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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73회] 서울 동북쪽 끝 마을 공릉동에서 만난 사람들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0. 5. 2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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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함께 강원도 지역의 동네는 탐방했던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이번에는 서울 동북쪽 끝에 자리한 공릉동을 찾았다. 공릉동은 과거 서울과 춘천을 부지런히 오갔던 경춘선 열차의 서울 시작점이자 춘천에서 출발한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정거장이었다. 

1939년 개통된 경춘선 열차는 이제 공릉동을 지나지 않지만,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경춘철교에서 시작한 여정은 경춘선 철도를 새롭게 재생한 경춘선 숲길을 따라 동네 더 깊숙이 들어섰다. 이제는 기차가 차지한 공간을 사람들이 차지한 멋진 산책로가 된 경춘선 철길은 과거 도시의 유산이 긍정적으로 재생된 현장이었다. 과거 공릉동은 동네를 관통하는 경춘선 철도로 인해 한적하고 농촌 풍경으로 채워진 풍경이 많았다. 하지만 경춘선 철도가 사라지고 그 모습에 변화가 있었다. 여정은 그 변화 속에서도 이 동네를 지켜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채워졌다. 

경춘선 숲길의 좌우에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며 걷던 중 숲길의 나무와 꽃들을 돌보고 있는 장년의 남성을 만났다. 그는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거나 꽃들에 이름표를 달아주는 등 경춘선 숲길의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숨어 있었다. 그는 20여 년 전 공릉동에 터전을 마련했다. 몸이 아픈 아내를 위해 보다 더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발견한 곳이 공릉동이었다. 그는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살았지만, 3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아내와의 추억이 가득한 이 숲길을 돌보며 그 아픔을 달래고 있었다. 그에게 이 경춘선 숲길은 삶의 지탱해 주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은 자작시가 마음 한편을 가득 적셔주었다. 올봄에도 그는 경춘선 숲길의 지킴이로 하루하루는 보내고 있었다. 

이런 특별한 사연과 함께 하는 경춘선 숲길은 공롱동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공릉롱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이 경춘선 숲길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과거 동네를 관통하여 놓인 기차길은 사람들을 단절시키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 경춘선 숲길을 따라 카페나 식당이 생겼고 이는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 숲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과거 가정집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가 있어 찾아보았다. 이 카페의 젊은 사장은 과거 부모님과 함께 거주했던 집을 개조해 카페를 만들었다. 그는 서울 외각에 있어 사람들이 떠나는 곳이었던 공릉동에서 30년을 넘게 살았고 지금은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이 남아있는 집을 터전으로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고 있었다. 젊은 공릉동 토박이 사장이 운영하는 카페는 과거 동네 친구들이 찾아와 그들의 추억을 함께하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했다. 이 카페는 젊은 사장에게는 과거의 추억과 현재가 연결된 특별함이 있었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도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특별함이 녹아들어 있었다. 

카페를 지나 동네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고층의 아파트 단지를 뒤로하고 오래된 단독, 연립주택으로 채워진 골목길은 70, 80년대 우리 삶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빨간 벽돌집들을 따라가다 한 바느질 공방을  만났다. 이 공방은 삶의 터전이기 이전에 이곳 젊은 엄마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이곳은 젊은 엄마들이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함께 하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마침 이곳에서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할 면 마스크 제작이 한창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가뜩이나 사람들 간 교류가 단절되는 현실에서 공릉동의 바느질 공방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공릉동에서는 이곳 외에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모임이 곳곳에 있다고 했다. 사막한 도시의 삶 속에서 함께 정을 나누는 모습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현실로 만드는 훈훈함이 가득했다. 

봄 햇살과 같은 따뜻함을 간직하고 다시 나선 길에 과거의 우리 삶을 살필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과거 서울북부지방법원이 이전하면서 비어있는 법조 단지에 조성된 서울 생활사 박물관이 그곳이었다. 이곳에서는 과거 서민들, 즉 보통 사람들의 생활사를 한눈에 볼 있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양은 냄비와 도시락, 조리기구 들을 비롯해 우리 현대사의 단면들을 살필 수 있었다. 특히, 과거 집 앞에서 볼 수 있던 다양한 문패들은 우리 삶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과거 서민들의 역사과 함께 하는 장소는 가까운 곳에도 있었다. 동네를 걷다 만난 한 식당은 대대로 이어진 집안의 비법을 이어 칼국숫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식당 앞 장독대가 정겹게 맞이하는 이 식당은 수십 년간 살아온 집을 개조하여 식당을 만들었다고 했다. 한자리를 오랜 세월 지켜온 식당의 맛은 대를 이어 전수됐고 수십 년의 세월이 응축된 이 식당은 들깨칼국수와 보리밥은 특별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다시 동네와 연결된 경춘선 숲길을 따라가다 공릉동의 대표적 전통시장은 도깨비시장을 찾았다. 노원구에서 가장 큰 전통이라고 하는 공릉동 도깨비시장은 여느 시장과 같이 상인들의 분주한 움직임 속 다양한 먹거리와 식재료들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상인과 만났다. 그에게 이 시장 이름의 유래를 물었다. 그는 과거 1970년대 이 시장이 노점상들이 단속을 피해 금세 사라졌다 단속이 끝나며 금세 자신의 자리에서 장사를 하는 풍경이 도깨비 같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정의 생계를 위해 매일매일 불안감 속에서도 삶을 영위했던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이름이었다. 

지금 이 시장의 상인들은 다른 소상공인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착한 임대인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감면해 주는 등 상생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었다. 진행자와 만난 상인 역시 수십 년의 노점상 끝에 이 시장에 마련한 자신의 점포에서 긍지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가 모두를 힘들게 하는 지금, 도깨비시장은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시장을 벗어나 봄 햇살을 즐기며 걸었다. 그 끝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운영하는 나무 공방이 있었다. 40년 경력의 아버지는 이제 흰머리가 늘었지만, 여전히 그 공방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고 아들은 그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수십 년간 바쁜 일상 속에 살면서 아들을 살뜰히 돌보지 못한 미안함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아들에게는 엄격한 사장님이기도 했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에게 서운함보다는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일을 배워가고 있었다. 비록 말로 그 마음을 서로에게 전달하기 어려운 부자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소통의 방식이 있었다. 이 목공소의 제품들은 그래서 더 소중하고 특별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공릉동을 지키는 산 불암산에 올랐다. 불암산에는 조선 말기 명성황후에 의해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학도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 이 임자는 공릉동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망과 함께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마애불이 있었다. 이 마애불은 그 규모와 함께 우리 역사와 함께 상징물이기도 했다. 또한, 공릉동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은 느낌도 있었다. 

이렇게 공릉동에는 우리 근현대사를 함께 하는 흔적들이 남아 있고 그 흔적들은 우리의 삶과 여전히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여기에 경춘선 열차의 추억과 낭만이 녹아들어 있는 동네이기도 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바뀌었지만, 공릉동의 사람들은 봄날의 햇살 같은 따뜻함이 있었고 과거를 단절하기보다는 이어가며 새로운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공릉동에서의 시간은 그래서 더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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