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하면 산의로 둘러싸여 있는 오지로 인식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정선의 이미지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떠올린다. 많은 이들은 과거 80년대와 90년대 석탄산업의 중심지로 많은 광산이 있었다는 사실과 지금은 동강이 흐르는 관광지라는 교과서적이고 단편적인 부분만을 정선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선에는 과거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71회에서는 강원도 정선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이웃들을 만났다.
동강의 흐르는 멋진 전망대에서 시작한 여정은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며 정선 읍내로 향했다. 발걸음을 하던 중 오래되고 빛바랜 간판이 있는 쌀가게 앞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그 할머니는 1966년 개업한 이 가게를 지켜가고 있었다. 시설은 낡고 찾는 이들도 많이 줄었지만, 이 가게는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으로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또 한 가지 해마다 봄이면 이 가게 처마 밑에 둥지를 만들고 함께 살아가는 제비가 있어 할머니는 외롭지 않아 보였다. 가게를 찾는 이웃들과 이제는 식구와 같은 제비들까지 할머니의 삶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훈훈한 마음을 안고 정선 읍내 안으로 향했다. 마을에 수호신처럼 자리 잡은 600년 된 뽕나무가 있었다. 모든 풍파를 겪었을 이 나무는 당당히 그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뽕나무 옆에 오래된 고택이 함께 세월을 견뎌가고 있었는데 그 고택은 지역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었고 제주 고씨 20대손의 주인이 고택을 지켜가고 있었다.
이 고택을 지키는 부부는 과거 이 프로그램에서 서울 삼양동 편을 방송할 때 젊은 시절 뉴질랜드에서 우리나라에 파견된 이후 소외되고 오래인 이웃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외국인 신분 안광훈 신부의 소개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했다. 안광훈 신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부임한 곳이 정선이었다. 프로그램과 연결된 인연이 반가운 장면이었다. 이 고택은 소박하지만 넓은 마당과 함께 평온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기도 했다.
고택을 떠나 정선의 명물 일병 콧등 치기 메밀국수집에 다다랐다. 온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이 식당은 산지에서도 잘 자라 과거 이 지역민들의 주식이었던 메밀을 정성스럽게 반죽해 만든 메밀국수가 주메뉴였다. 이 국수의 면이 쫀득하고 탄력이 좋아 먹을 때 콧등을 칠 정도라 하여 콧등 치기 국수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한다. 정선의 자연환경과 사람의 정성이 더해진 맛은 특별함이 있었다.
발걸음은 읍내를 벗어나 농촌의 풍경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소가 끄는 쟁기로 밭을 가는 모습은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을 따라 걷다가 한 폐광산에 이르렀다. 이 광산은 흔히 생각하는 폐광산의 서늘하고 을시년스로운 모습이 아닌 잘 정리된 새로운 문화의 공간이었다.
삼탄아트마인이라 불리는 이곳은 2001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폐광산의 과거 모습을 유지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그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고 폐광산을 테마로 한 전시물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시설 한 편에 보관된 과거 광산의 서류들 중 1983년 지급된 급여명세서는 광산 근로자분들의 치열하고 고단한 삶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총액 30만원 정도의 급여명세서에는 각종 수당들로 채워져 있었다. 사고의 위험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수백 미터 깊이의 갱도로 향했을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힘들고 거친 삶을 살아갔을 이들의 삶이 녹아있어 다소 무거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이곳은 우리 고도성장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이기도 했다. 한때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관광지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대부분 광산이 폐광되었지만, 광산 근로자들의 삶은 2대, 3대로 이어져 정선에 뿌리내려 있었다. 석탄산업이 구조조정되고 광산이 폐광되는 상황에 많은 이들이 정선을 떠났지만, 정선을 지키고 새롭게 바꿔가려는 이들이 있었다. 고한읍의 한마을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합심하여 마을 호텔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여행지를 만들어냈다.
이 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여러 집이 연결된 공간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마을의 지키는 주민들의 대부분 광산 근로자였던 아버지들의 후손들로 과거의 기억을 현재와 연결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었다. 그곳을 찾았을 때 마을 주민들은 지역 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야생화에 착안해 LED 들꽃들을 동네 곳곳에 배치해 마을을 보다 생기있게 하고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을 새롭게 창조해 내는 마을 주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응원하게 하는 장면들이었다.
여정의 막바지 동강변을 걷다 바위 절벽 사이에 핀 할미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토종의 동강 할미꽃은 바위틈에서 그 꽃을 피우는데 그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이를 이겨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삶이 응축되어 있었다. 동강 할미꽃과 함께 걷다 한 한옥집에 이르렀다. 이 한옥집은 숙박시설과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팔순의 할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이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남다른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가난한 집에 시집온 이후 눈이 안 보이고 거동마저 불편한 시어머니와 자녀들을 돌보는 사이 자신의 청춘이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삶을 원망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 결과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힘들고 지칠 때면 주변 강을 산책했고 그곳에서 수석들을 하나 둘 모았다. 지금은 그 수석들로 집 한편에 전시실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 할머니에게 정선의 자연은 큰 위안이었다. 이 할머니의 삶은 척박한 환경에서 봄이면 꽃을 피우는 동강 할미꽃과 같았다. 그 때문인지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곤드레밥과 수제비와 비슷해 보이는 정선의 음식 감자붕생이는 더 특별했다. 할머니의 삶이 그 안에 녹아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정선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과거의 풍경들을 지키는 이들과 과거와 현재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삶이 모여 정선을 지키고 있었다. 강원도 정선은 과거를 추억하고 멋진 자연환경 속에서 힐링할 수 있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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