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은 일제의 불의한 통치에 저항한 민주주의 시민운동인 3.1 운동이 있었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그 바탕이 된 3.1 운동의 정신은 광복 후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 혁명으로 이어졌다. 4.19 혁명은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린 성공한 시민혁명이었다. 그리고 이 4.19 혁명은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직접적인 원인인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1960년 3월 15일,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서 자행한 3.15 부정선거였다. 그 선거는 광복 후 최악의 부정선거였다. 이미 선거운동 과정에서 광범위한 금권, 관권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투표 당일에는 투표함에 자유당 후보의 표를 미리 넣어주거나 사망자를 투표자로 등재하는 등의 선거인 명..
1919년 3월 1일, 그날은 온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 맞서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외친 3.1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날이다. 1910년 8월 29일, 한. 일 강제병합조약 체결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이후 공권력과 무력을 통해 우리 민족을 억누르는 무단통치로 조선을 통치했다. 무단통치 기간 일제는 헌병대로 대표되는 군을 배치하는 등 헌병경찰 제도를 시행했다. 아울로 중요 지역에 군대를 배치했다. 총칼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저항의지를 막으려는 조치였다. 여기에 더해 언론, 출판, 결사를 통제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도 조선인들에게 민족주의, 고등 교육의 기회를 막았고 민족학교 설립도 불허했다. 토지조사 사업을 통해 일제의 토지 지배권을 강화하고 농업에 종사..
중국 역사에서 중앙아시아와 몽골 지역에 자리한 유목을 주로 하는 북방 민족들은 항상 큰 위협이었다. 중국에서 북방민족은 잔혹한 침략자였고 야만인들이었다. 실제 고대 중국 역사에서부터 북방 민족들은 끊임없이 중국을 침략해왔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진시황제는 북방민족의 침략에 대비해 만리 장성의 대 역사를 시작했고 왕조가 수차례 바뀌는 상황에서 그 사업은 지속됐다. 지금 만리 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 유적이다. 자신들은 세상의 중심이라 할 정도로 자존감이 강했던 중국이었지만, 북방민족은 늘 두려운 상대였다. 북방민족을 야만인을 뜻하는 오랑캐로 칭한 건 그들에 대한 비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북방 민족들은 중요한 대결 상대였다. 만주 지..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이 전사한 마지막 전투이자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이기도 한 노량해전, 이 노량해전을 다른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서울의 봄'에 이어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로 흥행을 지속하고 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 12 군사반란이라는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을 배경으로 이를 기점으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과 이를 막으로 마지막까지 분투했던 이들의 대결을 스토리로 하고 있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조선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전쟁,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의 전쟁은 조선에 인적, 물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국가 운영 시스템도 붕괴됐다. 조선 왕조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었다. 조선 왕조는 유지됐지만, 공고했던 신분 질서에..
세종대왕 이후 성종 임금 시기까지 조선은 신생 국가의 틀을 벗고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하는 중앙집권 국가로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후 조선은 큰 번영기를 누렸다. 역사상 최악의 폭군, 연산군 시기도 있었지만, 명종 때까지 조선은 외적의 침입 등 대외적인 위협도 크지 않았고 체제를 흔드는 불안 요소도 없었다. 조선은 100년이 넘는 평화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이 기간 조선은 체제의 구조적 문제가 사회를 좀먹고 있었다. 특히, 군정의 난맥상이 점차 심화됐다. 조선 초기 강력했던 조선의 군 시스템이 무너졌고 이는 국방력 약화를 불러왔다. 이는 일본의 대대적 침략이었던 임진왜란 초기 대응을 어렵게 했다. 그 결과 조선은 일본군에 거의 전 국토가 파괴되고 막대한 재산, 인명 피해를 입었다. 명 재상 류성룡과 수많..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2차, 3차 고려 거란 전쟁을 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에 당시 왕이었던 현종과 3차 전쟁의 대승을 완성했던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현종을 왕위에 옹립한 정변을 일으킨 강조와 2차 전쟁의 영웅 양규가 극 초반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2차와 3차 전쟁 이전 거란의 1차 침략을 극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있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외교를 했다고 추앙받는 서희가 그 인물이다. 서희는 1차 전쟁 당시 거란의 장군 소손녕과 담판을 통해 거란의 침략을 멈추고 강동 6주의 지배권을 확정해 영토까지 넓히는 성과를 만들었다. 각종 역사서나 위인전에서 서희가 이룬 성과는 지금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서희는 이런 외교적 성과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