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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66회]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하는 동네 공덕동, 아현동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0. 3. 2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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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66번째 여정은 서울 한강변에 자리한 마포구 공덕동, 아현동이었다. 마포는 조선시대 지방에서 사람과 물자가 서울로 향하기 위한 관문이 마포나루가 만들어지면서 그 역사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마포는 과거 배가가 드나들던 풍경이 사라지고 고층 건물과 아파트 등으로 과거의 자리가 채워졌다. 

이번 여정에서의 마포에서의 과거 추억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났다. 이른 아침 마포와 여의도를 연결하는 마포대교를 넘어서 한강의 풍경을 따라 시작된 여정은 한강공원에서 운동을 하거나 바쁘게 일상을 시작하는 에너지 넘치는 시민들과의 만남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한강변을 따라가다 진행자의 추억의 장소로 아현 중학교에서 진행자는 풋풋했던 어린 학생 시절을 다시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학교는 과거의 기억들을 묻어든 채 학생들의 움직임과 이야기들로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현 중학교를 지나 골목길을 따라 걷다 최근 영화 기생충을 촬영했던 골목의 작은 슈퍼에 다다랐다. 평범한 일상의 장소였던 이 슈퍼는 영화 속 장면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다. 40년을 한결같이 이 장소를 지키고 있었던 노부부는 사람들의 잦은 방문이 귀찮을 수도 있었지만, 사람들과의 계속된 만남을 더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기생충 영화는 평범한 일상에 긍정의 에너지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지역 주민들의 일상에 지장 생기는 등 부작용도 있고 영화 속 빈곤의 장면이 희화화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 슈퍼에서는 미디어의 순기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과거의 흔적이 오스카상 수상작 기생충의 창작의 중요한 배경이 된 아현동이지만, 지금은 재개발의 바람이 이곳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다. 오랜 골목 한편에 높게 쳐진 공사용 벽은 아현동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골목 한편에는 주민들이 사용하던 물건을 교환할 수 있는 물물 교환소가 있었다. 동네 주민에 의해 시작된 물물 교환소는 주민들이 자유롭게 지나다 필요한 물건을 가져자고 내놓으면서 지역의 명소가 됐다. 헌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에 익숙한 지금, 아현동에서는 자신의 물건은 나누는 아현동만의 색다름이 있었다. 

과거의 전통을 지키며 생업을 이어가는 이는 또 있었다. 동게 한편에 낡은 간판을 따라 들어간 곳은 두부요리 식당이었다. 이 식당에서 사장님은 청정 자연에서 자란 콩과 식재료를 수작업을 통해 두부로 만들어 그만의 두부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손이 많이 가고 고된 작업의 연속이지만, 이 식당의 사장님은 10년을 한결같이 그 일을 하면서 자신만의 비법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식당 앞 간판은 낡고 가마솥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닳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장님의 진심은 요리의 의미를 더하고 있었다. 

두부요리로 과거의 맛을 느낀 여정은 오래된 목욕탕 건물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제는 영업을 하지 않는 목욕탕은 독특한 카페로 변신해 있었다. 우뚝 솟은 벽돌 굴뚝과 외벽과 내부의 인테리어는 상당 부분 남아 있었지만,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살려 목욕탕 카페로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소였다. 

다시 골목을 걷다 수저를 이용해 장소를 알리는 지하 공장을 찾았다. 그 공장에서는 그 모습을 찾기 어려운 은 수저를 만들고 있었다. 이 공장에서는 은을 사람의 손으로 두드리고 세공작업을 그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이 공장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를 이어가는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60년 경력의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도와가며 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과거 아버지는 힘들고 배고픈 시절 생계를 위해 기술을 배웠지만, 지금은 아들과 함께 장인의 자부심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공동 작업의 모습을 흐뭇함을 가져다주었다. 

아현동을 벗어나 빌딩 숲으로 채워진 공덕동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의 공간인 서울 창업 허브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예비 창업자들의 창업과 성장, 해외 진출까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누구든 창업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외식사업을 준비하는 창업 준비자들은 비용 부담을 줄이고 수개월의 준비과정을 이곳에서 할 수 있었다. 서울창업 허브는 취업난 속에 새로운 꿈을 위한 사람들의 공간으로 순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미래를 위한 노력을 응원하며 다시 골목을 걷다. 구수한 꽈배기를 만드는 가게를 들렀다. 손수 반죽을 만들어 팔고 있는 이 가게는 40년의 세월을 이어가며 동네 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가게의 사장님은 불편하고 힘든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는 손맛이 있어야 맛있는 꽈배기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이런 정성이 깃들어 있기에 이 가게는 수십 년의 세월을 지탱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여정의 막바지 골목길을 걸어가는 할머니를 만났다. 이 할머니는 무거운 가방을 끌고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를 따라가다 보니 지역의 학교에 다다랐다. 이 할머니는 올해 89살의 나이지만, 배움을 위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만학도로 뒤늦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모진 세월 속에서 당장의 삶은 위해 공부를 할 수 없었지만, 과거 헤어진 식구들의 이름을 적고 기억하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을 이루고자 시작한 공부는 이제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할머니는 학교에서 누구보다 빨리 등교하고 학업을 위해 나머지 공부를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할머니의 열정을 응원하고자 진행자는 근처 문구 전문점에서 학용품을 구입해 전달했다. 할머니는 작은 선물에도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열정을 응원하는 이가 있다는 것에 할머니는 더 큰 힘을 얻는 것 같았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하는 시점, 1950년대부터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오래된 해장국집이 눈에 띄었다. 과거 마포에 나루터가 있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해장국집은 지역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이곳을 찾는 손님들도 대를 이어 찾는 명소였다. 시아버지에서 며느리로 그 비법이 전수된 해장국집은 직접 담은 장으로 맛을 내는 예로부터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다. 이윤보다는 맛을 지킨 이 해장국집의 전통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사람들이 잊지 않고 이곳을 찾게 하는 힘이었다. 

세계 그 어느 곳보다 급격한 변화의 시간을 보낸 서울, 그리고 마포는 지금도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그 모습을 바꾸고 있지만, 마포 공덕동과 아현동에서는 과거의 전통을 지키며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또 다른 한편에는 미래를 위한 꿈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함께 하고 있었다. 마포는 과거와 이어진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단절되지 않고 함께 공존하는 곳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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