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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결방되었던 동네 기행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64번째 이야기로 다시 시청자들을 찾았다. 64번째 여정은 전라북도의 도시 정읍이었다. 정읍은 그 이름이 우물정에 고을읍을 이루어져 있어 샘고을로 불린다. 귀한 물이 샘솟는 풍요로운 고장이라 할 수 있다. 가을이면 단풍이 절경을 이루는 내장산을 품고 있는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번 여정에서도 늘 그러했듯  내장산 자락의 마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찾아 나섰다. 고요한 산사의 평화로운 풍경으로 시작한 여정은 정읍 원도심의 벽화마을 구미마을로 이어졌다. 이 마을은 과거 장년층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과거 일상을 담은 벽화가 봄 햇살과 어울리며 그려져 있었다. 이 마을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과거의 어느 시점에 와 있는 느낌을 주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독특함과 함께 과거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장소였다. 

구미마을에서 과거 향수를 뒤로하고 정읍의 현재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나왔다. 정읍에서 특화된 거리인 쌍화차 거리가 그곳이었다. 쌍화차 거리에서는 각종 한약재 냄새 가득한 찻집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맑고 청청한 자연과 함께 하는 내장산이 인접한 도시의 특성을 잘 살려낸 거리였다. 커피 전문점이 보편화되고 거리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현실에서 정읍의 쌍화차 거리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 거리의 한 찻집에서 밤과 은행이 가득 들어있는 쌍화차 한 잔은 이곳을 찾는 여행자에게 정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쌍화차 거리에서의 건강한 기억을 담아 발걸음은 더 속도를 냈다. 어느 동네 한 편을 지키고 있는 할아버지 악사가 눈에 띄었다. 그는 자신의 만든 톱을 악기로 하며 멋진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는 60년 동안 톱 외에도 다양한 악기를 익히고 연주하며 낭만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늙고 힘을 떨어졌지만, 자신의 연주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자신의 연주를 들여준다고 했다. 나이를 초월한 그의 음악을 향한 열정이 부러웠다. 

악사의 연주 소리를 벗 삼아 그 동네의 다양한 면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정읍의 시장을 찾았다. 정읍의 이름에서 유래한 샘고을 시장은 1914년 개장하여 1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상점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시장에서 멋진 삶을 살아가는 튀밥 가게 사장님을 만났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여러 일을 전전하며 힘든 삶을 살아왔다. 이후 튀밥 가게를 열고 30년째 이 가게를 지켜가고 있었다. 우리가 뻥튀기라고 말하는 튀밥은 지금도 남녀노소가 즐기는 간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샘물시장 사장님의 튀밥 가게의 기계도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튀밥 가게 사장님은 얼마 전부터 시인으로 또 하나의 인생을 시작했다. 자신의 작품이 실제 등단하여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삶과 시장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감성 등을 모아 지금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일상의 삶과 함께 하는 그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매력이 있었다. 그의 시집에서 어머니를 주제로 한 작품은 마음 한편을 촉촉하게 해주었다. 

시인의 감성으로 마음을 채운 여정은 시장의 팥죽 가게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 팥죽 가게는 할머니 한 분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일손을 거드는 보기 힘든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혼자서 운영하는 팥죽 가게는 여러 손님들이 찾아도 운영할 수 있었다. 진행자 역시 이 가게의 팥죽을 맛보기 위해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할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함께 하는 팥죽은 더 특별했다. 팥죽 한 그릇과 함께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견디며 살아온 할머니의 이야기 역시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왔다 

시장을 나와 정읍의 역사 유적지를 찾았다. 돌담들이 멋지게 이어진 상학마을은 지금은 그 모습을 찾기 힘든 돌담들이 수 킬로 거쳐 펼쳐져 있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돌담을 수시로 유지하고 보수하며 원형을 지켜가고 있었다. 개발의 홍수 속에 반듯한 콘크리트 담이 보편화된 요즘이지만, 이 마을은 전통의 지키는 노력을 함께 하며 돌담을 마을의 소중한 자산으로 지켜가고 있었다.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니 한 고택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고택은 신성공소라 불리는 천주교 공소였다. 과거 조선시대 말기 천주교 박해를 피하여 모인 사람들이 이 지역에 그들만의 교우촌을 형성하며 만들어진 이 공소는 초기 초가집으로 지어졌다가 한옥으로 지어져 지금까지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옥의 건물 안에 자리한 십자가는 묘한 대조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1903년 세워진 이 공소는 우리의 역사까지 가득 담은 소중한 문화유산이었다. 

역사의 중요한 장소를 떠나 여정은 지금 정읍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만남을 이어갔다. 시골 마을에서 백산자, 전통 과자를 만들고 있는 한 집을 찾았다. 이 집은 오래된 장독들이 담 넘어 가득했는데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이 집의 주인 부부는 과거 도시에서 살았지만, 몸이 아픈 어머니를 위해 이곳으로 귀촌을 했고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돌보며 이 마을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이 부부는 이 마을을 정착해 살아왔다. 아들은 과거 어머니에게 보냈던 편지를 지금고 간직하며 어머니를 추억하고 있었다. 빛바랜 편지 속 사연은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집에서 만드는 백산자는 과거 어머니가 즐겨 드시던 간식으로 그 의미가 남달랐다. 

백산자에 담긴 사연을 뒤로하고 멋진 전원주택과 함께 하는 귀촌인을 만났다. 그의 집은 집안 마루에 금강송을 세워놓은 감탄을 자아냈다. 금강송은 그 삶을 다했지만, 이 집에서 주인과 함께 하며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였다. 이 집 주인은 도시생활을 접고 이곳에 내려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집을 지었다. 여기에 매일매일 보수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황토집을 만들어 이 집을 찾는 손님들과의 사랑방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도시에서의 편리함을 버렸지만, 부지런함을 벗 삼아 전원생활을 즐기는 그에게서 편안함을 볼 수 있었다.

부지런히 마지막 여정을 향해 발걸음을 하며 만난 곳은 떡갈비 식당이었다. 이 대를 이어 40년간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품질 좋은 한우 갈비를 다지고 숯불에 구워 초벌하고 다시 구워낸 떡갈비는 만드는 과정부터 정성이 가득 담겨있었다. 과거 1대 때부터 이어진 전통을 지켜가고 있는 이 식당의 떡갈비는 이 식당의 역사가 응축된 결과물로 보였다.

이렇게 정읍에는 분주한 도시 속 삶과 달리 여유롭게 평화롭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삶이 함께하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전 담은 영상들이었지만, 온 국민들이 힘은 이 시기에 잠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장면 장면 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배우 김영철씨가 1억원의 코로나 극복 성금을 쾌척했다는 뉴스가 함께 하며 프로그램을 보는 마음도 함께 따뜻해짐을 느꼈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프로그램을 코로나 사태가 극복되고 보다 편안하게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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