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728x170

이방원의 마지막 고민이었던 후계 구도가 정리됐다. 이방원은 계속된 비행과 왕의로서의 자질 부족 등을 문제를 들어 양녕대군의 폐세자를 결정했다. 그는 대신들과의 논의 과정을 거쳤지만, 폐세자의 명분을 얻기 위한 과정에 불가했다. 이방원의 마음속에서 세자는 이미 지워졌고 그 자리는 충녕대군이 대신했다. 충녕대군 역시 왕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결국, 양녕대군은 세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마지막까지 세자 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이미 자신에게서 마음이 떠난 아버지 이방원을 뜻을 알고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남은 건 그의 거취 문제였다.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왕족의 운명을 대부분 죽음으로 귀결됐다. 양녕대군의 존재는 이방원을 물론이고 충녕대군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었다. 이미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이복동생들을 사사하고 함께 조선 건국을 이끌었던 정치적 동지들을 사사했다. 왕위 계승의 후 순위에 있었던 이방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방원은 차마 자신의 아들을 사사할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며 격한 감정을 토로한 양녕대군을 유배 보내는 선에서 상황을 정리했다. 충녕대군 역시 형제간에 피를 보는 일은 원하지 않았다. 대신 양녕대군은 왕위를 양보한 인물임을 강요받았고 조선 실록 등에 그의 비행이 모두 기록됐다. 왕위에서 밀려난 게 아닌 그가 문제가 있고 왕위에 오르지 못한 인물로 남았다. 이를 통해 양녕대군은 철저히 역사의 패배자로 남았다. 정치적 재기의 가능성도 완전히 차단됐다. 

이렇게 형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충녕대군은 세자로 책봉됐다. 그의 어미니 중전 민씨는 이런 형제의 비극을 막고자 했지만, 양녕대군의 각종 비행을 인지하고 더는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중전 민씨는 생전에 자신의 가문이 몰락하고 또다시 자신의 낳은 자식들 간의 권력 투쟁을 지켜보는 비운을 맞이했다.

 

 

이방원은 충녕대군의 세자 책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양위를 선언했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대신들의 충성심을 시험하고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다. 그는 제왕의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충녕대군이 세자가 아닌 왕위에 올라 제왕의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방원은 상왕으로 물러나 그의 뒷받침했다. 형식적으로 왕의 권한은 충녕대군에 있었지만, 이방원은 군권과 중요 인사권을 손에 쥐고 중요한 의사 결정을 했다. 세종대왕 시대의 시작이었다.

세종대왕은 권력 투쟁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아버지 이방원의 신임을 얻어 왕위에 올랐지만, 권력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었다. 여전히 실권을 쥐고 있는 아버지 이방원의 존재가 크고 높았다.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조정의 대신들은 대부분 이방원의 신하들이었고 중요한 군권도 이방원이 가지고 있었다. 국정의 의사 결정에서 세종대왕은 자신의 의견을 온전히 반영할 수 없었다. 신. 구 권력이 공존하는 구도가 이어졌다. 

이방원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는 세종대왕이 성군이 되기를 원했지만, 그를 위한 장애물을 제거하고자 했다. 자신이 했던 것처럼 왕권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들의 존재를 강하게 견제했다. 이방원은 이를 위해 중전 민씨의 외척 세력과 공신들에 대한 숙청을 지속적으로 단행했다.

그는 절대 권력자가 됐지만, 대신 그와 마음속에서 나오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는 없었다. 이방원은 절대 고독 속에 빠져 살아야 했다. 이방원은 이를 국왕의 숙명으로 여겼다. 더 강한 국왕이 되는 게 이방원은 큰 목표였다. 그는 그  기반 위에 세종대왕의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길 원했다. 세종대왕은 이런 이방원의 진심을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무고한 희생을 막고자 했다 신. 구 권력이 충돌할 수 있는 불씨가 이 지점에 있었다. 

갈등은 세종대왕의 처가인 중전 심씨 가문에 대한 문제로 표면 위로 등장했다. 이방원은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중전 심씨 가문에 대한 숙청의 기회를 보고 있었다. 이방원은 세종대왕의 장인 심온을 영의정에 임명했고 그를 명나라 사신으로 파견했다. 심온은 이를 사양했지만, 거듭된 요청에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이미 이방원의 처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는 세종대왕은 심씨 가문의 요직 기용을 주저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였다. 눈에 보이는 곳에서 왕에 대한 충성을 보이고 명나라 사신으로 파견돼 국내에 머물지 않는 편이 더 낮다는 판단을 했다. 세종대왕은 처가의 비극을 막고 싶었다. 심씨 가문을 놓고 긴장이 점점 고조됐다. 

엉뚱한 곳에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방원은 군사와 관련한 보고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문제 삼았다. 관리의 실수였지만, 이는 이방원에게 심씨 가문의 숙청을 위하 명문으로 작용했다. 영의정 심온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혹독한 고문으로 관리에게서 심온의 이름이 나왔다. 그 관리를 곧바로 사사됐다. 심온은 죽은 자의 진술에 따라 역적으로 몰렸다. 그는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고 자백을 강요받았다. 

이에 세종대왕은 이방원에 강력히 충돌했다. 그는 죄 없는 장인과 심씨 가문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이방원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이방원의 자신의 이름으로 외척 세력을 제거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세종대왕 치세의 탄탄대로를 열어주려 했다. 세종대왕은 더는 힘에 의한 정치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어려 정치세력을 공존하고 왕이 이를 이끄는 왕도정치를 원했다. 더는 왕이 힘으로 통제하는 정치는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자신의 힘이 부족함을 절감했다. 

결국, 세종대왕은 장인 심온의 사사를 막을 수 없었다. 심온의 사사와 함께 심온의 처와 자식들을 노비로 강등되거나 유배형을 받았다. 세종대왕은 무력한 자신의 처지에 좌절했지만,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중전 심씨의 폐위와 관련한 대신들의 상소를 단호히 거부했다. 중전 심씨는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은 아버지 이방원, 즉, 구 권력에 맞서 얼마간의 정치적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한차례 신. 구 권력이 격돌한 이후 이방원은 빠르게 통치 노하우를 전수하며 세종대왕의 권력이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청계천 보수 공사 등 대규모 치수 사업을 자신의 명으로 행하면서 세종대왕이 백성들의 원성을 듣지 않도록 했고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그러면서 제왕의 자세와 왕위를 단단히 지키기 위한 방법 등 세세한 부분을 전하려 했다. 그렇게 세종대왕의 치세는 점점 안정기를 접어들었다.

 



이방원은 정치 현안에서 손을 놓고 그동안의 삶을 뒤돌아 봤다. 한때 중요한 정치적 동반자이자 마음을 나누는 친구이자 배우자였던 중전 민씨와의 관계 회복에 나섰다. 하지만 모진 풍파를 겪으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민씨의 마음은 이방원과 크게 멀어져 있었다. 그는 중전에 이어 대비가 됐지만, 그 직위를 버리고 궁궐과 거리를 두며 사가에 머물렀다. 이방원은 민씨에게 남편으로서 사과하며 참회를 했지만, 크게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민씨는 결국, 이방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 데 있어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던 민씨였지만,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방원의 정적이 됐고 가문이 몰락하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방원 역시 성리학에 근거한 통치 시스템 확립을 강력히 추진했다. 정치적 지분을 인정받길 원했던 민씨는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민씨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 비정한 정치는 누구보다 돈독했던 부부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 

민씨의 사후 이방원은 급격히 몸이 쇠약해졌다. 상왕으로서 이방원은 여전히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했지만, 세월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이방원은 가뭄이 극심하는 어느 날 세상을 떠났다. 역사서에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의 죽음에 대한 영웅적인 면모를 더하기 위한 각색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방원의 삶은 극적이었다.

그는 이성계 가문에서 문무를 겸비한 엘리트였고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 왕조를 여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던 정몽주 격살 등 과감한 행동을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른 그의 적극성은 조선 창업 후 그가 견제를 받는 원인이 됐다. 정치인 이방원은 조선 초기 그 입지가 크게 불안했다. 이성계는 물론이고 그의 부인 신덕왕후 강씨, 정도전을 포함한 공신 세력의 견제를 받았다.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생존을 위해 더 강해져야 했고 더 냉철해져야 했다.

이방원은 아버지 이방원은 물론이고 형제들을 정적으로 돌려야 했다. 치열한 권력 투쟁의 과정을 거치며 그는 정치인으로 성장했고 권력을 쟁취했다. 그는 아버지 이성계를 밀어내고 이방원의 나라를 열었다. 이방원은 자신의 나라가 영원히 이어길 원했고 자신보다 나은 후계자가 다음 왕위를 잇길 원했다. 그런 과정에서 충녕대군, 세종대왕의 선택됐다. 세종대왕은 누구나 잘 알 듯 우리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다. 그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과 역량이 있었고 조선의 수백 년 역사가 이어지도록 하는 기틀을 세우고 전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그의 치세는 이방원의 피의 역사 위에 세워졌다. 이방원은 정적들에게 대한 숙청을 단행했다. 많은 희생이 뒤 따랐다. 왕권에 위협이 된다면 이방원에게는 가족도, 친척도, 공신도 친구도 모두 정적일 뿐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했다. 그렇게 그는 악업을 쌓으며 강력한 왕권을 만들었다. 이방원은 그가 쌓은 악업을 모두 안고 세상을 떠났다. 세종대왕은 자신의 뜻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성군이 될 수 있었다. 세종대왕은 이상적인 왕도 정치를 실현하면서도 이방원의 유산을 계승하며 발전시켰다. 이로써 조선은 창업의 시대를 넘어 수성의 시대로 더 큰 발전의 시대로 접어들 수 있었다. 이방원은 그 디딤돌이었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은 인간 이방원의 성장 과정을 디테일하게 다뤘다. 이방원의 이야기는 무수히 많은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됐고 식상할 수도 있었다. 이 드라마는 기존 드라마와 달리 대하드라마답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이방원의 인간적이 면을 더 부각했다. 초기 그는 나약하기도 했고 우유부단하기도 했다. 냉정한 아버지의 정을 그리워하는 아들이기도 했고 시련에 쉽게 무너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각성했고 진짜 정치가로 발전했다. 그는 시대가 원하는 리더십이 무엇인지 인지했고 그에 맞게 행동했다. 이에 그는 조선 그 어느 왕보다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조선은 고려의 유산을 완전히 떨쳐내고 새로운 왕조로 거듭날 수 있었다. 조선의 역사에서 그의 공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의 치세를 이끌어 냈다는 점은 그의 악업을 모두 가릴 수 있는 업적이다. 

물론, 이방원의 리더십은 현대적 관점에서 독재고 철권통치의 어두운 단면을 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런 리더십은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지금 국민들의 수준은 매우 높아졌고 집단 지성의 힘은 매우 우월하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권에 국민들은 매우 단호하다. 선거는 정치권력을 국민의 뜻으로 바꿀 수 있는 유용한 제도다.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의 폐해를 현대사에서 우리는 경험하고 그에 맞서 싸웠다.

당시 사회는 그런 시민사회의 힘이 없었고 소수의 양반 사대부들이 권력을 분점 하는 시대였다. 이방원의 통치는 기득권 사회 내에서 이루어진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의 통치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백성들을 위한 시스템 정비, 과학의 발전 등으로 연결됐다. 이방원은 왕의 힘으로 신분제 사회의 틀을 깰 수 있도록 했다. 세종대왕이 노비 출신의 장영실을 등용할 수 있도록 한 이면에도 이방원이 있었다.

여성들의 지위 하락이라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열린 사회 구조는 조선 초기 번영의 초석이 됐다. 다만, 연산군 시절 최악의 치세기는 절대 왕권의 폐해를 상징하고 있다. 유능하고 이상적인 왕이 매번 통치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방원의 강력한 왕권 추구가 무조건 선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이는 이방원의 치세에 대해 보다 면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태종 이방원은 모처럼 만난 정통 사극이었다. 32회가 다소 짧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빠른 전개가 되면서 지루함을 덜고 보다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원경왕후 등 여성들의 역할을 부각하는 면도 긍정적이었고 이방원의 통치에 대해 긍정과 부정을 공존하게 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었다. 퓨전 사극이 대세가 되는 최근 사극 트렌드에서 묵직함을 주는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은 사극에 대한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이런 정통 사극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반응형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