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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58회] 아픔을 넘어 희망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화성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0. 1. 2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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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은 위로는 안산, 아래로는 평택, 주변에 수원과 오산을 접하고 서해바다와 만나는 도시다. 과거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디고 논밭이 많은 농촌의 풍경이 많았지만, 지금은 대형 신도시가 들어서고 공업단지가 곳곳에 자리하면서 그 풍경이 변해가고 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58회에서는 큰 변화의 흐름 속에 있는 화성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정의 시작은 논 가운데 자리한 경비행장이었다. 이곳에서는 이륙하는 경비행기는 바다가 들판이 어울리는 화성의 다채로운 풍경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른 아침의 비행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동네 탐방을 시작했다. 바닷가 어느 마을에 다다랐다. 여느 어촌 풍경과 같았지만, 마을 한 편에 수북이 쌓은 포탄 탄피가 평화로운 풍경에 맞지 않았다. 

이 마을을 과거 미군의 비행기 폭격 연습장이 있었던 매향리 어촌 마을이었다. 마을 개펄 앞에 자리한 작은 섬은 수십 년간 폭격 연습장으로 이용되었고 비행기에서 수없이 떨어진 포탄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 그 덕분에 그 섬은 그 크기가 줄었다. 개펄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도 포탄이 수시로 떨어지는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마을 개펄에서 수십 년간 굴을 캐며 살아온 노부부 역시 아픈 과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힘겨운 시간들이었지만, 그 노부부는 삶의 터전을 지켜왔다. 

 



이제 매향리의 폭격 연습장은 사라졌고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았지만, 과거 아픈 기억은 여전히 그들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이런 아픈 과거를 함께 하는 이들의 마을은 이제 마을 곳곳에 평화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진 벽화마을로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편안함을 기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안쪽에서 멋진 정원과 함께 하는 집과 마주했다. 이 정원은 전문가가 아닌 집 주인의 손길로 가꿔지고 있었다. 멋진 모양의 나무들은 주인의 정성이 가득했다. 이 집 주인은 세상을 떠난 남편의 유언에 따라 홀로 집을 지키며 정원을 만들고 유지하고 있었다. 이 집 정원에는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한 가정의 역사가 함께하고 있었다. 

화성에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곳도 있었다. 길을 걷다 만난 초가집은 일제시대 세워진 예배당이었고 했다. 지금도 이곳은 바로 옆 교회와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 이곳에는 화성지역에서 3.1 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실제 경기도 화성에서는 3.1 만세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화성시 제암리에서는 일제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어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아픈 역사도 있다.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지는 그때의 참상을 보여주는 곳으로 남아 있다. 

슬픈 역사를 지나 화성시는 최근 곳곳에 공단이 조성되고 많은 공장이 지어지고 있다. 공장지대에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리하면서 새로운 외국인 특구가 조성되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에는 각 나라의 언어로 쓰인 간판을 즐비한 상가를 볼 수 있었다. 그 외국인 거리에서 중국에서 온 조선족 부부가 운영하는 만두가게와 키스기즈스탄에서 온 3부자가 운영하는 빵 가게를 들렀다. 

이들은 고향을 떠나 한국에 정착했지만, 고향의 맛을 잊지 못했고 그 맛을 재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식당과 빵 가게를 삶의 터전으로 만들었다. 외국인 근로자들에 의한 범죄와 각종 문제들이 뉴스를 채우면서 그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큰 요즘이지만, 화성에서 만난 이들은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공업지대를 벗어나 다시 바닷가로 향한 여정은 개펄에서 흙을 모으고 있는 이와 마주했다. 그는 280년간 9대째 이어지는 가문의 도기 제작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전국에서 도기를 위한 좋은 흙을 찾아다니는 것이 일상이었고 화성의 개펄에서도 필요한 흙을 찾고 있었다. 그가 각지에서 모아온 흙은 긴 숙성시간을 거쳐 도기 제작의 원료로 이용되고 있었다. 하나의 도기가 완성되기까지 수년간의 흙 숙성시간을 포함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물건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시대에 도기 장인은 느리지만, 혼이 담긴 자신만의 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 도기들은 특별한 가공을 거치지 않고 물 흙, 소금으로 만들어지지만 윤기가 흐르고 개성 넘치는 작품들 같이 보였다. 기계가 사람들 대신할 수 있다고 하지만, 도기만큼의 사람의 정성과 숨결이 그 가치를 높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화성 내륙에 자리한 어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어시장은 과거 바다가 접해 있었지만,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물길이 끊기도 육지에 위치하게 됐다. 지금도 과거 항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어판장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단골들이 찾고 있었다. 비록,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이곳 상인들은 과거 바다가 함께 했던 기억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팔순의 할머니를 만났다. 그 할머니는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을 추억하며 드문드문 찾아오는 단골들의 방문에 위안을 삼으며 시장 한편에서 긴 세월을 견디고 또 견디고 있었다. 

그 할머니에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은 아픈 기억이지만, 아들과의 추억과 그리움은 아들을 살아가게 하는 또 다른 힘이었다. 하지만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세월이 한참 지나서도 그 아픔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할머니의 아들에 대한 그리움의 여운과 여정은 마무리됐다. 

화성에는 아픈 과거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사는 이들아 많았지만, 사람들은 그 기억에만 머물지 않고 희망을 스스로 만들며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과거는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과거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었다. 화성에서 만난 이들의 희망찬 미래를 응원해 본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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