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드라마 등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고려의 역사, 고려 거란 전쟁에서 여러 인물들이 새롭게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과거 고려 거란 전쟁은 3차 고려 거란 전쟁의 마지막 전투, 귀주대첩으로 대표됐고 그 승리를 이끌었던 강감찬이 중심인물이었다. 흔히, 고려와 거란의 역사는 귀주대첩 강감찬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를 통해 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양규라는 위대한 장군을 알 수 있었고 위기의 고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하공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고려사에서는 위대한 군주로 칭송받았던 현종에 대해서도 다시 살필 수도 있었다. 현종은 고려 왕조의 치열한 권력투쟁 과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수차례 목숨을 잃을 위기를 넘겨야 했다. 그의 즉위 역시 강조의 정변으..

고려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라 할 수 있는 30여 년간의 고려 거란 전쟁 기간을 재조명하고 있는 역사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5회부터 본격적으로 2차 고려 거란 전쟁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강조의 정변이라는 큰 사건이 있었고 현종의 즉위가 있었다. 고려 현종은 드라마에서처럼 실제 유년기부터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며 큰 시련을 겪어야 했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현종은 왕위 계승에 있어 우선 순위에 있었지만,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고아가 됐고 권력 투쟁의 중심에 서야 했다. 아무런 정치적 배경이나 왕실 내 우호세력이 없었던 상황에서 승려가 되기도 했고 계속된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왕위에 오른 것도 선왕이 시해당하는 정변의 결과였..

고려 초기 역사는 대외적으로 거란과의 치열한 대결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 중간 중요한 장면이 있었다. 1009년 일어난 강조의 정변은 고려 역사상 최초로 왕이 신하에게 폐위되고 시해당하는 사건이었다. 후사가 없었던 목종의 죽음은 고려 태조 왕건의 직계 자손들의 왕위 계승이 단절된 것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했다. 사건은 발단은 목종 후계 구도를 둘러싼 갈등에 있었다. 대중들에게 고려 목종이 무능력하고 어머니 천추태후와 그의 내연남 김치양에 휘둘려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왕으로 알려져 있고 고려사를 배경으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목종은 부정적으로 그려졌다. 그의 동성애적 성향이 더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목종의 치세 기간 고려는 거란, 송나라와 실리 외교를 펼치며 전쟁을 방지했고 북방의 군사력을 ..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큰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시기는 삼국시대 그중 고구려의 역사다. 지금은 우리 영토가 아닌 만주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여러 북방 민족과의 대결과 전쟁을 통해 나라의 영역을 넓혔고 만주 일대를 장악한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했다. 고구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수나라와 당나라까지 강력한 중국 통일 왕조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주성을 잃지 않았고 굴복하지 않았다. 이에 고구려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지속적으로 받았지만, 이를 이겨내고 강국의 입지를 단단히 했다. 이를 바탕으로 고구려는 자주적이 외교와 활발한 대외 교류를 했고 주변 북방 민족들을 아우르는 제국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구려가 668년 나. 당 연합군에 멸망한 이후 만주 지역은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