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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그 자체로도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지만, 영화나 드라마 등의 소재로도 끊임없이 활용된다. 스포츠 자체가 가지는 역동성과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인상적인 스토리를 형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스포츠 위에 더해진 스토리는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더 큰 흡입력을 가질 수 있는 공감을 얻을 수도 있다. 물론, 완성도 떨어지는 작품에는 무수히 많은 혹평이 쏟아질 수도 있다. 흥미로운 소재지만, 리스크도 함께 한다.

많은 스포츠 영화 중, 영화 “불의 전차”는 1981년 개봉된 영화로 1924 프랑스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영국의 육상 선수 헤럴드 에이브럼스와 에릭 리델 두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 올림픽에서 헤럴드는 남자 100미터 금메달, 에릭은 남자 400미터 금메달을 따냈다. 영화는 이들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 여정을 따라간다. 마치 다큐를 보는 느낌이다.
 
이 속에서 두 메달리스트들의 노력과 스포츠 선수로서의 열정, 그들의 처한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고뇌와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이에 이 영화는 지금도 스포츠 영화의 대표적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영미권에서 큰 흥행에 성공했고 작품성도 인정받아 아카데미상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그리스 출신의 건반 연주자 겸 음악가의 반젤리스의 동명의 연주 음악 또한 영화와 함께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영화 주제곡은 연주곡으로는 보기 드물게 빌보드 싱글 차트와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주제곡은 이후에도 각종 방송이나 광고 등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며 대중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연주곡이 됐다. 반젤리스, 불의 전차를 검색해 들으시면 아 이 음악 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불의 전차 주제곡은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도 연주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영화의 시작은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추모식을 지나 과거로 넘어간다. 그리고 한 무리의 청년들이 바닷가 모래사장을 달리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들은 1924년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는 영국 육상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그리고 그 안에 주인공 헤럴드와 에릭이 있다. 이제 이야기는 두 주인공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과정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해럴드는 영국의 명문 캠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전도유망한 엘리트 청년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콤플렉스가 있다. 그의 집안은 유대인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유대인 금융업자, 당시로는 고리대금업자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한 삶을 살지만, 해럴드는 유대인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 시선과 편견의 벽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헤럴드는 유대인이라는 한계에 완벽히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그 누구보다 영국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명문대에 진학한 것도 상류 사회의 일원이 대기 위한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헤럴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목표를 가지게 된다. 그는 육상에서 재능을 보였고 최고 선수가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해럴드는 올림픽 대표 선수가 되고 올림픽 메달을 위해 다시 달렸다. 영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내면 그는 유대인이 아닌 영국인 메달리스트로 나라에서 대중들에게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훈련에 매진한다.
 
이를 위해 헤럴드는 아마추어 선수로는 금기시되는 개인 코치까지 영입해 훈련에 박차를 가한다. 그의 대학교에서는 이에 반대하지만, 올림픽 메달을 향하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헤럴드를 막을 수 없었다. 이런 헤럴드의 열정에 더 큰 불을 지피게 한 건 다른 육상 선수 에릭이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에릭은 그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는 선교활동 등 종교적 신념을 구현하는 삶에 충실하려 했다. 합니다. 한편으로 그는 영국에서 가장 빠른 육상 선수이기도 했다. 그는 육상 선수로서 자신의 뜻을 펼치려 하면서도 대외 선교활동에 주력하길 원하는 여동생으로 인해 갈등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 가족들은 그의 육상 선수로의 성공이 종교적 신념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하며 에릭을 격려한다. 그는 종교적 양심과 신념, 스포츠 선수로서의 성취 두 가지 사이에서 고뇌를 거듭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독보적인 실력으로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된다. 그 과정에서 해럴드와 대결을 펼치게 되고 에릭은 그를 이긴다. 이에 헤럴드는 이에 충격을 받고 더욱더 훈련에 매진한다. 두 선수는 경쟁자이면서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팀의 동반자로서 파리 올림픽을 준비한다.
 
마침내 올림픽이 열리는 결전장으로 에릭과 헤럴드, 영국 육상 국가대표 동료들이 함께 향하게 됐다. 경주를 앞둔 시점에 에릭에게 변수가 발생한다. 마침 그 주 종목은 남자 100미터 예선전이 일요일 열리기 때문이었다.
 
기독교 신자인 에릭에게 일요일은 주일이자 안식일이었다. 대외 행사 활동을 한다는 건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종교적 신념과 나라를 위한 길에서 종교적 신념을 택한다. 유력한 메달리스트인 에릭의 경기 출전을 위해 국가대표 관계자들의 그를 설득하지만, 그는 신념을 꺾지 않았다. 이는 영국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헤럴드는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페이스메이커이기도 한 에릭 없이 100미터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그는 올림픽 전 개인 코치를 통해 100미터를 집중적으로 연습했지만, 예선전에서 미국 선수들의 기세 눌려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에 그의 개인 코치가 편지를 통해 그를 응원한다.

코치는 지금까지 훈련 과정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그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줬다. 경기에 대한 마지막 당부와 함께 행운의 증표를 그에게 보내준다. 헤럴드를 혹독하게 훈련시킨 그 코치는 헤럴드가 긴장하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하면 금메달을 따낼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은 헤럴드는 투혼을 발휘해 올림픽 남자 100미터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다. 그토록 염원하던 영국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금메달이었다.
 
하지만 에릭은 주 종목 100미터 출전을 포기했고 200미터에서 3위에 머물렀다. 이제 에릭에게 더는 기회가 없어 보였다.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그의 동료 선수가 그에게 남자 400미터 출전권을 양보했기 때문이었다.
그 동료는 에릭의 실력과 열정 의지를 알고 있었고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의 에릭이 그 경기에 나서길 원했다. 단거리 육상 선수인 에릭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었지만, 에릭은 이를 수락하고 경기에 나선다.
 
400미터 결승에 오른 에릭은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끊었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함께 스포츠 선수로서의 중요한 목표도 함께 이뤄냈다. 이런 에릭을 헤럴드를 포함해 영국 육상 대표팀 모두가 함께 축하해 주며 두 선수의 파리 올림픽은 행복하게 마무리됩니다.
 
이후 두 주인공은 엇갈린 삶을 살게 된다. 선수 은퇴 이후 헤럴드는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고 그가 원하던 대로 영국 주류사회에서 성공하게 된다. 해럴드는 영국 체육계의 저명인사로 원로로 살다 1978년 세상을 떠난다. 에릭은 선수 생활을 마치고 애초 하려 했던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에 매진한다. 하지만 일본의 중국 침략과 함께 그가 선교활동을 하던 지역이 일본군에 점령당하면서 고난의 시간을 보낸다. 그는 다른 영국인들과 함께 중국 내 일본군 수용소에서 감금되어 살았다.
 
결국, 그는 1945년 2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그 수용소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불행한 최후였지만, 그는 그가 원하는 종교인의 삶을 살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그 자체로 그는 성공할 삶을 살았다.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영화 불의 전차는 폭풍 같은 삶을 살았던 두 스포츠 선수들의 이야기 속에 당시 시대상과 스포츠 정신, 삶의 철학 등을 녹여낸 한편의 서사시였다. 담담해 보이지만, 역동적인 영상이 조화를 이루고 사람들을 몰입하게 한다.
 
다만, 영화에 대해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고 백인의 사고와 세계관에 근거한 다소 편협한 시각의 작품이라는 비판도 할 수 있다. 실제 영화는 영국 상류층 백인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그들의 삶을 영웅적으로 그려내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들의 배경과 사회적 분위기 등을 배제하고 스포츠인으로서, 목표를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인간으로서만, 그들을 살펴본다면 그 비판을 조금은 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선수의 여정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육상 선수로 삶을 살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는 이들이었다. 힘든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분야에서 명성을 쌓을 수도 있었다. 이들은 안락한 현실에 만족하지 않았다. 대신 인생의 더 큰 목표를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 결과 그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고 올림픽 역사에 남는 선수로 기록됐다.
 
다시 영화 첫 장면, 해변을 달리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해변길을 달리는 청년들은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고민하고 걱정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할 뿐이다. 그들은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스포츠를 보고 사람들이 감동하고 열광하는 건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노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올림픽 등에서 대중들은 과정과 노력에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중들의 상황을 보는 눈이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 
 
불의 전차 속 청년들은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가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 길에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소소한 행복들에 힘을 얻고 앞으로 달려간다. 그런 삶이 모여 이 사회가 지탱된다. 사람들의 노력들이 더 인정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사회 속에 살수 있을지 모른다. 스포츠 정신은 결코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 불의 전차는 그것을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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