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를 배우면서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가 당파싸움이다. 분명 긍정적인 단어는 아니다. 대립과 분열을 강조하는 듯 한 단어의 조합은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이는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식민 사관의 영향이 강하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파를 갈라 싸우기를 좋아하고 단결하지 못한다는 식의 논리가 그것이다. 실제 우리 역사에 있어 당파싸움, 지금은 붕당정치로 칭해지는 정치권의 대립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오늘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붕당정치에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과한 부분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붕당정치의 일부분만을 보고 그것을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진 정치와 거리가 먼 당파 간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이루고 수준 낮은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는 우리..
조선 후기 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조, 그에 대해 현대의 평가는 개혁군주였다는 점이다. 정조는 재위 기간 정치, 사회적으로 조선의 부흥을 이끌었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 발전해 다양한 정치 세력의 공존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같은 양반이면서도 관직 등용에서 철저히 배격됐던 서얼, 후처 소생의 자녀들에게 기회를 부여했다.또한 정조는 소수 기득권층만을 위한 정치가 아닌 일반 백성들을 삶에도 관심을 가지는 민생정치를 추구했다. 정조는 노예제도 개선에도 힘썼고 지방의 토착 비리 근절에서 관심을 기울였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실시함에 있어 부역에 나서는 이들에게 일정 보수를 지급했고 농업 외에 상공업 발전을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실학자들도 권력의 중심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