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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신촌은 유명 대학들이 자리하고 있고 젊음과 낭만의 장소로 통한다. 과거 70, 80년대 신촌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문화와 새로운 트렌드가 만들어지고 시대의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상권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신촌은 서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번화가였다. 과거와 같지 않지만, 지금도 신촌에는 사람들이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63회에서는 그 신촌에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먼저 신촌의 전경을 살펴볼 수 있는 바람산 정상에서 여정이 시작됐다. 정상에서 바라본 신촌은 현대식 건물들과 대학교 건물이 혼재하면서 여느 도시의 모습 그 자체였고 삭막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과거 신촌에서의 낭만과 독특함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신촌에 남겨진 낭만 가득한 추억을 찾아 나섰다. 

그 시작은 신촌역 인근에서 세워져 있는 가수 김현식 동상과의 만남이었다. 1990년 32살의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김현식은 70년대와 80년대 노래로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절규하는 듯한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이제 없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곳곳에서 들려지고 있다. 그의 동상을 무심코 스쳐 지나갈 수 없는 이유였다. 

 



신촌의 이화여대 교정을 따라 이어진 발걸음은 학교 내에 자리한 작은 구두방을 향했다. 이 구두방은 1974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구두방을 지키는 사장님도 변함이 없었다. 지금은 대학생들이 특별한 날이 아니면 구두보다는 다양한 신발을 더 선호하고 쉽게 구두를 사고 수선을 하지 않는 탓에 과거의 바쁜 일상이 한가로움으로 바뀌었지만, 구두방의 사장님은 쉽게 그 구두방을 접지 못하고 있었다. 과거 대학을 떠난 졸업생들이 이 구두방을 찾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은 이 구두방을 잊지 않고 찾고 있는 이들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지금도 그는 드문드문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 구두방은 과거의 추억과 낭만을 지키는 소중한 장소였다. 

대학교 교정을 벗어나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서울시와 협업하여 취업 준비생들에게 무료로 면접 정장을 대여하는 곳에서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맞서는 젊은이들의 강한 의지를 볼 수 있었다. 한 김치찌게 식당에서는 조리 시간과 방법을 최대한 과학적으로 세팅하고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려는 젊은 운영자들의 열정과 노력과 만날 수 있었다. 

젊은이들과의 훈훈한 만남 후 다시 여정은 다시 과거의 추억과 낭만의 시간 속으로 들어섰다. 먼저 대학가 근처의 고풍스러운 원두커피 전문점을 찾았다. 그곳은 운영자가 4번 바뀌었음에도 과거의 방식 이어받아 커피를 만들어 손님에게 내주고 있었다. 빠르고 간편한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장면일 수 있었지만, 과거 신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커피 한 잔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젊은이들에게도 이곳에서의 커피 한 잔은  과거와 현대가 이어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으로 보였다. 

진한 커피향을 뒤로하고 여정은 지금은 운영하지 않고 박물관으로 변한 과거 신촌역사를 찾아 70, 80년대를 추억했다. 경의선 기차를 타고 등. 하교 출. 퇴근을 했던 이들의 추억을 이 신촌역사는 담아내고 있었다. 현대식 역사가 새워지면서 철거될 수 있었던 과거 신촌역사였지만, 지금은 우리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또한, 과거 경의선의 흔적들은 얼마간 남겨져 색다른 산책로가 되었고 연남동까지 이어져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자리하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다.  

현재와 함께 하는 과거 흔적들 찾기는 계속됐다. 과거 방식을 고집하는 수제 전병 가게는 단순한 수제 과자를 파는 곳이 아닌 추억과 낭만을 함께 파는 곳이었고 신촌에서 만난 한옥집에서는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한옥집은 이웃들과의 만남이 이어지는 장소였고 이 한옥집은 주인은 이웃들과의 나눔이 일상이었다. 그는 과거 자신의 힘들었던 학창시절에 도움을 받았던 기억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했다. 그 따뜻한 마음이 함께 하는 신촌의 한옥집은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였다. 

숨 가쁘게 이어진 여정은 끝은 68년 된 연탄 갈비집이었다.  갈비집은 6.25 한국전쟁 직후 선술집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신촌의 갈비집 명소가 되었다. 68년 전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했던 아들은 이제 80대 노인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 갈비집은 지키고 있었다. 이 갈비집은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연탄 불로갈비는 굽고 있었고 자리에 서서 먹어야 했다. 불편함이 함께 하는 곳이었지만, 팔순이 사장님이 직접 정형한 정성 가득한 갈비와 연탄불의 조합은 그 불편함을 잊게 해주었다. 이 갈비집은 신촌의 근현대사가 함께하는 장소였다. 

이렇게 신촌에는 현대화되고 변화가 계속되고 있는 속에서 과거의 추억과 낭만을 간직한 장소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장소들은 지역의 명소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과거 속에서 새로운 유행이 창조되고 공유되는 레트로 흐름이 강해지는 시점에 신촌은 70년대와 80년대 젊은이들이의 낭만과 꿈, 희망이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남만과 꿈, 희망과 함께 하는 곳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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