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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는 덕유산을 포함해 지역의 80% 이상이  산지로 이루어진 고원지역이다. 무주를 포함해 주변의 진안, 장수 지역은 남부 지방이지만,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겨울이면 많은 눈이 내리는 곳으로 교과서에도 나와있을 정도로 특별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 또한, 청정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무주는 스키 등 동계 스포츠가 활성화되어 있고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강원도 평창에 맞서 국내 유치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은 무주가 도시에서는  먼 오지라는 인식을 가지게 했다. 하지만 최근 고속도로가 주변에 들어오고 보다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무주이기도 하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15회에서는 전북 무주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만났다. 

여정의 시작은 무주에서 가장 먼저 손꼽히는 관광지 덕유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덕유산은 특히, 겨울 멋진 설경으로 유명하다. 이에 겨울이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정상 인근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곤돌라가 있어 보다 편한 산행도 가능하다. 이 곤돌라는 타고 올라가는 도중 덕유산에 많은 눈이 내렸다. 이제 봄기운으로 채워져야 할 3월이지만, 덕유산은 여전히 하얀 설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봄 속 겨울이 공존하는 덕유산의 풍경이었다. 

 

 


덕유산을 내려와 산골 마을을 걸었다. 계곡에 흐르는 물을 따라가다 삼베를 짜는 손길이 분주한 치목마을에 이르렀다. 이곳에서는 주변에서 채취한 삼배 재료로 삼배 실을 만드는 일이 한창이었다. 혼자서는 힘든 작업으로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전통 방식 그대로 베틀을 이용해 삼베 옷감을 짜는 모습은 이제 보기 힘든 장면이 됐지만, 이 마을에서는 그 전통을 지켜가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삼베는 귀한 하나의 작품이고 보존되고 지켜져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었다. 세상을 떠나는 이의 수의로 사용되는 삼베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삼베를 짜는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배우자의 수의는 물론이고 자신의 수의도 스스로 짜 준비해 놓았다고 했다. 삶의 마지막을 말하는 할머니는 덤덤하기만 했다. 그 덤덤한 속에는 오랜 세월 쌓여진 삶의 희로애락이 함께 담겨 있었다. 할머니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며 또 다른 여정에 나섰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계곡길을 걷다 특이한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각종 고철로 만들어진 독특한 작품들이 마을 공터에 서있었다. 마을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만든 이 작품은 그 수가 매우 많았다. 그는 정비 일을 하는 도중 틈틈이 버려지는 고철들로 다양한 모양의 조각 작품을 만들어오고 있다 했다.

매우 독창적이고 신기한 모습들이었다.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한 작품들은 이제 그의 인생과 함께 하는 존재들이 됐다.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한때는 가족들이 원성을 듣기도 했지만, 이제는 든든한 지원군이 그의 가족들이다. 차갑고 쓸모없어 보이는 고철들을 새롭게 창작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그의 작업실은 또 다른 꿈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또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현실에서 의미가 커 보였다. 그의 열정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을 걷다 무주의 명물 나제통문을 지났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이 동굴은 과거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는 장소였다. 자연이 만들어준 통로를 통해 사람들이 지나기도 했지만, 신라와 백제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대결하는 시기 이곳은 두 나라를 단절하는 곳이기도 했다. 자연의 신비와 역사가 함께 하는 곳이었다. 

다시 길을 걷다 한 송어횟집을 만났다. 보통 강원도에서 볼 수 있는 송어횟집을 무주에서 볼 수 있어 이채로웠다. 이 횟집은 사장님은 산지가 대부분인 무주에 이런 횟집이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강원도에서 송어를 공수해와 송어횟집을 열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식당으로 지나칠 수 있는 이곳에는 남다른 가족의 사연이 숨어 있었다.

과거 요식업에 종사하던 사장님은 배우자와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어린 딸과 함께 살아가야 했다. 육아에 대해 모든 것이 미숙한 아빠였던 기는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절박함과 함께 엄마가 없는 딸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속에 하루하루를 살았다. 이런 걱정에도 딸은 훌륭히 성장했고 동계스포츠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식당 한편에 딸이 대회에서 수상한 상장과 메달이 가득했다. 딸은 아버지의 식당 일을 도우며 아버지에게 힘을 보태고 있었다. 아버지와 딸은 서로를 위하는 애틋한 마음을 나누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부녀의 사랑 가득한 송어횟집은 그래서 더 특별해 보였다. 

시골 마을 길을 걸었다. 그 중간에 오래된 함석지붕과 철판으로 외벽을 세운 정미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족히 100년은 훨씬 더 넘게 운영되었다고 하는 정미소에서는 긴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기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정미소의 사장님은 유서 깊은 정미소를 운영해 수십 년간 운영해오고 있었다. 도시에서 귀농해 이 정미소를 인수한 사장님은 정미소 운영 외에 주변의 농지를 틈나는 대로 구입해 이런저런 농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이런 사장님의 일 욕심에 그의 배우자는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함께 농사일과 정미소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티격하는 모습이지만, 부부는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일을 줄이고 보다 더 삶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부부의 작은 소망을 응원하며 길을 나섰다. 

시골길을 걷다 석채화를 위한 재료인 돌을 찾는 화가를 만났다. 각각 다른 색의 돌을 그 돌가루를 이용해 그름을 그리는 석채화의 중요한 재료로 활용되고 있었다. 일반 그림과 달리 석채화는 접착제 성분으로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돌가루를 뿌려 채색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렇게 그려진 석채화는 오랜 세월에도 그 빛이 변하거나 바래지지 않아 천년화로도 불린다고 했다. 실제 그림을 보니 돌가루로 그려졌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세밀한 색채를 구현하고 있었다. 청청한 자연을 자랑하는 무주와 잘 어울리는 석채화였다. 

여정의 막바지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봄비와 함께 하며 마을 길을 걷다 오래된 한옥집에 이르렀다. 과거 마을의 서당이었다는 이 한옥은 긴 세월의 흔적이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 서당에서 마을의 오랜 전통인 낙화놀이를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종이 한지에 불에 잘 타는 숯과 소금을 넣고 그 종이를 길게 꼬아 놓으니 꽈배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낙화봉이라 부르는데 이를 줄에 매달아 태운다고 했다. 예전부터 마을에서는 이런 낙화봉을 태우면서 사람들은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복이나 소망을 빌었고 이를 낙화놀이라고 했다. 정월 대보름에 하는 쥐불놀이나 불을 밝히는 연등을 날리는 모습이 연상됐다. 

어둠이 내린 마을 한편에서 재현된 낙화놀이의 모습은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그 빛이 밤 하늘을 채웠다. 그렇게 어둠을 밝히며 타오르는 불꽃은 여러 액운들도 함께 날려보내는 느낌이었다. 그 낙화놀이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우리 일상을 힘들게 하고 있는 코로나가 물러나기를 소망해 보았다. 

조용한 산골 마을이라 여겼던 무주에도 우리 이웃들은 과거의 전통을 지켜가고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보통의 삶이 잘 지켜지고 따뜻한 봄날과 같은 행복한 기억들로 그들의 역사가 계속 채워지기를 다시 한번 기원해 본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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