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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70주년 특집으로 4주간에 거쳐 당시의 상황을 조명한 역사저널 그날 266회에서는 중국군의 본격 개입 이후 전황과 정전협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했던 당시 국제정세와 이해 당사국들의 상황도 살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한 전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고 낙동강 전선에서의 치열한 대치와 세계 전쟁사에 남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한 반전, 이후 1950년 10월 중국군의 대규모 참전으로 인한 재반전의 과정을 거쳤다. 

중국군의 참전 이후 전황은 유엔군과 국군에 급격히 불리해졌다. 한때 3.8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렀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국군을 전력을 과소평가했고 중국군 참전 이후 달라진 전쟁 상황에 대응하지 못했다. 중국군의 총 공세에 밀린 국군과 유엔군은 남쪽으로 철수를 단행했다. 1950년 흥남철수에 이어 1951 1월 1.4후퇴까지 국군과 유엔군을 서울을 다시 내주고 전열을 정비했다. 이후 총공세로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유엔군은 계속 북으로 진격하여 3.8선을 다시 넘어 중국군, 북한군과 대치했다. 

이후 전황은 3.8선을 중심으로 일진일퇴의 공방으로 이어졌고 장기화됐다. 전쟁의 장기화는 전쟁 참전국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어느 한쪽이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전황은 당사국들의 입장 변화를 불러왔다. 유엔군의 중심 미국 역시 반전 여론이 강하게 일기 시작했고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김일성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전쟁 장기화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의 시각은 정전 협상으로 연결됐다. 1951년 7월부터 북한 점령지역인 개성에서 정전 협상이 시작됐다. 하지만 협상은 여러 문제로 진전되지 않았다. 소련의 태도가 큰 변수였다.  

 

 



소련은 미군의 전력이 한반도에 묶여 있는 상황이 그들에게 유리하다 여겼다. 이는 유럽과 다른 제3세계에서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 확산을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고 그들의 잠재적 라이벌인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소련의 미온적 태도는 본격적인 정전 협상에 큰 장애물이 되었다. 여기에 협상의 의제와 관련한 이견도 컸다. 가장 큰 문제는 포로 송환이었다. 

당시 공산군 포로의 숫자는 15만여 명에 이르렀고 북한군에 억류된 포로의 숫자는 1만 명을 넘는 수준이었다. 북한측은 모든 포로의 무조건 송환을 주장했지만, 유엔군 측은 1 : 1 교환 원칙을 주장했다 이에 더해 포로 자유의사를 존중하여 송환 결정을 할 것으로 함께 주장했다. 

북한측은 향후 군대의 자원이 될 수 있는 다수 포로 송환이 군사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고 유엔군 측은 이를 방치할 수 없었다. 또한 공산군 포로 상당수는 남한지역에서 북한군에 강제 징집당한 병사들이었고 포로수용소에서 자유 민주주의 교육을 통해 이에 동화된 반공 포로도 많았다. 

실제 북송에 반대하는 포로의 숫자는 10만 명에 육박했다. 이 반공포로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포로 송환을 놓고 벌이는 대치 상황은 급기야 거제 포로수용소 미군 수용소 소장의 납치 사건까지 연결됐다. 공산진영 포로들은 이를 빌미로 자유민주주의 교육 중단을 요구하는 등 미군을 압박했다. 이후 미군 수용소 소장이 풀려나긴 했지만, 포로수용소에서는 공산진영 포로들이 주도하는 폭력, 소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으로 수백 회에 이르는 정전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도  전쟁은 국지적 양상으로 지속됐다. 특히,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접경지를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보다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기 위한 고지전이 계속됐다. 

백마고지 전투는 고지전을 대표하는 전투였다. 중요한 요충지인 철원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백마고지는 국군 9사단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 고지를 공격하기 위해 중국군은 최정예 여단을 투입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시작한 전투는 15일까지 12일간 쉼 없이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7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뒤바뀌었다. 치열한 전투인 만큼 인명 피해도 극심했다. 

중국군은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국군 역시 3,500여 명의 사상자가 있었다. 양측 합계 수십만 발의 폭탄이 고지에 사용됐다. 밀고 밀리는 접전 끝에 국군은 10월 15일 중국군을 완전히 밀어내고 고지의 주인이 됐다. 애초 395 고지로 불리며 이름이 없었지만, 이 전투 이후 풀 한 포기 없는 폐허가 된 고지의 모습이 말이 누워잇는 모습과 같다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됐다. 백마고지 전투는 우리 군의 전투력과 우수성을 알리는 중요한 전투였다.  

이렇게 정전협상 과정에서도  3.8선을 중심으로 한 전투는 한치의 양보가 없었다. 이런 소모전은 양측의 정전 의지를 더 강하게 했다. 마침 소련의 절대 권력자 스탈린이 1953년 3월 사망하고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6.25 한국전쟁의 종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아이젠하워가 당선되면서 정전 협상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결국, 2년이 넘는 세계 역사상 가장 긴 정접협상 끝에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고 양측 수백만의 사상자를 낸 비극적인 전쟁은 종결이 아닌 멈춤 상대로 휴전상태가 됐다. 

 

이 마지막 과정에서도 중요한 변수가 있었다. 애초 정전에 강한 반대를 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자체적인 북진을 주장하는가 하면 미국에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청했다. 미국은 이에 난색을 보였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거제 포로수용소 내 반공포로 2만여명을 자신의 직권으로 해방하여 탈출시키는 초 강수로 맞섰다. 이는 정전협상의 틀을 깨는 일이 될 수 있었다. 미국은 이에 강한 불만을 보였고 이승만 대통령 퇴출을 비밀리에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상황에서 대안이 없었다. 미국은 이승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한편, 대 중국 유화책을 병행하며 협상을 진전시켰다. 그 결과는 불안전한 평화체제의 시작이었다. 

이후 대한민국은 미국의 안보적 보호 아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을 함께 이룬 보기드문 사례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으로 발전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6.25 전쟁과정에서 미국에 넘어간 전시작전권을 여전히 회수되지 못했고 이는 대한민국이 자주국가로 발전하는 데 있어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정전협정 당시 대한민국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였지만, 협정의 당사자로 포함되지 못했다. 정전협정은 미국이 대표하는 유엔군과 북한군, 중국군이 당사자로 참여했다. 이 역시  대한민국에게는 큰 아픔 중 하나였다. 

6.25 한국전쟁은 우리민족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비극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진영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양측이 강하게 대립하는 냉전체제 속에 한반도는 두 체제가 대결하는 대리전의 장소가 됐다. 여기에 김일성의 오판이 더해져 같은 민족을 죽이는 참혹한 전쟁이 3년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폐허속에서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부흥을 이뤄냈고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발전했지만, 100만명이 넘는 군인들이 대치하는 휴전 상태는 변함이 없다.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냉전체제는 사라졌지만, 한반도는 그 유산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를 평화체제로 바꾸려는 시도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등의 복합적으로 얽히며 해법을 찾지 못한채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이산가족들 중 가족을 찾지 못한 이들의 상당수는 세상을 떠났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눈물도 말랐다. 

이렇게 6.25 한국전쟁은 아픔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고 전쟁도 엄밀하 말해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제 이런 아픔의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전쟁은 어떠한 명분과 이유로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또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있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요즘이다. 그렇기에 6.25 한국전쟁 70주년은 코로나 사태라는 엄중한 현실속에서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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