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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렸던 2018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경기는 남자 축구였다. 손흥민을 비롯한 월드컵 멤버 상당수가 대표팀에 포함되기도 했고 예선전 부진을 딛고 극적 승부를 이어가며 금메달에 이른 스토리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상당수 축구 팬들이 염원했던 국가대표 에이스 손흥민의 군 면제 혜택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또 한 팀이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동안 아시아축구에서조차 변방에 머물렀던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이 부임한 이후 놀라운 발전을 보였다. 특히 23세 이하 레벨에서는 아시아에서 상위 클래스에 올라서는 성과를 보였다. 지난 아시안게임에서도 베트남은 4강 진출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 비록, 4강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에 패했고 동메달 놓고 대결한 3.4위전마저 패하며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기대 크게 뛰어넘는 성과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런 베트남 축구팀의 성과는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대한민국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룰 당시 코치로서 지금도 국민적 영웅으로 남아있는 히딩크와 함께 했던 박항서 감독은 거의 20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감독으로서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박항서 감독은 2002년 월드컵 이후 국내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며 지도자로서 순탄한 길을 걸을 것으로 보였다.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끌었었다는 이력은 분명 큰 훈장이었다. 하지만 월드컵 멤버 상당수를 포함하고도 당시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4강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겪었다. 이후 박항서 감독은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고 이후 대표팀과는 멀어졌다. 

이후 그는 프로팀 코치와 감독 등을 역임했지만, 얼마 안가 경질되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그는 우리 축구계에서 비 주류로 자리하게 됐다. 여전히 인맥과 학연, 지연이 크게 작용하는 우리 축구계의 현실에도 박항서 감독은 점점 소외되었다. 베트남 대표팀을 맡기 직전 그의 위치는 프로 3부 리그 감독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말을 아꼈지만, 그의 타협을 거부하는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의 우리 축구계의 현실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박항서 감독에서 베트남행은 지도자로서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도 밝혔지만, 우리나라에서 박항서 감독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마침 베트남 감독이라는 기회가 왔고 박항서 감독은 그 기회를 받아들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보다 훨씬 수준이 떨어진다고 여겼던 동남아 팀의 대표팀 감독 자리로 간다는 건 지도자로서 커리어의 퇴보를 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에게는 기회가 더 소중했다. 

박항서 감독을 원한 베트남의 사정도 절박했다. 베트남의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 국가지만 개방정책을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중이고 현재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은 젊은 층 인구 비율이 높게 높고 앞으로 성장 가능성도 기대되는 역동적인 나라다. 베트남의 이런 국민적인 에너지를 하나로 모을 수단이 필요했고 베트남에서 최고 인구 구기 종목인 축구는 그에 부합했다. 

하지만 베트남의 축구 수준은 크게 떨어져 있었다. 베트남은 유망주들을 유럽 등지로 조기 유학을 보내는 등 국가 차원에서 축구에 투자했고 다수의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노력을 했지만, 동남아시아에서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베트남은 팀의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지도자가 필요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기적과도 같은 4강 신화를 이루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박항서 감독의 이력은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아시아 축구의 강국은 대한민국의 감독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물론, 내부적인 우려도 있었다. 유럽이나 남미의 지도자를 영입하자는 의견도 상당했다. 박항서 감독이 최근 큰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도 이런 우려의 근거였다. 

베트남으로서도 박항서 감독으로서도 도박에 가까운 만남이었지만, 이 만남은 현재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박항서 감독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현지 상황에 따른 맞춤형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는 원팀을 강조하고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지만, 한없이 자상하고 세심한 아버지 리더십도 함께 보여주었다. 또한, 열린 마음으로 선수들 존중했고 그들에게 국가대표로서의 자존감을 높이도록 했다. 예를 들어 그가 축구 경기전 베트남 국가가 울려 퍼지는 과정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예의를 갖추는 장면은 베트남 국민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원 팀으로 거듭난 베트남은 동남아는 물론이고 아시아 레벌에서도 단기간에 큰 성과를 보여주었다. 베트남 축구 대표팀의 선전은 베트남 국민들의 엄청난 성원을 불러왔고 박항서 감독에 대한 인기를 높였다. 현재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은 신드롬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큰 성원을 받고 있다. 단순히 대표팀 감독을 떠나 베트남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에 대한 지지와 존경심은 베트남 국민들에게 절대적이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 이상이다. 

우리나라에서 비주류에 머물렀던 박항서 감독에게 베트남은 제2의 축구 인생을 열어준 곳이 됐다.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와 함께 했던 시간에 히딩크로부터 체득한 리더십과 지도자로서의 다양한 경험, 마지막 기회를 잡아야 하는 절실함과 강한 승부욕이 대표팀의 발전을 갈망하는 베트남과 결합해 큰 시너지 효과를 냈다. 

물론, 이런 성과에 따른 훨씬 커진 관심과 기대는 그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제 박항서 감독은 23세 이후 레벨을 넘어 성인 대표팀에서도 성과를 내야 한다. 분명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당장 동남아 지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가 대항전에서 결과가 중요해졌다. 여전히 그는 베트남 국민들의 성원과 지지를 받고 있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 여론이 금세 싸늘해질 수 있다. 이는 우리 축구대표팀과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스포트라이트에서는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에서의 성공 신화를 국.내외 취재를 통해 차분히 재조명했다. 그가 어떻게 베트남에서 성공한 이유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성공 신회가 아직 현재 진행형임도 보여주었다.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에서의 입지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 박항서 감독의 행보는 베트남의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그에게는 쌀딩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에게는 베트남에서 도전해야 할 과제가 많고 해야 할 일이 많다. 어쩌면 박항서 감독은 이제는 누구를 빗대어 만들어진 별명이 아닌 자신만의 축구 철학을 인정받고 싶을지도 모른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의 축구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성공 스토리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지후니 74 (youlsim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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