 분명한 이대호의 역할을 두고 팬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대호는 상징하는 4번 타자 자리도 흔들렸다. 2019 시즌 중에는 부상이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2군행을 경험하기도 했다. 2019 시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지만, 많은 나이와 높은 연봉으로 타 팀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이전 계약보다 크게 낮아진 조건에 롯데와 계약했다. 흘러가는 세월을 그도 막을 수 없어 보였다.
이대호는 그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대호는 전성기는 아니지만, 녹슬지 않은 타격 능력을 보였고 4번 타자 자리를 내놓고 팀이 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롯데가 부진한 와중에도 이대호는 꾸준히 활약했다. 전성기 그와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이대호는 롯데 타자들 중 가장 높은 타격 생산력을 보였다.
2022 시즌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한 이대호는 남다른 각오로 시즌을 준비했다. 체중을 감량하고 시즌을 철저히 준비했다. 올 시즌 이대호는 타율 1위 경쟁을 하는 타격 여러 부분에서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홈런도 11개로 지난 시즌 19개를 충분히 넘길 수 있는 페이스다.
이대호는 떠오르는 별인 이정후, 외국인 타자 중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는 피렐라와 치열한 타율왕 경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은퇴를 앞둔 40살의 선수라 볼 수 없는 올 시즌 활약이다. 이에 그의 은퇴를 만류하는 목소리고 곳곳에서 나온다. 물론, 이대호의 은퇴 결정은 확고하다. 이대호는 떠밀 리 듯 은퇴하기보다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고 멋지게 은퇴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이런 이대호에게 아쉬움은 있다. 이대호는 외국 리그 생활을 마치고 롯데로 복귀하면서 가장 중요한 이유로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말했다. 애증이 함께한 롯데지만, 롯데는 이대호가 최고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고 고향팀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그를 변함없이 성원하는 롯데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큰 이대호다.
하지만 이대호의 바람과 달리 롯데는 좀처럼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도 롯데는 4월 반짝했지만, 포스트시즌의 마지막 선인 5위와 격차가 큰 상황이다. 후반기 상당한 분발이 필요하다. 이는 롯데에게도 은퇴 시즌을 치르고 있는 이대호에게 롯데의 반등은 절실하다. 올스타전 은퇴 투어에서 이대호는 그의 은퇴 무대가 한국시리즈가 되길 소망하는 영상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동료 선수들의 활약이 필요하다. 올스타전 은퇴 투어에서 보인 이대호의 눈물이 어쩌면 롯데 선수들에게 큰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후반기 롯데는 은퇴를 앞둔 레전드가 더 큰 무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지 그의 간절함이 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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