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헌정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그동안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그에 부수되는 각종 비리와 부패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것이 확인된 박근혜 대통령의 3차례에 걸친 대국민 담화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담화는 국민들의 분노를 더 들끓게 했고 100만이 넘는 인파로 광장을 가득하게 했다. 



100만 촛불은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그 안에는 남녀노소, 성별이 따로 없었다. 미성년자인 고등학생들까지 촛불을 들었다. 그들을 향해 불순세력, 좌익세력 등등의 음해와 모략이 있었지만, 지지율 5% 정권의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광장에 나서지 않아도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고 대통령에 등을 돌렸다. 



계속 악화되는 여론에 대통령은 정치권을 향해 개헌이라는 미끼를 던지는 한편 질서있는 퇴진론을 꺼내 들며 회유했다. 순간 정치권에는 흔들림이 감지됐다. 그들은 대통령의 즉시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을 요구를 망각했다. 검은 거래의 가능성도 마저 높아졌다. 하지만 촛불 민심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정치권을 강하게 압박해다. 사상 최대의 인파가 광장에 모였다. 그 힘에 정치권을 굴복했다. 그들은 국민의 요구를 더는 거역할 수 없었다.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탄핵은 다시 그 열기가 뜨거워졌다. 이에 미온적이던 여당까지 하나 둘 탄핵에 가세했다. 소위 친박이라 불리는 그의 세력들은 탄핵을 막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그들 내부에서 마저 이탈자가 발생하며 탄핵의 흐름에 함께 휩쓸리고 말았다. 그렇게 대통령의 탄핵은 의결 정족수를 훨씬 넘게 가결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고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과 동시에 강력한 특검의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이는 사실상 그의 정치인생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와 함께 권력의 중심에 자리했던 이들도 정치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불투명해졌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과거 첫 번째 탄핵 사례인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가 큰 차이가 있다. 당시의 탄핵은 정치 지형의 변동과 함께 소수 여당이었던 열린 우리당에 맞선 거대 야당들의 일종의 횡포에 가까운 탄핵이었다. 탄핵의 사유역시 범죄사실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유였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당시 야당의 탄핵은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다.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국민들은 이에 반대하는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국회의 탄핵은 엄청난 역풍을 불러왔다. 탄핵 이후 실시된 총선에서 야당 세력은 크게 몰락했다. 반대로 소유 여당 열린 우리당은 과반 여당으로 변신했다. 이런 국민적 여론은 탄핵심판을 하는 헌재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쳐다. 헌재는 탄핵안을 기각하며 탄핵사태의 종지부를 찍었다. 직무 정지됐던 대통령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와 달리 지금의 대통령이 맞닥뜨린 상황은 정반대다. 국민 절대 다수가 그의 퇴진을 원하고 있고 각종 범죄에 대통령이 연루되어 있다. 현 정권의 시한폭탄과 같은 세월호 7시간의 의혹도 남아있고 그 밖에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 줄줄이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헌재의 심판과정을 통해 반전을 이룬다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촛불로 대표되는 국민의 힘이 부패한 정권과의 대결에서 사실상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국민의 승리가 자랑스러우면서도 우려되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다. 과거 1987년 6월 항쟁을 아는 이들이라면 지금의 상황을 결코 낙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명 체육관 간선제 대통령 선거로 7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된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무시하고 힘으로 이를 억압하며 정권 연장을 시도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호헌을 발표하며 간선제 선거를 통한 대통령 선거를 선언했다. 



이는 큰 국민적 저항을 불러왔다. 학생들이 중심이 된 민주화 시위에 일반 시민들이 가담했고 그 열기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정권은 강제 진압으로 민주화 시위를 막아내려 했지만,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연세대생 이한열이 시위 진압 경찰외 최루탄에 맞아 사망에 이른 사건이 더해지며 정권에 국민의 분노를 극에 달했다. 결국, 힘으로 민주화 열기를 막아낼 수 없음을 인지한 정권은 당시 여당 대표였던 노태우가 6.29선언을 발표하여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게 됐다. 민주화 투쟁의 승리였다. 



이렇게 국민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열릴 것으로 보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담아내지 못한 야권을 분열했고 여당은 이를 파고들었다.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여권은 다수 후보가 나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며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야당 후보를 지지했던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로서는 허탈한 순간이었다. 민주 정권으로 정권 교체를 열망했던 국민들의 6월 항쟁의 의미도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국민들의 총선에서 여소 야대의 지형을 만들어주며 또 한 번 아댱에 기회를 주었지만, 3당 합당으로 통해 민자당이라는 거대 여당이 등장하며 민주화의 흐름에 크게 역행하는 반동의 역사가 지배하는 정치지형이 형성되고 말았다. 6월 항쟁이 가져온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민자당은 그 이름만 바꿔 달았고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면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보수정당으로 자리하고 있다. 



물론,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한민국은 사회 곳곳에서 권위주의를 걷어내는 등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권위주의와 기득권층의 부정부패, 구시대적 색깔론과 지역주의 등 나라를 병들게 하는 구태가 여전한 정치권을 형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불거진 최순실 사태는 우리 사회의 구시대적 적패가 여전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이를 막지 못하는,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권을 대신해 국민들은 다시 일어섰고 국민 하나하나의 힘이 모여 대통령 탄핵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분명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에게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올바른 나라를 세울 임무를 맏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정치권을 이후 권력에 더 눈독을 드리는 모습을 보었다. 이 과정에서 개헌론과 이에 따른 정계개편 등 이합집산 움직임도 있다. 이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적 열망과는 거리가 있는 일이다. 국민들은 여전히 정치권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 1987년 6월 국민들의 희생으로 이뤄낸 민주화의 새싹을 정치권은 꽃피우지 못한 전력이 있다. 



만약 또 다시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정치권이 살리지 못한다면 촛불은 정치권 정체를 향할 수 있다. 이는 아직 촛불을 거둬들일 수 없는 이유다. 2016년 12월 9일 대통령 탄핵은 어쩌면 끝이 아닌 기나긴 싸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1987년 6월 항쟁때와 같은 허망한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 글 : 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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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넘게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2012 Daum view 블로그 대상 스포츠 부분 우수상 수상, 훌륭한 블로거 분들이 많은데 이런 상을 받게 되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기는 했지만, 수상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함이 많은 블로그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스포츠 부분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가 봅니다. 수상자로 결정된 것에 대한 기쁨과 함께 지난 5년간의 노력이 이렇게 인정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더 기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제 블로그가 저는 저만의 블로그가 아니라는 책임감도 느낍니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 막막함이 더 앞섰습니다. 사진을 좋아한 탓에 이곳저곳을 다니면 담은 사진들을 소개할 목적으로 시작한 블로그였지만, 블로그를 하면서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좌충우돌하던 블로그를 더 많은 분에게 소개하고 소통할 방법을 찾던 중, 제가 어릴 때부터 관심을 두던 야구를 소재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블로그로 시작한 블로그가 티스토리로 변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야구 블로그로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전문적인 용어나 해설보다는 야구팬의 입장에서 경기를 보고 야구 전체를 관조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 글들이 조금씩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블로그가 조금씩 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자신 역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더 많은 분과 교류할 수 있었고 최근에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에도 제 글을 소개하면서 교류의 폭을 더 넓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블로그 활동이 계기가 되면서 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일생일대의 큰 행운이었습니다. 회사와 집을 오가던 무미건조한 일상에도 블로그는 큰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과분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상이 결코 저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모든 분을 대표해 받은 것뿐입니다. 꾸준히 글을 올리고 소통하려 노력한 것에 대한 격려를 해준 것이라 믿습니다. 이 수상은 끝이 아니라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하라는 의미가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부족한 블로그에 수상의 영광을 주신 관계자 분들과 네티즌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진, 글 : 김포맨 (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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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총각이 결혼도 하고 생애 처음으로 신혼여행이긴 하지만 해외여행도 떠납니다.
아직 제주도도 가지 못한 촌놈이 해외라니 그것도 6일동안이나 말이죠.
결혼준비 만큼이나 신혼여행 준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많은 사진들을 남겨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 바램이 이루어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리저리 쓸려다니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건 아닌지 하는 걱정도 앞섭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 힘들어도 즐거움이 더 하겠지요?





당분간 블로그 세계에서는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예약글을 대거 작성하고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몇 개의 예약글을 빼면 제 블로그에도 잠시 휴식을 주기로 했습니다.
여행중 제가 답방을 못해 드린다해도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제 결혼식을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분들께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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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전 하세요.

2010.10.13 08:13 from 짧은 생각
정말 십년 감수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녁 퇴근길에 생전 처음으로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모처럼 정체되지 않는 퇴근길 올림픽도로를 달리다 난 사고,

제 과실이 아니어서 가해자 자동차 보험으로 전액 보상이 된다 하지만
제 차는 상당기간 저 대신 병원신세를 져야할 것 같습니다. 상태로 봐서는 원형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이네요.
저만 조심한다고 사고를 안 당할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몸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1년도 안된 차가 이런 처참한 모습이 된 것이 속상하긴 하네요.
여러분 모두 안전운전 하시기 바랍니다.


제 차가 돌아오면 더 사랑해 줘야 겠습니다.
이 친구 덕분에 이렇게 글도 쓰고 할 수 있으니 말이죠.
몸이 다치지 않았으니 그것이 더 행운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울한 기분, 예전 시골에서 똑딱이 카메라로 담았던 해바라기 사진으로 위안을 삼아야 겠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활짝 핀 저 해바라기처럼 힘들어도 항상 마음만은 즐거운 가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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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의 어느날, 그날도 날이 무척 더웠던 기억이납니다.
아침 뉴스에서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대통령 퇴임 후 고향에 정착한,
그것도 아주 먼 시골에서 농사꾼으로 살아가려했던 

그가 세상을 등진것입니다.
그가 서거하기 전 그는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그의 측근들은 하나 둘, 비리혐의로 구속된 상황이었고 
그 자신도 수사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때 언론은 당신에 대한 기사가 대부분이었고 
모든 비리의 원흉인 듯 대단한 취재 열기로 당신 집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기소 여부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그 때 당신은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시내로 나갔습니다.
덕수궁 앞 그림속에서 당신은 웃고 있었지만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곳곳에 매달린 리본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매달렸어야 하는 리본이 추모의 리본이 되었습니다.




이 리본을 따라 걸었습니다.
당신을 조문하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 공고를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시내로 모였고 긴 줄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사람들로 덕수궁 돌담길은 거대한 물결이 생겨났습니다.


어찌보면 초라한 천막 아래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마련한 보기좋은 분향소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곳으로 모였습니다.

마지막까지 농사꾼으로 살고 싶었던 당신의 바램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을까요?
당신에게 어울리는 곳이 이곳임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수 많은 메모들이 쓰여있었습니다.
저 많은 글들에 있는 바램대로 당신은 편히 쉬고 계신가요? 당신이 바라던 대로 좋은 세상이 만들어 지고 있는 건가요?

당신 떠난 후 1년, 과연 이 나라는 좋은 나라가 되고 있는 것인지 많은 생각이 드는 5월입니다.


수 많은 만장들이 당신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도 당신의 마지막 길을 따라 배웅합니다.
누군가는 이들을 할일없는 실업자들이라 하고 위험한 세력들이라고도 했습니다.
저기에 동참한 저도 그 중 한명이 되겠네요.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에도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이 아직 이 나라에는 많이 있습니다.
아무런 댖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왜 그들은 두려운 것일까요?

1년전의 모습이지만 그 때를 생각하니 마음속에 가득했던 막막함과 답답함은 여전합니다.





사람들이 곳곳에 만들어 놓은 종이학들에는 어떤 소망들이 담겼을까요?
그 소원들은 지금 다 이루어졌을까요?
당신은 이 종이학들이 안내해준 좋은 곳으로 가 계신가요?


그림속에서 당신은 밝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끝까지 당신은 바보였습니다.

누구는 그 많은 비리를 저지르고도 국가 원로로 대접받고 있는데
누구는 경제를 파탄 내고도 국가 원로로 대접받고 있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가야했는지
당신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원칙이 무너지는걸 견디기 어려웠던 것인가요?
정말 결백했다면 왜 끝까지 싸우지 않고 떠나야만 했었나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당신을 추모했던 사람들은 다시 일상에서 치열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도 조금씩 잊혀져 가겠지요.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5월이 되니 당신이 다시 한번 마음속에서 되살아납니다.
아직은 좋은 세상이 오지 못한 탓인듯 합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그런 세상이 오기에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때가 되면 당신을 향한 편견과 오해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노무현이 재 평가되겠지요.

노무현 대통령님,
많은 사람들의 바램대로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계신가요?
아직 당신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소망했던 세상을 만들려 노력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당신이 마지막까지 싸워야했던 기득권의 벽은 높기만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용히 그 노력들을 지켜봐주고 응원해 주세요.
저도 거기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다시 한번 추억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Posted by 지후니 지후니74 트랙백 33 : 댓글 38
떠 오르는 태양을 보면 새로운 가능성의 에너지가 저를 감싸는 듯 합니다.
시작이라는 단어는 항상 기대감을 안겨주곤 하지요.
그것이 생각에 그칠때도 있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도 다시 시작되는 하루, 일출은 또 다른 미래를 기약합니다.






일출의 여러 모습들을 담았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 해를 시작하는 태양이 떠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날씨가 추워도 태양의 모양이 멋지지 않아도 새해 일출을 보기위해 모여듭니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일출이지만 한 해의 시작은 가능성과 기대감을 더욱 더 높여 주는 듯 합니다.

저는 감기 증세로 한해의 시작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담았던 사진들로 위안을 삼아야 겠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만은 한결 같기 때문이지요.

2010년, 새로운 다짐과 기대감과 함께 하나하나 이루어 가는 실천의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Posted by 지후니 지후니74 트랙백 0 : 댓글 5
사진을 정리하다 2009년 최고의 뉴스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했습니다.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도 많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가장 큰 뉴스가 아니었을까 하네요.

그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웠기에 많은 이들이 애도의 물결에 동참했었습니다.
생전에 그를 그토록 미워하던 사람들까지 말이죠.
세상을 떠난 자에 대한 추도 이상의 그 무엇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이제 그의 죽음도 사람들 기억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페이지에 몇 줄의 글로 남겨지겠지요.


5월의 어느날 일찍 찾아온 더위 때문인지 햇살이 따가웠습니다.
당일 날 저는 출사를 위해 해남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오디오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 당시 그는 검찰 수사로 큰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질줄이야...

하지만 그는 허무하게도 세상과 작별을 고했습니다.



시청앞 분향소에서 시작된 리본은 길게 이어졌습니다.
이 길을 따라 사람들의 추모 물결은 이어졌습니다. 저도 이 줄을 따라 그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그가 세상과 작별을 고하던 날,
사람들은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그의 뒤를 따랐 배웅했습니다. 역사의 한 순간에 사람들은 함께 했습니다.

추모의 물결을 어떤 이들은 불순한 세력의 선동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흔히 말하는 빨갱이 예기를 여기서까지 꺼내는 이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이 열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들이 왜 소중한 시간을 내서 이 대열에 동참했는지 그들은 정말 몰랐던 것일까요?


사람들은 자필로도 작별을 고했습니다.
한없이 약해보였던 대통령, 누가 도와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 같았던 대통령, 그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그가 떠나자 사람들은 그에게 씌워졌던 수 많은 왜곡과 과장의 껍질 뒤에 있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가 뇌물을 받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 해먹은 누구보다 훨씬 적게 취부를 했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된 그 어떤 배경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의 잘 잘못이 가감없이 알려지기만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곳곳에 종이학이 걸려있었습니다.
종이학을 많이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했던가요?

사람들은 어떤 소원을 빌면서 이 학들을 접었을까요?
그가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빌었을수도 그에 대한 미안함을 담았을수도 아니면 그가 꿈꾸었던 좋은 세상을 소망하면서 접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학들과 함께 5월은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올 한해 안타까운 죽음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그 충격이 더했습니다.

다시 꺼내면 안타까움이 더할수도 또 다른 논란이 일수도 있지만 올해가 가기 전, 그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바보 노무현, 지금은 하늘나라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겠지요?

망각의 샘 속에서 그의 이름도 지워져 가겠지만 얼마간은 매년 5월이면 그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좀 무거웠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 즐거웠던 뉴스도 찾아봐야 겠습니다.






Posted by 지후니 지후니74 트랙백 0 : 댓글 12
겨울의 길목, 조용한 영화 한편을 보고 왔습니다.

영화 <솔로이스트> 는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영화들 속에서 보기 드문 잔잔한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미국 LA, 복잡하고 번화한 도시가 그 배경이 됩니다. 주인공은 지역 유수 신문사의 기자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의 생활은 마감까지 채워넣을 기사거리를 찾는 것입니다. 그 기사는 판매 부수를 담보해야 하기에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엄청납니다. 그는 혼자입니다. 결혼을 했지만 이혼 후 외로운 삶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은 자신을 돌아볼 시간마저 주지 안고 있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거리의 음악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두줄 밖에 없는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그 음악가는 거리의 노숙자였습니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 그의 연주실력은 범상치 않았습니다. 누가 보면 정신이 이상한 것으로 보이던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명문 음대 출신임을 알게되고 특종 기사가 나올 수 있음을 직감합니다. 이렇게 유명 기자와 노숙 음악인의 만남은 시작됩니다.

기자는 그의 삶을 따라가 봅니다. 그리고 그가 어려서 부터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고 특히 첼로 연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냅니다. 그의 가족들도 알게 되고요. 가난한 흑인 거주지에서 태어난 음악가는 그 재능을 인정받고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음악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명문 음악학교에 입학하면서 연주가로서 탄탄대로를 달릴 일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알수없는 환청과 착시 현장에 시달리고 맙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음악 공부를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사람들 속에서 살 수 없을 만큼 그 상태가 악화되고 가족들도 모르는 곳으로 홀연히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기자와 만나게 된 것입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그 재능을 대중에게 보여 줄 수 없는 운명을 지닌 것일까요? 음악가는 어둠속에서 그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그의 이런 모습을 칼럼에 실게 되고 그 기사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제대로 된 특종을 잡은 셈입니다. 기사거리로 음악가를 대하던 기자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진심으로 돕고 싶어 합니다. 그의 재능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말이죠. 하루하루 일에 매달려 자기 주변도 돌보지 못하던 기자가 노숙자를 위해 나서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그의 정신에 동화됨을 느끼고 자신의 삶도 되돌아 보게 됩니다. 음악가는 부랑자, 노숙인들이 모여사는 도시 빈민촌에서 지내면서 마음의 평온을 얻습니다. 오랜 기간 하지 않던 첼로 연주도 매일 매일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의 재능을 공유하게 됩니다. 어느 곳에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던 천재 음악가가 그만의 안식처를 얻은 것입니다.

기자의 노력으로 점점 세상속으로 나아가던 음악가는 환청과 환상에 시달리게 되고 세상을 거부하고 맙니다. 많은 사람에게 그의 연주를 보여주고자 했던 기자의 노력도 물거품이 됩니다. 이대로 음악가는 어둠속에 갇혀 살게되는 것일까요?

영화는 내내 잔잔함을 유지합니다. 현란한 액션이나 극적인 반전, 심각한 심리대결도 없습니다. 잔잔한 시를 한편 읽듯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은 그 느낌을 더욱 더 강하게 합니다. 자극적인 소재와 화면으로 가득한 영화나 드라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지루함을 줄 정도로 영화의 흐름은 천천히 흘러갑니다. 감독은 관객에서 감동이나 그의 생각을 전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 듯 화면을 이어갔습니다. 저 역시 화면을 그저 따라갈 뿐 그 속에서 뭔가를 찾아내려 애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처음 영화를 시작하면서 역경을 극복하는 인간 승리의 이야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이 삶을 비쳐주기만 했습니다. 천재 음악가가 왜 빈민들 틈에서 편암함을 느끼지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기자가 왜서 외로운 삶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두 남자의 만남이 뭔가 감동적인 결말로 이어질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볼 시간을 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성공이라는 높은 탑을 향해 달리는 우리들은 항상 앞을 보고 달리지만 주변에 시선을 주지 못합니다. 나보다 못한 이들, 힘든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에 인색합니다. 치열한 삶은 우리에게 끝임없는 경쟁을 강요합니다. 부와 명예를 얻기위해 그저 앞으로 나갈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어쩜 우리는 영화속에 나오는 부랑자, 노숙자가 되지 않은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나보다 못한 이들이 있어 위안을 받는지도 모르지요.

천재 음악가는 더럽고 위험한 빈민 촌에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얻습니다. 그 역시 노숙을 하는 신세지만 그를 괴롭히던 환청, 환상이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기자도 이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곳으로 이끌고 싶어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던 행복의 기준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그 스스로 좀 더 낮은 곳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생각임을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선택일 뿐입니다.

영화는 사람사는 이야기를 클래식 음악과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저도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지켜보았습니다. 겨울로 가는 길목, 영화 <솔로이스트>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수필 한편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그 선율에 맞쳐 잠시 삶에 휴식을 주고 싶다면 선택해도 괜찮은 영화가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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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후니 지후니74 트랙백 2 : 댓글 4
깊어가는 가을, 또 하나의 재난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 <2012> 는 지구 대재앙, 인류의 멸망을 다룬 작품입니다. 사실 인류 멸망의 소재는 예전부터 많이 다루어 졌습니다. 인류 멸망이라는 단어 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기에 첨단 컴퓨터 기술이 접목된 영화 기법으로 그 소재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관객들에게 다가 올 수 있을 것입니다.

<2012> 역시 재난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 갑니다. 이번에는 대 재앙의 전조를 미리 파악하고 대비한다는 것이 다를까요? 영화는 인류 대 재앙의 전조가 나타난 인도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합니다. 재앙의 전조를 파악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비밀리에 인류 멸망을 대비한 작업에 들어갑니다. 점점 인류 종말의 날은 시간을 앞 당겨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그 재앙을 알지 못한채 일상을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여기에 서로간의 갈등을 지니고 있는 주인공 가족이 등장합니다. 그들 역시 종말의 순간이 다가옴을 알지 못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등장 인물등이 그들의 예기를 만들어 갑니다. 극적인 장치를 만들기 위한 것인지 모르지만 재난영화답지 않게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소 시간이 늘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길어진 러닝타임도 그렇지만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는 장면이 길었습니다.

드디어 시작된 인류 종말의 시작,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의 누구처럼 자연의 대 재앙에 속절없이 희생 될 뿐입니다. 생존을 위한 어떠한 시도를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은 CG로 리얼하게 재현됩니다. 종말의 장면이지만 그 안에서 안타까움이나 슬픔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엄청난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화산이 폭발합니다. 상상을 초월한 해일이 사람들을 덮치지만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일 뿐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인류 멸망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감독이 재난 영화로 유명해진 탓인지 전달할 메시지 보다는 화려한 그래픽과 화면에 더 관심이 같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명성답게 그 장면들은 훌륭했습니다. 종말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가지게 하는 장면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영화속에 심어둔 감동의 장치들은 제대로 작동을 했을까요?

우선 영화의 배경에 있어 서구 중심의 세계관에서 다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재앙 극복의 주체로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가 함께하는 모습은 이전과 다른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강대국 위주로 그 주체가 구성되었지만 말이죠. 인류 멸망이라는 대 재앙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도 함께 있었습니다. 인류의 문명을 이어갈 선택된 사람들은 거대한 함선에 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은 소수의 지식인과 정치 지도자 들 그리고 돈 많은 부호들만 가능했습니다. 힘 없는 약소국과 일반 대중들은 선택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한 대부분의 인물들도 속절없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들이 지닌 아픔과 다른 가족과의 갈등을 죽음 앞에 해소되지만 더 이상 그 삶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CG 장면의 강렬함 때문인지 그 안에서 감동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가족 역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연히 구원의 방법을 알게되고 수 많은 어려움을 뚫고 배에 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예전 성서에서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진정한 가족으로 하나가 됩니다. 하지만 닥쳐오는 해일 앞에 또 한번의 위기가 발생하고 소수의 인류마저 모두 몰살할 위기에 처합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타개할 사람은 주인공 밖에 없습니다. 과연 주인공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함선을 구해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인류의 문명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렇게 인류 멸망의 시간은 숨가쁘게 흘러갑니다.
 
인류 종말은 사실 오래전 부터 여러 문헌에서 예언의 형식으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종말의 순간에 구원을 받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기도 하고 아례 그것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자비로 종말을 대비한 개인 방공호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요. 최근에는 그것을 소재로한 재난 영화가 흥행을 거두면서 종말론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까지 합니다. 인류 종말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예측되고 막상 자신의 일로 다가온다면 어느 누구도 이에 태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012>는 분명 오락영화이고 사실이 아니지만 종말의 장면들을 눈 앞에서는 보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소수의 선택받는 인류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인류에 큰 도움을 주는 지식이나 재주도 없습니다. 영화속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느 유명한 철학자 처럼 내일을 위해 사과 나무를 심을 만큼의 확고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살 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종말의 날이 왔을 때 후회할 일을 많이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영화속의 인물들처럼 그때 가서야 후회하고 화해하는것 보다는 아쉬움이 없을 테니 말이죠. 더 중요한 것은 수 많은 종말론속에서 아직 지구는 건재하고 내일의 태양이 뜨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구 종말을 앞 당기고 있는 건 날로 발전되는 인류 문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날로 파괴는 자연과 증가하기만 하는 다양한 무기들이 인류 전체에게 후회 할 여력도 없는 재앙을 순식간에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영화를 보았고 후회할 일을 줄이면서 또 하루를 보내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또 하루가 시작되겠지요?


(하루가 시작되는 일출은 항상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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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후니 지후니74 트랙백 0 : 댓글 0
요즘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루저 발언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녀들의 수다 라는 프로에서 한 출연자가 키가 적은 남성을 루저(loser) = 패배자 라고 발언한 것인 일파만파로 번져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출연자와 발송 제작진간의 책임 떠넘기기 양상까지 보이면서 더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은 사석에서 누구든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농담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예기지요. 문제는 이 발언이 공중파 방송에서 아무런 여과없이 그것도 커다란 자막과 함께 나왔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인종차별 발언과도 같은 부 적절한 말이 그대로 방송을 타고 말았습니다. 이런 비난 여론이 일거라는 것을 몰랐던 것인지 의도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인지는 모르지만 "미수다" 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난과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죠.

문제의 발언을 한 여대생도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렸습니다. 그가 해명한대로 대본에 의한 것이었는지 그의 자의에 의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중들 특히 네티즌들의 여론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그의 사생활과 과거 행적까지 인터넷상에 퍼짐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비판 여론은 아직도 인터넷을 채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아서 개똥녀라는 별칭을 얻은 여대생 사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실명과 직업이 모두 공개된 상황에서 그가 다니는 학교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과연 이러한 현상이 누구의 말 처럼 키작과 열등한 남자들의 자격지심에 의한 것일까요? 아니면 일종의 마녀사냥식 여론 몰이일까요? 이러한 비난을 받아야 마땅할까요? 현재는 발언한 학생에 대한 비난 여론이 크지만 이에 대한 반대 여론도 조금씩 올라오고 있습니다.

루저 사건을 보면서 모 통신 회사의 광고가 연상되었습니다. 몇 살에 영어를 유창하게 못하고 대기업에 못 들어가고 외제차를 못 몰면 지는 것 아니냐는 카피를 내세우다가 이러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내용의 광고입니다. 이 광고를 보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생각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어려서 부터 영어을 유창하게 해야하고 대학에서는 대기업으로 대표되는 좋은 직장을 가기위해 공부해야하고 잘 나가는 직장에 들어가서 좋은 차를 몰아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요.

어찌보면 주류 사회가 만들어낸 성공의 기준에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동화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루저 사건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통념에 대한 반발이 폭발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사회가 제시한 성공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사회는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리 관대하지 못합니다. 이 발언이 나온 방송에서도 각 학교를 대표하는 여대생이 나와서 그들의 가치관과 연예관 등을 자유롭게 예기했는데요. 그들이 생각하는 연예의 조건을 말하다가 루저라는 발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자신과 비교해서 남자는 180 이상이 되면 좋겠고 그렇지 못한 남자들은 루저라고 말한 것이지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전에 이들의 대화와 이 발언이 함께 하면서 큰 반발을 가져온 듯 합니다. 그래도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좀 더 진취적이고 참신한 생각을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사회 통념과 너무나도 똑 같은 사고를 지닌 것에 대한 실망감일지도 모릅니다. 흔히 좋은 남편의 조건인 돈 많고 잘생기고 키도 크고, 연예와 결혼은 별개라는 생각, 조건이 우선이라는 생각 등등 그들에게서 대학생에게서 볼 수 있는 순수함이나 참신성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회에 찌들대로 찌는 기성세대의 모습, 아니 그보다 더 영악한 모습만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함께 출연한 외국인 패널까지도 그 모습에 실소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머리가 멍해짐을 느겼습니다.

이 모습이 정말 우리 여대생들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일반적인 사고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결국 루저 사건은 본질은 학벌 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있는 사회에 대한 반발이 루저라는 발언으로 터져나온 것입니다. 해당 발언자와 프로는 그 반발에 직접 대상자로 집중포화를 맞고 있습니다. 물론, 일시적인 재미를 추구하려 이에 편승한 사람들도 있을테고 그 파문이 오랜기간 이어질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요?
 
저는 이번 사건이 누구에 대한 비난과 비판으로만 끝날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가치관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이런 발언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별로 잘난것도 없으면서 그런 말을 했어" 라는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키작은 루저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루저들에게도 기회의 장이 마련되고 그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저 또한 키가 169.7 센티미터, 우겨서 170센티미터라고 합니다. 어찌 되었던 루저중 한명입니다. 좋은 직장이나 차도 없습니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지도 않습니다. 여성들이 선망하는 일등 신랑감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은 루저, 패배자라는 말을 듣고싶지는 않습니다. 가능성이라는 보이지 무형의 자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루저라는 말을 한 그 여학생은 분명 큰 잘못을 했습니다. 그런 말을 그대로 방송한 방송국에도 잘못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은연중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해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필요 이상의 우월감 아닐까요? 우리들 스스로 누군가를 루저로 만든적은 없었을까요? 이번 사건으로 누군가는 방송국에 손해배상을 청구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피해자들이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사회 구조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번 사건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좀 더 좋은 사회로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멋진 작품도 루저상이라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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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후니 지후니74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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