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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은 동해바다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 항구라 할 수 있는 거진항을 품고 있다. 북한과의 접경지인 탓에 항상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금강산 관광이 활발히 이어지던 시기에는 그 위치 탓에 생각지도 않았던 특수를 누리기도 했었다. 지역 특성에 맞는 통일 전망대 등의 안보 관광지가 있고 한적한 다른 동해안보다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덜한 탓에 한적한 바다 풍경을 찾는 이들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69회에서는 강원도 고성의 이런저런 모습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동해바다 해안가를 따라 놓인 7번 국도를 따라 멋진 동해바다의 풍경을 바라보며 시작한 여정은 봄 햇살 아래 평화로운 풍경이 있는 거진항으로 향했다. 

거진항에서는 이른 아침에도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는 어선들이 분주했다. 그 어선에서 내려진 바다의 수확물들은 곧바로 부두에서 경매되고 어시장으로 향했다. 거대한 문어와 동해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생선들은 봄 햇살과 만나 더 반짝이고 항구를 활기차게 해주었다. 코로나 사태로 여파로 찾는 이가 줄어들긴 했지만, 어시장 상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항구의 이모저모를 살피다 해녀 복장을 한 이들이 타고 있는 작은 어선 하나가 항구로 들어오는 장면을 만났다. 어선에는 이채롭게도 해남이라 불리는 어르신과 배우자가 함께하고 있었다. 제주에서 어려서부터 해녀 일을 하던 어머니는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던 남편을 만나 고성으로 오게 됐다고 한다. 어머니는 어릴 적 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함에도 해녀 일을 결혼 이후에도 지속했다. 이런 아내가 걱정된 남편은 스스로 해남이 되어 아내와 함께 일을 했고 60을 넘은 나이에도 그 일을 계속했다. 지금도 두 부부는 망망대해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해남과 해녀로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함께 하는 그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항구의 북점임을 벗어나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인근 마을을 찾았다. 그 마을에는 특이하게도 우물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그 우물들은 마르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이 물을 보다 편안하게 쓸 수 있도록 했다. 고성에도 만날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마을 길을 따라가다 거진항의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주민을 만났다. 그 주민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각종 운동기기를 작은 공터에 놓고 매일 운동을 한다고 했다. 흔히 우리가 접하는 헬스장의 시설과는 비교할 수없이 투박하고 허술해 보이기도 했지만,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오래된 마을과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핸드메이드 헬스장이라 할 수 있는 이색적인 헬스장이었지만, 탁 트인동해바다의 풍경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어 어떤 헬스장에서도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있었다. 

다시 바쁜 발걸음을 이어가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는 막국수집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 막국수집은 2대째 이어지고 있었는데 과거의 방식을 최대한 유지하며 그 맛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육수로 하는 이북식 막국수는 다른 막국수와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 이 가게를 연 시어머니의 비법은 며느리에게 전해졌고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그 막국수에는 남북 분단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북한의 고향을 가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아픔이 함께 담겨있었다. 대신 시어머니는 고향을 맛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가 즐거웠을 것이다.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이 막국수 집을 찾는 단골들이 있어 2대째 이 막국수집을 지키고 있는 며느리는 남다른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정은 고성의 명소 화진포에서 잠시 쉼표를 찍었다. 화진포는 바다와 접해있는 호수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풍경과 만날 수 있다. 과거 38도선으로 남북이 분단되고 각자의 정부가 들어섰을 때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별장이 이 화진포에 자리했을 정도로 화진포의 풍경은 뛰어났다. 지금의 두 별장은 이곳에 자리해 우리 현대사의 유적으로 남아있다. 

화진포의 풍경을 뒤로하고 남북 분단의 현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장소로 향했다. 북으로 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다 작은 슈퍼를 만났다. 이 슈퍼는 민통선에 인접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단에 자리한 슈퍼였다. 이제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된 편의점과 같이 세련된 인테리어도 아니고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낡고 조금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 슈퍼는 금강산 관광이 지속하던 시절 금강산 여행자들이 마지막으로 들를 수 있는 슈퍼로 알려지며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했다. 그 주변의 식당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악하되고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활기를 띠었던 모습은 사라졌다. 주변의 식당들도 상당수 문을 닫았다. 이 슈퍼 역시 어려움이 있지만, 마을 주민들을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슈퍼의 사장님은 북한에 고향을 두고 통일이 되면 그 고향에 최대한 빨리 가고 싶어 하는 일념으로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이 슈퍼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함께하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을 접고 고성의 바닷가로 향했다.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봄 햇살 아래 피크닉을 즐기는 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피크닉 세트를 제공하는 작은 카페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카페는 젊은 신혼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고성의 바다 풍경이 좋아 도시생활을 접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떠나기만 하는 시골에서 보기 드문 젊은 부부였다. 이들은 그동안 여행을 통해 수집한 다양한 피크닉 가방을 손님들에게 제공하며 그들이 바닷가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쉽지 않은 귀촌을 선택한 부부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고성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600년 전통의 한옥과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는 왕곡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한 전통마을과 달리 북방식 가옥의 형태가 곳곳에 남아있었다. 근현대사의 폭풍 같은 흐름 속에서도이 마을은 파괴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마을에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그 마을에서 수십 년간 한과를 만들어온 할머니를 만났다. 그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 막막함 속에 할머니를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한과를 만들어 팔았다. 그렇게 만들게 된 한과는 생계를 이어가는 중요한 수단이 됐고 이제는 삶의 여유가 생겼지만, 8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 일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한과는 그 할머니의 인생 그 자체였다. 수십 년의 내공이 담긴 한과는 그래서 더 특별해 보였다. 

이렇게 강원도 고성은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어려 풍경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과거와 현대를 이어가는 풍경과 유적들이 남아있었다. 강원도 고성이 북한과 접한 한적한 시골 어촌마을로만 남지 말고 남북 관계가 다시 개선되고 남북이 교류하는 가장 접점에서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가 가득한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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