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3월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하다.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됐던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는 문제가 사실상 확정됐다. 2022년 5월 10일부터 시작하는 윤석열 정부는 용산으로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발표했다. 그 자리는 현재 국방부가 있고 그와 관련한 군부대와 시설들이 있는 곳이다. 국가 안보의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는 국방부는 대통령 집무실이 옮겨오면서 당장 2달 안에 국방부와 관련 부대가 자리를 내주고 이사를 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이와 관련해 여러 비판이 나오고 있고 반대 의견도 상당하지만, 새 정권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그대로 강행할 태세다. 이와 관련한 사회적 갈등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청와대 집무실 이전은 끊임..

조선의 역사에서 왕세자는 차기 권력 1순위였다. 아버지 왕이 있고 왕이 되기 위한 수업도 체계적으로 받았다. 그 왕세자가 중전에게서 태어난 적장자라면 그 권위는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적장자의 왕가나 민간에서도 그 위치가 매우 절대적이었다. 현시점에서도 장남은 그 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권위가 크다. 하지만 그 적장자의 자리가 세자 그리고 왕위로 이어진 사례는 이외로 많지 않다. 중전으로부터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던 경우도 있고 차기 권력을 놓고 벌어진 암투 과정에서 밀리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요절하는 불행도 있었다. 실제 가장 완벽하다 할 수 있는 계승 절차를 밟아 왕위에 오른 이들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숙종, 순종 정도로 요약된다. 이 중 단종과..

일제 강점기의 아픔과 해방의 감격, 이후 일어난 6.25 한국 전쟁의 어려움,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4.19 혁명, 그 민주주의를 좌초시킨 5.16 군사정변까지 해방 후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가득했다. 그 사건들을 뒤로하고 대한민국은 1970년대부터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군사독재의 그늘 속에서 인권이 경시되고 민주주의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국민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잘 살아보기 위해 피땀을 흘렸다. 그 결실은 누구도 이루지 못한 산업화로 이어졌다.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의 아픔과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거치며 군사독재의 그림자를 걷어냈다. 과거의 완전한 단전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어떤 신흥국과는 비교가 안되는 민주화..

우리 현대사에서 1968년은 특히, 남북 관계에 있어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그 해 1월 북한은 124군 소속 특수부대원 31명을 남파시켜 청와대 습격을 시도했다. 1.21사태로 불리는 그 사건에서 북한 특수부대는 청와대 수백미터까지 접근했던 소탕됐다. 31명의 부대원 중 28명이 군경에 의해 사살되고 1명은 실종, 또 한 명은 북으로 도주했다. 단 한 명의 부대원 김신조만이 생포됐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목을 따러 왔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면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외에도 1968년 1월 23일 원산 바다에서 첩보 활동을 하던 미국 군함 푸에블로호를 납북해 수십 명의 선원들을 억류했다. 그해 10월과 11월에는 동해진 울진, 삼척지역에 100명이 넘는 북한은 울진 삼척지구에..

조선의 역사에서 연산군과 정조는 지금도 크게 주목받는 임금이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드라마틱 한 삶을 살았고 재임 당시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사극 드라마에서 연산군과 정조는 그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대한 많은 관심에는 온도차가 있다. 연산군의 최악의 폭군으로 정조는 시대의 성군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극명하게 대조되는 인물은 연산군과 정조에 공통점은 없어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불행한 유년 시기를 보냈다. 왕의 자손으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였던 이들이지만, 정치적 상황과 사회 관습에 따라 연산군과 정조는 그의 모친과 부친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는 연산군의 아버지인 성종에 의해 중전 자리에서 폐서인 된 후 사약을 받았고 정조의 아버..
4월 11일은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4월 13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연구를 통해 4월 11일로 정정되었고 임시정부의 역사는 2019년 100주년을 이미 맞이했고 또 역사를 더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의미는 최초의 민주공화국의 시작이라는 점과 나라의 주인, 주권이 국민들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구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조선의 주인은 임금이었다. 대한제국이 수립되긴 했지만, 권력은 황제에게 있었다. 그 전에 있었던 독립협회의 의회설립 시도 등이 무산되고 오히려 전제군주제가 강화되는 역사의 퇴보였다. 이후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