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이 전사한 마지막 전투이자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이기도 한 노량해전, 이 노량해전을 다른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서울의 봄'에 이어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로 흥행을 지속하고 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 12 군사반란이라는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을 배경으로 이를 기점으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과 이를 막으로 마지막까지 분투했던 이들의 대결을 스토리로 하고 있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조선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전쟁,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의 전쟁은 조선에 인적, 물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국가 운영 시스템도 붕괴됐다. 조선 왕조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었다. 조선 왕조는 유지됐지만, 공고했던 신분 질서에..
세종대왕 이후 성종 임금 시기까지 조선은 신생 국가의 틀을 벗고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하는 중앙집권 국가로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후 조선은 큰 번영기를 누렸다. 역사상 최악의 폭군, 연산군 시기도 있었지만, 명종 때까지 조선은 외적의 침입 등 대외적인 위협도 크지 않았고 체제를 흔드는 불안 요소도 없었다. 조선은 100년이 넘는 평화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이 기간 조선은 체제의 구조적 문제가 사회를 좀먹고 있었다. 특히, 군정의 난맥상이 점차 심화됐다. 조선 초기 강력했던 조선의 군 시스템이 무너졌고 이는 국방력 약화를 불러왔다. 이는 일본의 대대적 침략이었던 임진왜란 초기 대응을 어렵게 했다. 그 결과 조선은 일본군에 거의 전 국토가 파괴되고 막대한 재산, 인명 피해를 입었다. 명 재상 류성룡과 수많..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2차, 3차 고려 거란 전쟁을 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에 당시 왕이었던 현종과 3차 전쟁의 대승을 완성했던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현종을 왕위에 옹립한 정변을 일으킨 강조와 2차 전쟁의 영웅 양규가 극 초반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2차와 3차 전쟁 이전 거란의 1차 침략을 극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있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외교를 했다고 추앙받는 서희가 그 인물이다. 서희는 1차 전쟁 당시 거란의 장군 소손녕과 담판을 통해 거란의 침략을 멈추고 강동 6주의 지배권을 확정해 영토까지 넓히는 성과를 만들었다. 각종 역사서나 위인전에서 서희가 이룬 성과는 지금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서희는 이런 외교적 성과와 함께 ..
1392년 기존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건국된 조선은 유교적 가치관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양반 사대부로 불리는 새로운 지배층이 등장했고 고려 시대까지 사회 전반을 지배했던 불교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유교가 지배하는 국가 운영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조선의 대외 정책에서 중요한 흐름은 사대교린이었다. 조선은 중국의 통일 왕조 명나라에는 사대를 하고 그 외 북방의 여진족, 일본에는 강. 온 양면 정책으로 이들을 관리했다. 그들의 노략질이 극심할 시기에는 무력을 통해 토벌을 감행하고 한정된 통로를 열어 무역 등 교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류의 폭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조선과 달리 고려는 북방 민족과 중국, 일본, 아라비아, 동남아시아까지 교류의 폭이 매우 넓었다. 고려는 거란..
사농공상의 엄격한 구분 속에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은 그 체제를 갑오개혁까지 지속했다. 그 중간 신분제가 와해되기도 했지만, 기본 원칙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신분 상승의 기회는 극히 드물었고 양반의 특권은 계속 유지됐다. 조선 후기 두 차례 큰 전락이 온 나라를 휩쓸었던 시기,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들이 천민에서 벗어나거나 재력으로 관직이나 족보를 사는 등의 방법으로 신분 상승을 하기도 했지만, 국가 차원에서 신분제에 변화를 가져온 건 아니었다. 이런 조선시대 신분제 질서 속에서 양반도 양인도 아닌 존재들이 있었다. 역사에서 중인으로 배웠던 이들이 그들이다. 중인은 하급 관리나 기술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주류를 이뤘다. 그들은 주로 대외 교류 시 통역을 담당하는 역관이나 지금의 의사나 약사라 할 수 ..
서기 900년, 676년 이후 지속됐던 통일 신라 시대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 발생했다. 옛 백제 지역의 군벌이었던 견훤이 지금의 전주인 완산주를 도읍으로 하는 후백제 건국을 선포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신라는 한반도 전역의 지배권을 잃었고 고구려의 부활을 명분으로 궁예의 후고구려까지 삼국으로 나뉘며 후 삼국시대로 접어들었다. 일각에서는 926년까지 존속했던 발해를 포함해 후사국 시대로 그 시대를 칭하기도 한다. 견훤은 이런 후삼국 시대를 연 인물로 그 역사적 의미가 크지만, 그동안 평가 절하되어 왔다. 후백제가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왕건의 고려와 경쟁에서 패하며 그 존속 기간이 짧았던 탓에 관련 기록이 부족했다. 이후 고려 시대 역사도 당연히 후백제의 비중이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