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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시즌을 단 한 경기로 마무리하면서 2023 시즌 아쉬움을 남겼던 두산에서 한 선수의 은퇴 소식이 들렸다. 2015 시즌부터 두산과 함께 하며 왕조 시대를 여는 데 큰 힘이 됐던 좌완 투수 장원준이 선수 생활을 마침표를 스스로 찍었기 때문이었다. 

장원준은 2004 시즌 롯데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후 KBO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 투수로 활약했고 FA 계약으로 두산으로 팀을 옮긴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했다. 장원준의 꾸준함은 프로 통산 2,000이닝이라는 큰 훈장을 안겨줬고 132승의 승리 이력을 쌓게 했다. 

이런 장원준이지만, 그는 최고 좌완 투수라는 칭호를 얻지 못했다. 그가 전성기를 보냈던 시절 당대 최고 좌완 투수인 류현진과 김광현, 양현종 등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장원준은 2008 시즌부터 2017 시즌까지 거의 매 시즌 150이닝 이상을 소화했고 10승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다. 큰 부상 이력도 없었고 말 그대로 선발 등판하면 계산이 서는 이닝이터의 전형이었다.

 

 

 




꾸준함의 좌완 투수 장원준


하지만 워낙 뛰어난 좌완 투수들이 많았던 시절과 함께 하며 장원준은 가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국가대표 이력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그 덕분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었고 병역혜택의 수혜자도 될 수 없었다. 장원준은 한창 전성기를 보낼 시기 입대를 했고 경찰청 야구단에서 2시즌을 보내야 했다. 

이런 부침이 있었지만, 장원준이 쌓아온 이력은 큰 자산이었고 2014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그의 가치를 높였다. 장원준은 원 소속팀 롯데의 제안을 뿌리치고 두산과의 FA 계약을 선택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장원준은 롯데 프랜차이즈 선수로 롯데 선수라는 상징성이 매우 컸고 두산과의 접점이 많지 않았다.

두산은 외부 FA 선수 영입에 적극적인 팀이 아니었다. 두산은 장원준에게 4년간 최대 84억원의 베팅을 했고 그의 사인을 받았다. 장원준의 두산행은 롯데 팬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장원준은 롯데 선수라는 인식이 강했고 롯데 역시 상당한 제안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장원준과 두산의 이면 계약설이 강하게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장원준과 두산의 FA 계약은 큰 화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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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남은 장원준과 두산 모두에게 성공적이었다. 장원준은 보다 넓은 구장, 한층 강한 수비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보다 자신감 있는 투구를 했다. 이닝 이터 선발 투수가 절실했던 두산은 투자 대비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었다. 마침 장원준과 두산이 함께 한 첫 시즌인 2015 시즌 두산은 정규 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라 준플레이오프부터 플레이오프, 한국 시리즈를 모두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두산 왕조시대를 여는 일이었다. 이후 두산은 올 시즌 후 롯데와 계약한 김태형 감독과 함께 2015 시즌 포함, 7번의 한국 시리즈 진출을 이뤄냈고 이중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하며 KBO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이 됐다. 장원준은 이런 두산의 든든한 선발 투수였다. 이 활약이라면 두 번째 FA 계약 또한 기대할만했다. 

하지만 2017 시즌 후 장원준은 급격한 내림세를 보였다. 두 번째 FA 자격을 얻게 되는 2018 시즌 장원준은 깊은 부진에 빠졌다. 구위가 급격히 저하되면서 1군 마운드에서 버틸 수 없었다. 휴식기를 가지고 불펜 투수로 나서는 등 컨디션 회복을 위한 시도가 이어졌지만, 장원준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긴 세월 누적된 피로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강하게 나오기도 했다.


영광과 좌절,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던 의지가  함께 했던 장원준의 두산 시절 


이후 장원준은 반등하지 못한 채 점점 두산의 전력 구상에서 그 존재가 줄어들어갔다. 장원준은 부활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지만, 1군에서의 등판 기회를 쉽게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가 없는 동안에도 두산은 강팀으로 그 역사를 이어갔지만, 장원준은 그런 두산과 함께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조용히 은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원준 역시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두산 역시 장원준에게 지속 기회를 주며 그의 부활을 기다렸다. 장원준은 최저 연봉에도 부활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도전이 기회가 절실한 젊은 선수들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었지만, 장원준의 진정성이 있었다. 그가 그냥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면 두산에서 그의 자리는 금세 사라질 수 있었다. 

 

 

장원준 통산 기록 - KBO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렀다. 이제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이 나올 시점이었지만, 장원준의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2021 시즌부터 장원준은 선발 투수는 아니었지만, 불펜 투수로 점점 1군에서 그 존재감을 높여갔다. 과거와 같은 구위는 아니었지만, 건강한 장원준의 관록투가 점점 진가를 발휘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까지 거스르긴 무리가 있었다. 

2022 시즌 두산이 하위권으로 밀리면서 구단 안팎에서 변화의 목소리가 커졌고 팀 기여도가 떨어지는 베테랑 선수들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졌다. 장원준 역시 그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장원준의 현역 선수 커리어가 끝날 것 같았지만, 2023 시즌 두산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된 이승엽 감독은 장원준에게 기회를 주는 결정을 했다. 

이렇게 은퇴의 위기를 벗어난 장원준은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었다. 2군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지만, 경기 감각을 유지했고 1군에서 등판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존재감을 보였다. 이에 장원준은 부상 선수를 대신해 대체 선발투수의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2023 시즌 장원준은 1군에서 11번 마운드에 올랐고 소중한 3승을 기록할 수 있었다. 모두 선발승이었다. 장원준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은 그를 선발 투수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장원준은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을 제대로 할 수 있었고 홀가분하게 은퇴를 결정할 수 있었다.

 

 

 




장원준의 은퇴, 한 시대가 저문 두산


장원준은 전성기 시절, 당대 최고 좌완 선발 투수들에 가려지고 병역으로 인한 공백기가 있었고 두 번째 FA 기회가 부상으로 사라지는 불운이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마운드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은 행운의 투수이기도 했다. 

장원준이 은퇴하면서 두산의 왕조 시대를 열었던 판타스틱 4로 불렸던 선발 투수들이 모두 두산과 작별하게 됐다. 외국인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는 니퍼트, 그와 짝을 이뤘던 외국인 투스 보우덴, 느리지만 강한 공을 던졌던 유희관, 그리고 꾸준함의 대명사 장원준이 모두 현역 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들과 함께 두산의 전성기를 열었던 김태형 감독은 2024 시즌 롯데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이렇게 장원준의 은퇴는 두산의 한 시대가 저무는 걸 의미한다. 그만큼 두산에서 장원준은 큰 존재감을 가지는 투수였다. 비록, 그가 롯데의 프랜차이즈 선수였지만, 지금 야구팬들에게 장원준은 두산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두산에서 팀과 함께 이룬 성과가 그만큼 빛났기 때문이었다. 

두산의 새 역사를 만들었던 투수 장원준, 그는 최고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팀을 최고로 만들었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투수였다. 


사진 : 두산 베어스,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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