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70주년 특집으로 4주간에 거쳐 당시의 상황을 조명한 역사저널 그날 266회에서는 중국군의 본격 개입 이후 전황과 정전협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했던 당시 국제정세와 이해 당사국들의 상황도 살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한 전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고 낙동강 전선에서의 치열한 대치와 세계 전쟁사에 남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한 반전, 이후 1950년 10월 중국군의 대규모 참전으로 인한 재반전의 과정을 거쳤다. 중국군의 참전 이후 전황은 유엔군과 국군에 급격히 불리해졌다. 한때 3.8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렀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국군을 전력을 과소평가했..
6.25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해 6.25 한국전쟁을 재조명하고 있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263회 전쟁 개전 전 상황을 살펴본데 이어 개전 이후 서울 함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의 참전, 서울 함락과 낙동강 전선에서의 치열한 접전,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까지 과정을 전쟁 초기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은 치밀한 준비 끝에 우리의 방심을 틈타 38선을 넘어 전면 남침을 감행했다. 우리 군은 대비가 부족했고 전선의 상황을 개전 초기부터 크게 불리했다. 특히, 소련제 신형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세에 우리 군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우리 군에는 탱크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가 없었다. 탱크의 위력 앞에 군의 방어선을 속절없이 무너졌다. 북한군은 38선 방어선을 넘어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