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부터 14일까지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에따른 극심한 국가적 혼란이 있었다. 대통령은 군과 경찰을 동원해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고군이 행정과 사법의 기능을담당하도록 했다. 즉, 대통령 권한의무한 확장이었다. 헌법에서 계엄의 요건은 엄격하다.전쟁 등 전시상황, 국가의 평온을해치는 소요나 내란, 폭동 상황 등으로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밝힌 계엄 선포의이유는 황당 그 자체였다. 그의 정치적입지 약화와 각종 비리와 의혹들이커지는 상황에서 그는 탄핵의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다. 그는 이를 해결할 정치적 역량을보여주지 못했고 지지율은집권 후 최저점을 찍고 있었다. 12월 3일, 공포의 밤12.12 군사반란의 재현 대통령은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기위해 무모한 시..
2014년 4월 16일 오전, 온 국민을 깊은 슬픔과 절망, 분노에 빠져들게 했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날이다. 이날은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 세월호에는 승무원과 승객을 모두 포함해 476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특히, 탑승객 중 상당수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포함된 단체 여행객들이었다. 그들을 태운 세월호는 봄날의 제주에 대한 기대와 희망,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진도 앞바다는 지나 제주로 향하고 있었다. 특히, 단원고 학생들에게 친구와 함께 하는 항해는 흥분되는 일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추억이 쌓여가던 시간 세월호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멈췄고 한 쪽으로 기울어지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기울어진 세월호는 ..
2024년 4월 10일, 22대 국회를 구성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있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시작한 선거 운동의 열기는 그 기간 온 나라를 뜨겁게 했다. 그 때문인지 이번 선거는 지난 총선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유권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선거 결과는 여당과 야당의 희비를 엇갈리게 했지만, 국민들은 다시 한 번 그들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선거는 국민들이 그들의 의견을 정치권에 반영할 수 있고 정치인들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에 선거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버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소중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 공화정을 시작된 날이 오늘이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
1919년 3월 1일은 일제의 불의한 통치에 저항한 민주주의 시민운동인 3.1 운동이 있었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그 바탕이 된 3.1 운동의 정신은 광복 후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 혁명으로 이어졌다. 4.19 혁명은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린 성공한 시민혁명이었다. 그리고 이 4.19 혁명은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직접적인 원인인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1960년 3월 15일,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서 자행한 3.15 부정선거였다. 그 선거는 광복 후 최악의 부정선거였다. 이미 선거운동 과정에서 광범위한 금권, 관권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투표 당일에는 투표함에 자유당 후보의 표를 미리 넣어주거나 사망자를 투표자로 등재하는 등의 선거인 명..
1919년 3월 1일, 그날은 온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 맞서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외친 3.1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날이다. 1910년 8월 29일, 한. 일 강제병합조약 체결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이후 공권력과 무력을 통해 우리 민족을 억누르는 무단통치로 조선을 통치했다. 무단통치 기간 일제는 헌병대로 대표되는 군을 배치하는 등 헌병경찰 제도를 시행했다. 아울로 중요 지역에 군대를 배치했다. 총칼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저항의지를 막으려는 조치였다. 여기에 더해 언론, 출판, 결사를 통제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도 조선인들에게 민족주의, 고등 교육의 기회를 막았고 민족학교 설립도 불허했다. 토지조사 사업을 통해 일제의 토지 지배권을 강화하고 농업에 종사..
중국 역사에서 중앙아시아와 몽골 지역에 자리한 유목을 주로 하는 북방 민족들은 항상 큰 위협이었다. 중국에서 북방민족은 잔혹한 침략자였고 야만인들이었다. 실제 고대 중국 역사에서부터 북방 민족들은 끊임없이 중국을 침략해왔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진시황제는 북방민족의 침략에 대비해 만리 장성의 대 역사를 시작했고 왕조가 수차례 바뀌는 상황에서 그 사업은 지속됐다. 지금 만리 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 유적이다. 자신들은 세상의 중심이라 할 정도로 자존감이 강했던 중국이었지만, 북방민족은 늘 두려운 상대였다. 북방민족을 야만인을 뜻하는 오랑캐로 칭한 건 그들에 대한 비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북방 민족들은 중요한 대결 상대였다. 만주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