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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60일 지정 생존자가 8월 20일 16부로 막을 내렸다. 이 드라마는 미국 드라마와 같이 국회의사당 테러로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각료들과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사망하고 대통령 유고시 승계 순위 말단에 있었던 환경부 장관 박무진이 권한대행이 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채웠다. 미국 원작에서는 권한대행이 전 대통령의 임기를 대신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에 근거해 60일간의 권한대행 기간으로 설정했다. 

그 시작은 분명 파격적이었다. 미드를 이미 접한 이들도 있겠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 테레로 희생되는 설정은 이전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 테러 이후 생존한 유일한 국무 위원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은 행정관료의 경험은 있지만, 정치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다. 행정관료 경험도 학자로서 연구자로서 활동했단 탓에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환경 전문가로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정책에 반대하다 해임을 통보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행정절차가 마무리되기 전 테러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박무진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대내외의 현안들을 극복해야 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테러 세력들과 맛서야 했다. 정치적으로 상황은 어려웠다. 그를 뒷받침할 정치 세력은 없었고 사망한 대통령과 대척점에 있었던 야당 의원들이 대부분 테러를 피하면서 국회는 반대 세력들로 가득한 상황이다. 그와 권한 대행 업무를 함께 할 청와대 보좌진들도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언론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던 박무진에게는 매일매일이 전쟁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관리자로서 대통령 보궐선거까지만 자리를 지키는 것도 버거웠던 박무진이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았고 정치적 야망도 없었던 점이 오히려 그가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그는 테러 사건을 수사하는 한 편, 민감한 현안에서도 과감한 의사결정을 하면서 이를 극복했다. 그 과정에서 박무진은 점점 정치인 박무진으로 성장했다. 그와 함께 박무진은 그가 원하지 않았지만,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테러 사건이 정치인 박무진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박무진은 시간이 흐르면서 테러에 대한 수사와 함께 국정 수행능력을 보이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차기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그의 어설프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국정 운영은 국민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박무진 역시 변화한 환경을 두려워하기보다 이를 극복하고 스스로 자신의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고비는 있었다. 테러 세력들의 추가 테러 위협은 계속됐고 그들과 연결된 내부 공모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게 전개됐다. 군부의 쿠데타 위기도 넘어서야 했다. 박무진 역시 암살의 위험을 가까스로 넘겨야 했다. 그와 대권 경쟁을 해야 할 노련한 정치인들과의 대립도 해결해야 했다. 박무진은 이 위기를 넘어 대권에 성큼 다가섰다. 박무진은 대통령 권한 대행을 사퇴하고 대권 레이스에 뛰어든다면 누구보다 유리한 선거가 가능했다. 

박무진은 테러를 극복하고 국정운영에서 성과도 있었다. 때묻지 않은 신선함도 그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박무진은 스스로 대권 레이스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 퇴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테레로 사망한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테러의 중요 배후자임이 드러난 상황에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전 비서실장은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기 힘든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꼈고 테러 세력들과 손을 잡았다. 그는 박무진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박무진은 자신의 의도와 달리 게임의 중요한 말이 되어 있었다. 

박무진은 이런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권한대행 기간의 업적을 발판으로 대권 레이스를 이어갈 수 있었고 테러의 배후를 밝히고 이 또한 자신의 치적으로 삼을 수도 있었지만, 권력에 대한 의지를 스스로 포기했다. 박무진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는 과정을 관리했고 그 소임을 다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인이었고 그들 편에서 정치를 하고 싶었다. 그 기회도 충분했다. 남은 깎아 내리고 어떻게 해서든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정치의 기본 원리에 그는 충실하지 않았다. 박무진은 자신의 대권 포기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원했다. 

수년의 시간이 흐른 후 박무진의 과거 대통령 권한대행 시설 보좌관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걸을 것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박무진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후광을 잃었고 어느 정당의 힘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 되어야 하지만, 더 강한 의지로 다음을 기약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나나라를 만들어가는 결말을 기대했던 상당수 시청자들에게는 아쉬운 결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박무진과 같은 정치인을 현실에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어쩌면 더 아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 정치는 민주주의 발전과는 동떨어지는 모습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의회에서의 토론과 토의는 볼 수 없고 극한의 대립만 보여주었다. 잠깐 자정 노력이 있어도 선거가 지나면 없던 일이 되었다. 

정치인들의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하지만, 그들의 특권을 버리지 못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만 한다. 박무진과 같이 나라를 위해 진정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있고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은 정치판에 오염되어 변질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판에서 버티지 못하거나 거대한 힘에 의해 밀려나는 것이 우리 정치 현실이다. 

국민들 역시 국민의 편에서 일하는 착한 정치인을 갈망하지만, 막상 선거가 되면 학연, 지연, 힘의 논리에 순응하며 투표권을 행사하곤 한다.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정치인이 설자리를 국민들이 좁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지정 생존자의 주인공 박무진은 이상적인 정치인이지만, 드라마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정치인이다. 아직은 착한 정치가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성공하기는 어렵다. 

드라마 지정 생존자는 미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고 그 틀에 따라 스토리를 전개한 탓에 곳곳에서 어색함이 보인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박무진이라는 인물을 응원했다. 아마도 박무진과 같은 정치인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런 시청자들의 바람과 달리 박무진을 최후의 승자로 만들지 않았다. 이는 우리 정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무진과 같은 착한 정치의 성공은 결국, 국민들의 선택과 지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드라마 지정 생존자는 정치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사진 : 드라마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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