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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57회]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담은 그릇 DDP 품은 동네에서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0. 1. 1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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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57회 여정은 우리나라 의류 유통의 중심지 동대문과 인접한 신당동이었다. 과거 아마 야구의 성지였던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에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동대문 운동장은 70~80년대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 최고 인기를 누렸던 고교야구 대회를 보기 위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세월이 흘러 주변에 의류상가가 밀집하면서 환경이 변하고 프로야구가 시작되고 야구 경기의 중심이 잠실 야구장으로 이동하면서 야구 성지로서의 기능이 퇴색되었다. 결국, 동대문 운동장에는 지역의 산업 특색과 어울리는 초 현대식 건물인 DDP가 들어섰고 동대문 운동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DDP가 들어서고 과거 동대문 운동장의 조명탑이 남아 이곳이 어떤 곳이었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최초 건립 연도가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우리 근현대사의 상징물과 같았던 동대문 운동장이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은 가진 이들도 많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DDP에 대해 전시행정의 표본이라는 비판도 상당했다. 하지만 지금 DDP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서울시의 명물이 되었다. 

 



DDP 주변에서는 최신 디자인의 제품이 전시되고 판매는 서울라이트 마켓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의류 관련 제품을 만날 수 있고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또한, 얼마 전 큰 화재가 있었던 평화시장 상인들을 위한 시장은 시장 상인들이 재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DDP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공간으로 동대문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DDP 주변에는 의류 상가와 시장, 관련 공장들이 자리하고 있다. 섬유산업이 그 힘을 잃었지만, 동대문은 저렴하면서도 최신 트렌드의 의류가 실시간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곳으로 외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동대문 의류상가와 공장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의류 원단을 수레에 실어 배달하는 수레꾼을 만났다. 그는 좁은 골목도 잘 통과할 수 있게 개조한 수레로 이른 아침부터 원단을 배달하고 있었다. 다양한 운송 수단이 활용되는 요즘이지만, 동대문 시장 주변의 골목 골목을 누비는 수레는 여전히 애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힘든 일을 하려는 이들이 줄어들면서 동대문시장의 수레꾼의 명맥을 이어가는 이들의 숫자도 크게 줄었다. 얼마 안 가 동대문 시장의 수레꾼도 과거의 기억이 되겠지만, 40년 넘는 세월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그에게서는 여전히 강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른 새벽 일을 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시장 상인들과 함께하는 수십 년 역사의 생선구이 골목은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하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과거를 기억하게 연탄구이는 시장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식당을 지킨 사장님의 마음이 함께 전해져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여정은 시장의 치열함을 벗어나 광희문을 지나 신당동으로 접어들었다. 광희문은 과거 도성에서 죽은 이의 시신이 나가는 문으로 시구문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그 주변에는 묘지와 망자를 위로하는 신당들이 많았다. 신당동이라는 명칭도 그에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신당동에는 골목골목에 옛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오래된 주택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현대식 상가 건물들로 채워진 동대문 DDP와는 크게 대조를 보였다. 대신 신당동에서는 이웃들과 새해를 맞이하는 윷놀이 풍경과 저금통을 동네 주민들과 나누는 모습에서 도시의 삭막함 대신 정겨움과 이웃 간의 정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신당동 한편에서는 80대 노부부가 운영하는 이용원이 있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오래되어 낡은 시설이었지만, 팔순의 이발사는 여전한 솜씨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부부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생계를 위해 이용원을 시작했지만, 뛰어난 기술과 성실함으로 이용원을 지켰고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생계보다는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오래된 이용원을 지키고 있었다. 이 이용원은 우리 현대사의 역사와 함께 하는 곳이었다. 

신당동에서의 여정은 이후 50년 넘은 엿 가게에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켜가며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엿을 파는 나이 든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했고 8가지 해산물을 담아 복이 가득한 완자를 맛볼 수 있는 중화요리집으로 이어졌다. 이 음식점의 사장님은 화교로 과거 화교로서의 삶이 힘들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자신이 어릴 적부터 살아온 고향과 같은 한국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해 돌아온 독특한 이력이 있었다. 지금은 신당동의 맛집으로 많이 알려지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각하게 해주었다. 

다시 돌아온 DDP에서 여정은 마무리됐다. DDP는 과거의 것을 부수고 새로 지은 공간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DDP에는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80년까지 고도성장기의 활력 넘치는 기억이 녹아 있고 그 주변은 오랜 세월 시장으로 북적이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DDP는 과거와 현재의 에너지를 모아놓은 용광로와 같다. 그리고 그 용광로 안에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평범한 이웃들의 삶이 함께하고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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