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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들의 16강 진출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 국가는 아니지만,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소속의 호주가 프랑스와 튀니지, 덴마크가 속한 예선 D조에서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했고 뒤이어 스페인, 독일이 포함된 죽음의 E조에 속했던 일본이 독일과 스페인을 연파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개최국 카타르와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중동 팀들이 연달아 16강 진출에 실패한 가운데 이룬 성과였다. 이제 남은 건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팀은 12월 3일 자정 포르투갈과 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같은 시각 같은 조의 우루과이와 가나가 격돌한다. 이미 2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한 포르투갈을 제외하며 남은 3팀 모두 16강 진출의 기회가 열려 있다. 

하지만 대표팀은 불리한 상황이다. 대표팀에게 16강 진출의 경우의 수는 꽤 복잡하다. 우선 포르투갈전 승리가 필요하다. 예선 2차전에서 대표팀에 패배를 안긴 가나가 우루과이에 승리하지 말아야 한다. 무승부가 된다 해도 득점이 없어야 대표팀에 유리하다. 이런 조건이 일치한다 해도 골 득실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2골 차 이상이 포르투갈전 승리가 16강 진출의 확률을 더 높일 수 있다. 

산술적으로 가능한 일이지만, 포르투갈은 앞선 2경기에서 조 최강팀의 면모를 과시했다.  마지막 경기 부상 방지와 체력 안배를 위해 선수 로테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16강전 상대인 G조 1위로 브라질이 유력한 만큼, 16강전에서 브라질을 피하기 위해 조 1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이 느슨한 경기를 하기 어렸다. 이런 포르투갈에 대표팀이 2골 이상의 승리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가나와의 예선 2차전에서 퇴장을 받은 벤투 감독이 벤치에서 경기를 지휘할 수 없는 상황이고 주력 수비수 김민재의 부상과 출전 여부도 불투명하다.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도 안면 골절 부상의 후유증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다. 공격진의 큰 역할을 해야 할 황희찬과 부상으로 1, 2차전 출전을 하지 못했고 3차전 출전 여부도 확신할 수 없다. 결과에 대한 부담도 대표팀 선수들에게 부담이다. 

악조건이 가득하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인터뷰 등에서 승리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번 월드컵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는 포르투갈전이니 만큼 후회 없는 경기를 다짐하고 있다. 또한, 포르투갈은 2002년 한. 일 월드컵 예선에서 승리한 기억이 있다. 그 승리로 대표팀은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비기기만 해도 16강 진출이 가능했던 포르투갈은 예선 탈락으로 짐을 귀국행 짐을 싸야 했다. 20년 전 이야기지만, 포르투갈에는 아픈 기억이다. 

여기에 현역 선수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으로 보이는 포르투갈은 슈퍼스타 호날두와 우리 축구와의 악연도 있다. 호날두는 2019년 이탈리아 축구 클럽 유벤투스 소속으로 K 리그 선발과의 친선 경기를 위해 내한했다. 그 경기는 국내 축구팬들에게 큰 관심을 모았고 매우 비싼 티켓 가격임에도 경기가 열렸던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 관중들도 가득했다.

모두 호날두의 플레이를 보기 위한 팬들이었다. 이런 기대에도 호날두는 끝내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고 팬들의 큰 원성을 들어야 했다. 일명 호날두 '노쇼' 사건으로 불렸던 이 일은 호날두에 대한 국내 축구 팬들의 공분을 불러왔다.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우리 축구팬들을 무시하는 처사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호날두와의 악연은 포르투갈전에 대한 축구 팬들의 승리 의지를 더 높이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카타르는 우리 월드컵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도하의 기적이라고도 하는 1993년 10월,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이 있었던 곳이 도하였고 그곳에서 대한민국의 불과 10여 초 사이에 본선 진출 여부가 결정됐다. 10초 전은 탈락이었고 10초 후는 진출 성공으로 결과가 달라졌다. 이 극과 극의 결과는 또 다른 경쟁팀이었던 일본에는 비극이 됐다. 우리에게는 도하의 기적, 일본에는 도하의 비극이 된 1993년 10월이었다. 

 

 

 



당시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는 총 6개국이 올랐다. 극동 지역의 한국과 일본, 북한, 중동 지역의 이란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들이었다. 이 중 단 2팀만이 본선 24개국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매우 좁은 문이었지만, 당시 대표팀은 본선 진출을 낙관하고 있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이후 아시아에서 한국은 정상 팀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는 중동팀도 큰 위협이 아니었고 같은 극동 지역의 국가인 일본과 북한은 한 수 아래 전력이라는 평가였다. 

대표팀은 첫 경기 이란전을 가볍게 승리하며 최종 예선 통과가 무난한 흐름이었지만, 이후 2경기에서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하며 불안감을 보였다. 그래도 남은 2경기는 일본과 북한전임을 고려하면 최소 최종 예선 2위는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그리고 A 매치에서 거의 패하지 않았던 일본과의 대결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대표팀은 탈락의 위기에 몰렸다. 그 경기에서 일본은 매우 조직적인 플레이와 함께 향상된 개인기를 선보이며 승리했다. 그 결과 대표팀은 예선 3위로 밀렸고 자력으로 본선 진출을 확정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이제 대표팀은 남은 북한전에서 대승을 하고 최종전에서 순위가 앞선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 중 한 팀이라도 승리하지 말아야 하는 조건이 필요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벼랑 끝 승부였다. 대표팀은 북한과의 경기에서 전반전 무득점으로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같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은 이란과 이라크에게 각각 앞서가고 있었다. 

후반전 대표팀은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3골을 몰아치며 3 : 0으로 승리했다. 전반전 단단하던 북한의 수비는 후반들이 급격히 무너졌다. 경기전 북한 대표팀의 감독은 같은 민족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다. 북한은 최종전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묘한 상황이었지만, 대표팀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남은 건 다른 경기장의 소식이었다. 

대표팀의 바람과 달리 대표팀의 북한전 승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원하는 소식이 타 경기장에서 들리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에 4 : 3으로 승리했고 경기 종료가 임박한 상황에서 일본은 이라크를 2 : 1로 앞서고 있었다. 이대로 끝난다면 대표팀의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좌절되고 일본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양국의 희비를 엇갈리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본과 이라크 경기 종료 직전 이라크의 마지막 공격에서 동점골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라크의 자파르 선수가 그의 우측면에서 넘어온 크로스에 헤더 슛을 시도했고 그 공은 골키퍼가 손을 쓸 수 없는 곳으로 향했다. 2 : 2 동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얼마 안가 경기는 무승부가 끝났다. 그 순간 북한전에 승리하고도 깊은 슬픔에 빠져 있던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단에 그 소식이 전해졌고 선수와 코치, 임원들이 모두 얼싸안고 본선 진출의 기쁨을 함께 했다. 

반대로 본선 진출을 확신하던 일본 선수단의 분위기는 깊은 침묵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이는 현지 경기장의 일본 축구 응원단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현지에서 축구 대표팀은 응원하던 일본 축구팬들 역시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일본은 1994 미국 월드컵 본선 진출을 목표로 어린 유망주 선수들을 브라질과 유럽 등 축구 선진국 유학을 보내면서 선수 육성에 나섰고 브라질 선수를 귀화시켜 전력을 강화했다.

또한, 프로 축구 리그인 J리그를 출범시키며 축구 붐을 일으키는데 주력했다. J 리드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외 유명 선수들은 다수 영입해 리그의 인지도와 수준을 끌어올렸다. 이에 야구의 나라 일본에는 축구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런 축구 붐과 리그 활성화를 바탕으로 일본은 2002년 월드컵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유리한 흐름을 만들고 있었다. 만약, 일본이 1994 미국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면 그들의 월드컵 유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이는 일본 축구 발전에 큰 계기가 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지막 10여 초를 버티지 못한 일본은 큰 좌절을 맛봐야 했다. 기사회생한 한국은 3회 연속 본선 진출국이 됐고 아시아 축구 강국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보다 뒤늦게 2002 월드컵 유치전에 뛰어든 한국은 명분론을 앞세워 유치전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한국은 1994 미국 월드컵 본선에서 2무 1패로 탈락하긴 했지만, 우승 후보 스페인 독일과 접전을 펼치며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 또한, 월드컵 유치전에 큰 호재가 될 수 있었다. 

도하에서 엇갈린 한국과 일본의 운명은 축구 발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3년 도하의 기적을 발판으로 한국은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국의 명예를 지켰고 2002년 한. 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 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 진출의 신화를 이뤄내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였다. 그 월드컵을 바탕으로 한국 선수들의 해외리그 진출이 활성화되고 축구의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도하의 기적이 없었다면 생기기 어려운 일이었다.

 

 

 



일본 역시 그때의 아픔을 딛고 그들의 축구 수준을 꾸준히 높였고 이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레벨의 수준으로 올라섰다. 냉정히 평가하면 전반적인 축구 수준에서 일본은 한국을 능가한다고 해도 되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일본이 한국에 사정을 해 한. 일 축구 평가전이 열렸지만, 이제는 일본의 미온적 태도로 평가전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최근 맞대결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일본은 스페인, 독일과 같은 조에 속하며 예선 통과가 어렵다는 평가였지만, 예선 1차전 독일, 예선 3차전 스페인 전을 승리하며 경우의 수없이 2승 1패 조 1위로 당당히 16강에 진출했다. 1993년 도하의 비극으로 눈물을 흘렸던 일본이 도하의 2022년 도하의 기적을 연출했다 할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차례다. 여러 가지로 불리한 여건이지만,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에 기본 좋은 기억이 있고 그들의 슈퍼스타 호날두와 우리 축구와의 악연을 정리해야 한다. 여기에 1993년 도하의 기적을 일궈낸 기분 좋은 기억도 있다. 이전 월드컵인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표팀은 거의 대부분이 패배를 예상했던 독일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2 : 0 승리로 예선 탈락에도 우리 축구의 자존심을 살렸고 독일을 예선 탈락으로 몰아넣었다. 이제 예선 4년이 지나 예선 마지막 경기 상대는 포르투갈이다. 

과연 1993년 10월 도하의 기적은 재현될 수 있을지, 중요한 건 우리 대표팀은 충분히 능력이 있고 이미 이전 두 번의 경기에서 경기력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무조건적인 희망을 가지는 것도 문제지만, 경기를 하기 전부터 패배의식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다. 기적도 노력하는 자에게만 찾아올 수 있다. 1993년 도하의 기적 역시 최종전 대승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대표팀에게 중요한 건 다른 나라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경우의 수를 미리 따지기 이전에 포르투갈전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고 축구 팬들은 그런 대표팀을 응원하는 게 우선이다. 


사진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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