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우리 영역이 아닌 만주지역을 호령하던 고구려는 인접 이민족과 중국 왕조들과 국경을 접하면서 그들과의 대결이 불가피했다. 고구려는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기보다는 강하게 맞서며 영토를 넓히고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런 고구려의 성장 배경에는 오랜 세월 계속된 중국의 분열이 있었다. 한나라 멸망 이후 위 진 남북조, 5호 16국의 혼란 속에 고구려는 만주지역의 패권을 공고히 하고 남으로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며 한강유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6세기 삼국 중 가장 늦게 고대 국가로 발전한 신라가 진흥왕 시기 국력을 강화하면서 고구려를 위협했다. 진흥왕의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함께 공격했고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신라는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독자적으로 한강..

현대사의 여러 사건들을 재조명했던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이 다시 고대사의 각 장면들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만주 벌판을 호령했던 고대 왕국 고구려였다. 그 시작은 광개토대왕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대왕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왕은 얼마 없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함께 광개토대왕이 그중 한 명이다. 그만큼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우리 고대사에서 중요했다. 광개토대왕이 재위했던 391년 ~ 413년은 국내외로 격변의 시기였다. 멀리 유럽에서는 로마가 395년 동. 서로마로 분열되면서 절대 왕국이었던 로마제국이 사라졌고 중국은 위 진 남북조, 5호 16국의 혼란기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북방의 이민족들이 세운 5호 16국의 왕조는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며 수시로 충돌했다. 여기에 고구려는 남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