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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니퍼트, 두산 베어스 팬들 마음속에 그는 여전히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다. 그전 두산에는 수많은 에이스 투수들이 있었고 큰 족적을 남겼지만, 2010년대 그리고 지금까지 7시즌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강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산에게 니퍼트는 너무 특별하다. 그가 있어 두산이 강팀이 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니퍼트는 KBO 리그에서 2011 시즌 데뷔해 2018 시즌까지 활약했다. 그 기간 그는 외국인 투수로는 유일하게 통산 100승을 넘어서며 102승을 달성했다. 그 기간 패전은 51패에 불과했다. 2016 시즌에는 시즌 22승을 달성하며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밖에 니퍼트는 방어율과 탈삼진 등 각종 지표도 최고 선발 투수로서 손색이 없었다. 외국인 신분이었지만, 그는 두산의 레전드였다. 

이런 니퍼트가 프로야구 40주년 맞이해 선정한 40인의 레전드에 선정됐다. 그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선수 4인 중 한 명으로 소개됐다. 야생마라는 별명을 얻으며 리그를 평정했던 좌완 투수 이상훈, 롯데를 대표하는 근성의 선수 박정태, 삼성의 선수로 온 힘을 다했던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가 그 주인공이다. 

니퍼트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선수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2015 시즌 활약이었다. 그 해 니퍼트는 부상으로 온전히 정규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다. 정규 시즌 성적은 6승 5패 방어율 5.10으로 부진했다. 외국인 투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음 시즌 재계약을 장담할 수 없었다. 시즌 중 교체 가능성도 있었다. 두산은 그런 니퍼트를 믿고 그의 회복을 기다렸다.

 

 

현역 마지막 시즌 KT 선수 니퍼트

 



포스트시즌에서 니퍼트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다. 니퍼트와 그해 FA로 영입된 좌완 선발 장원준, 그 해 시즌 18승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유희관까지 두산의 선발 투수들은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된 포스트시즌 내내 호투를 이어갔다. 선발 투수들의 활약 속에 두산은 정규리그 3위로 오른 포스트시즌에서 한국시리즈 진출 그리고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2015 시즌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그전까지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삼성 왕조 시대가 저물고 두산 왕조시대가 열리는 사건이었다.

당시 니퍼트는 부상이 있었던 투수라는 사실을 믿기지 않은 투구를 이어갔다. 필요할 때는 불펜 투수로 나서 승리를 지켜내기도 했다. 두산의 그에 대한 신뢰, 니퍼트의 강한 의지가 함께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니퍼트의 기적과 같은 호투가 만들어낸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이후 해마가 가을이면 강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두산의 기분 좋은 징크스의 시작이기도 했고 포스트시즌에만 들어가면 몇 배는 강해지는 미라클 두산을 과학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니퍼트는 두산에서 특별했다. 그는 외국인 선수였지만, 두산에서 7시즌을 활약했다. 그는 성실함과 함께 팀 리더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또한 그는 꾸준함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부상이 있었던 2015 시즌을 제외하고 니퍼트는 두산에서 활약한 7시즌 중 6시즌에서 두 자릿수 이상의 승수를 기록했다.

프로야구 40년 역사에서도 그런 기록을 달성한 투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니퍼트의 기록은 대단했다. 그가 매 시즌 재계약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외국인 선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꾸준함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두산이 구단의 새 역사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니퍼트였지만, 그와 두산의 이별은 아름답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7 시즌 니퍼트는 14승을 기록했지만, 방어율이 4점대로 올라가는 등 성적 세부 지표에 이상 징후를 보였다. 포스트시즌에서도 부진한 투구로 아쉬움을 남겼다. 

그 시즌이 끝나고 두산과 니퍼트의 재계약 협상이 난항을 보였다. 선수에 대한 가치 평가에서 서로의 입장이 엇갈렸다. 니퍼트가 국내 선수였다면 충분히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니퍼트는 여전히 외국인 선수라는 한계점이 있었다. 두산은 더 강력한 외국인 선발 투수를 원했다. 결국, 니퍼트와 두산은 더는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2018 시즌 니퍼트는 KT 위즈와 계약하며 KBO 리그 선수로서의 이력을 이어갔다. 

하지만 KT에서의 니퍼트는 두산 시절과 달랐다. 상위권 팀 두산에 비해 KT의 전력이 약했고 투수 친화적인 잠실 구장과 달리 KT 홈구장인 수원 야구장은 투수가 유리한 환경이 아니었다. 니퍼트는 175.2이닝을 소화하며 이닝 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이긴 했지만, 8승 8패 방어율 4.25로 기대만큼의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대신 그는 외국인 투수로는 유일하게 프로 통산 100승을 달성하며 의미 있는 시즌을 보냈다. 그 100승을 채운 니퍼트는 2018 시즌 종료 후 선수 생활을 정리했다. 두산 팬들로서는 니퍼트가 두산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하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그림을 기대했지만, 냉혹한 프로의 세계 속에서 니퍼트는 외국인 선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

2018 시즌  두산은 니퍼트를 떠나보내고 영입한 외국인 투수 린드블럼이 뛰어난 활약을 하며 에이스 투수로 자리하고 여전히 강한 전력을 과시하며 시즌 93승 51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니퍼트를 새로운 외국인 선수로 교체한 건 구단 자체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정규 시즌에서 그들보다 14.5 경기 차 2위를 차지했던 SK 와이번스 지금의 SSG 패하면서 마지막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2015 시즌 한국시리즈 당시 괴력의 투구를 했던 니퍼트를 기억하는 두산 팬들에게는 또 한 번 그의 빈자리를 느낄 수 있는 결말이었다. 

 

 

 



이런 아쉬움이 있었지만, 니퍼트는 두산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구 행사에 나와 두산 팬들과 만나고 있고 은퇴 후에도 한국에 남아 야구 교실을 운영하거나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외국인 선수들이 계약이 끝나며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나는 모습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니퍼트에게 KBO 리그 두산, 한국은 그만큼 각별하다.

특히, 두산은 니퍼트가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을 접고 스타 선수로 자리하게 한 곳이었다. 두산에서 니퍼트는 에이스 투수로 두산 팬들의 엄청난 성원을 받았다. 지금도 니퍼트는 두산 팬들에게는 영웅이고 레전드다. KBO 리그에서도 니퍼트는 통산 성적에서 레전드가 되기에 충분한 성적과 이력을 남겼다. 그가 40인의 레전드에 이름을 올린 건 분명 이유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니퍼트와 같이 장기간 KBO 리그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에 대해 국내 선수와 같은 신분을 부여하는 등의 제도 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가지게 한다. 일본 리그에서는 일정 기간 이상 리그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를 외국인 신분이 아닌 국내 선수와 동일한 신분을 부여하고 있다. 니퍼트는 외국인 선수가 아니었다면 선수 생활을 몇 년은 더 연장할 수 있었고 KBO 리그 통산 성적에서도 더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이는 리그의 역사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 니퍼트와 같이 오랜 기간 KBO 리그에서 활약하며 레전드로 자리할 외국인 선수가 나올 수 있을지 당분간은 니퍼트 이상의 존재감을 보이는 선구가 나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만큼 니퍼트는 대단한 선수였다. 


사진 : KT 위즈,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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