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발발 이후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진격하는 고니시의 일본군 앞에 신립의 정예부대가 막아섰다. 신립은 조선 최고의 장수였고 그가 무너지면 며칠 안에 도성 한양에 일본군이 진격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신립은 개전초기 조선의 마지막 희망과도 같았다. 조선 조성의 여망을 안고 충주로 향한 신립은 배수의 진을 치며 결전을 대비했다. 신립의 전술은 분명 무리가 있었다. 병력수가 화력에서 조선은 밀리고 있었다. 정면 승부는 승산이 그만큼 크지 않았다. 일본군이 한양으로 향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조령의 험준함을 이용한 전술로 그들의 진격을 늦출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신립은 이미 준비가 부족하고 사기까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조선군이 고난도 매복전을 전개할 역량이 안된다고 판단했다. 도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군사들..
일본 토요토미의 전쟁 위협이 날로 노골화되는 상황에 조선의 대응은 미약하기만 하다. 일본은 내전으로 달련 된 각 지역 영주들의 군사를 하나로 모으고 훈련을 통해 전력을 강화했다. 이와 더불어 토요토미는 내정을 강화하고 전쟁을 위한 군량 및 전비 마련에도 만전을 기하며 조선과 명나라를 한 번에 정벌하려는 야심을 체계적으로 현실화했다. 언제든 전쟁이 시작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조선은 불필요한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사실 조선은 민심이반과 무너진 조세제도로 국가 재정이 어려웠다. 여기에 안이한 집권층의 외침에 대한 인식으로 제대로 된 전쟁 대비를 하지 않았다. 성곽을 보수하거나 축성은 지지부진했고 군사들의 모집과 훈련도 부실했다. 물론, 류성룡을 비롯한 일부 대신들은 전쟁 위협을 감지하고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