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 중 화성시 야자수 카페는 1999년 6월 30일 발생한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와 동일한 장소입니다. 당시 수련원 원장은 이 카페의 운영자로 동일인입니다. 씨랜드 화재참사는 총체적 부실이 결합된 인재로 당시 수련원에 있던 유치원생 19명, 인솔교사 1명, 레크레이션 강사 3명 등 총 23명의 소중한 생명이 사망했습니다. 이후 관련자들은 가벼운 처벌만을 받았고 사건은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참사의 가장 큰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인물이 동일한 장소에서 대형 카페를 차리고 마치 인생의 큰 걸작을 만든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당시 참사에서 희생된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입니다. 사회적 참사의 책임자가 떵떵 거리며 잘 사는 세상은 결코 정의롭다 할 수 없습니다. 글을 삭제하는 것 보다 이렇게 사실을 알리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글을 첨부했습니다.
다시 한 번 당시 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경기도 서남부에 위치한 화성시는 서해 바다의 넓은 개펄과 평야를 함께 가지고 있는 도시로 고대로부터 그 역사가 이어진 도시다. 삼국시대 화성은 삼국이 경쟁을 하던 시기 그 주인이 바뀌며 경쟁의 중심에 있었다. 백제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던 시기 화성은 백제의 영역에 있었고 이후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며 세력을 넓히던 시기에는 고구려의 영토에 포함됐다. 고구려는 당성군이라 했다. 이후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던 시기 화성은 신라 영토에 포함됐다.
신라는 이곳에 쌓았고 이를 당성이라 칭했다. 신라는 이후 당성을 당항성이라 칭했고 중국으로 가는 교역항으로 활용했다. 신라는 당항성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교류를 늘리고 나라의 힘을 더 키워나갔고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이처럼 화성은 삼국의 흥망성쇠와 함께 하는 지역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화성은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마을 주민들을 교회에 몰아넣고 무차별 총격과 방화로 일제가 무참히 학살했던 제암리 학살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업화 시기 화성은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최근에는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되어 인구 유입이 늘어났다. 지금은 신도시와 농촌, 어촌, 산업단지가 더해진 복합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3회에서는 시대별도 큰 변화를 맞이했던 도시 경기 화성시 그중에서 궁평항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찾아 이모저모를 살피고 그곳에 사는 이웃들과 함께 했다.
여정은 화성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봉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시작했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다 신라가 축조한 당성 유적지를 만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화성 일대는 신라의 중요한 요충지로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고대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며 내려온 길에 최근 조성된 화성 습지를 찾았다. 이 습지는 2002년 완공된 화성방조제로 인해 만들어진 습지였다. 방조제 완공전 개펄이었던 화성 습지는 방조제 건설과 이후 사람들의 방문을 통제했다. 사람이 간섭하지 않은 자연은 그 스스로 자정능력을 발휘해 스스로 생태계를 만들었다.
현재 화성 습지는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고 있고 주요 보호 조류인 저어새를 포함한 수많은 여름 철새가 들르는 새들의 낙원이 됐다. 지금은 사람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느낄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됐다. 거대한 방조제인 시화호가 사람들의 노력과 자연의 치유력으로 거대한 동식물의 보금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화성 습지 역시 인간에 의해 그 원형이 파괴됐다. 하지만 인간의 간섭이 없어지자 새롭게 변모한 화성 습지는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게 최선이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할 수 있는 예를 보여주는 장소였다. 그곳을 걷다 만난 동양화가의 화폭에 담긴 습지를 찾은 새들의 모습은 매우 평화롭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습지공원을 벗어나 한 어시장을 만났다. 보통 지방의 어시장은 바다와 포구를 접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어시장은 내륙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연이 있었다. 어시장의 포구는 간척 사업이 진행되면서 사라졌다. 환경의 변화가 있었지만, 어시장 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켰고 색다른 느낌의 어시장이 됐다. 어시장의 중요한 풍경 중 하나인 횟집 거리를 걷다 화성지역에서 나는 맛조개 전문 식당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맛조개는 보통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이 시기가 제철이라 했다. 부부가 운영하는 이 식당에서는 맛조개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내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보통 남편의 터전에서 식당을 차리는 일이 많지만, 이 식당은 남편이 먼 강원도에서 이곳으로 아내를 따라 식당을 차리고 운영하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온 배우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아내는 더 열심히 일해서 강원도에서 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아웅다웅하면서 하루하루를 알차게 살아가고 있는 부부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넓은 들녘의 농촌 풍경이 채워진 마을 길을 걸었다. 한 가정의 마당에서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예품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재료가 독특했다. 마치 자개공예품을 만드는 모습이었지만, 그 재료가 흔히 볼 수 있는 보리대였다. 황금색의 보리대로 만들어 맥간 공예라고 하는 이 공예품은 자개와는 다른 멋이 담겨 있었다. 고가품이었던 자개 대신 보리대를 활용한 맥간 공예는 보다 서민적이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전통 공예의 기술이 이어지는 현장이 너무 반가웠다.
다시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에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는 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이 마을을 한때 뉴스의 중심에 있었던 매향리 마을이었다. 매향리 마을은 인근 바다가 6.25 한국 전쟁 직후 미군 전투기의 사격 훈련장으로 사용되면서 수십 년 세월 폭탄의 굉음과 오발에 따른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했다. 여기에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도 잃어버렸다. 전쟁은 끝났지만, 이 마을 주민들은 긴 세월 전쟁과 같은 일상을 살아야 했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으로 마을 주민들은 희생을 강요받아야 했고 당연시됐다. 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기본적 권리를 다시 얻기 위해 긴 세월 투쟁을 이어갔고 2005년 훈련장이 사라지면서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 곳곳에서 각종 불발탄과 폭격 훈련장의 잔해가 남아있었다. 아직은 긴 세월 누적된 상처가 치유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 이름인 매향리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그 일환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매향리 인근에 군 공항 건설이 추진된다는 소식이 있어 어렵게 찾은 이 마을의 평화가 또 다른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매향리가 매화꽃 향기로 가득한 마을로 다시 돌아오길 소망하며 화성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 나섰다.
화성시 궁평항 일대의 바닷가를 찾았다. 바다 풍경을 따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과 만났다. 궁평항 일대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차박의 명소라고 했다. 멋진 바다 풍경과 서해 낙조의 낭만적인 풍경은 차박족들과 차크닉 족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차크닉을 즐기는 젊은 부부는 주변의 쓰레기를 줍는 등 자연정화 활동을 병행하며 알찬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최근 차박이 늘어나면서 그로 인한 환경파괴 등의 문제가 함께 대두되는 시점에 큰 귀감이 되는 모습이었다. 지금 즐기는 자연의 풍경은 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발휘되는 야외 레저 활동이 일상화되기를 기대하며 새로운 만남을 이어갔다.
바닷가 풍경을 따라가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야자수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야자수 카페로 지역의 명소였다. 이 카페의 사장님은 이곳에 터를 잡고 10년간 야자수를 가꿔왔다. 맞지 않은 기후로 인해 수많은 야자수 나무가 죽어가는 아픔이 있었지만, 처음 5그루로 시작한 야자수가 지금은 800그루로 늘어났다고 했다. 야외는 물론이고 온실에서 다양한 종류의 야자수가 제주도의 풍경을 옮겨온 듯 방문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는 카페 사장님 부부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의 결과물이었다. 경기도 화성에서 즐길 수 있는 열대의 느낌은 그만큼 신선하고 새롭게 느껴졌다.
여정의 끝자락에 바닷가 한편에 펼쳐진 천일염전을 만났다. 그곳에서 일에 열중인 염부를 만났다. 이 염전은 5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염전이었다.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월남한 이북민들이 조성한 염전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의 염부는 아버지가 일군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가고 있었다. 이 염전은 망향의 설움을 이겨내고 낯선 곳에서 자리를 잡은 이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 곳이었다. 이곳에 정착한 이북민들은 사람의 힘으로 제방을 쌓고 염전을 만들었다. 공생염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염전에서 나오는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하며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이 염전의 염부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이뤄낸 염전을 지키며 노년의 나이가 됐다. 염전 곳곳에서 수십 년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고되고 힘든 하루하루지만, 염부는 남다른 사명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는 송홧가루가 날리는 봄철에 나는 이곳의 천일염이 가장 맛이 좋다고 했다. 지금이 딱 그 시기였다. 그는 질 좋은 소금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얻어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공생 염전은 역사는 이어지고 있었다.
화성은 고대사부터 굴곡진 우리 근. 현대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그 역사를 쌓고 또 쌓았다. 경제발전이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던 시대에는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아픔도 있었다. 하지만 화성의 자연은 인간이 생채기를 낸 부분을 스스로 치유하며 더 풍요로운 생태계를 만들었다. 또한 화성시의 이웃들도 시대의 흐름에 상처 난 마음의 상처를 마음 가득 품고 더 밝은 미래를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화성은 역사의 현장이자 치유의 현장이기도 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문화 > 김영철의동네한바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5회] 궁예의 꿈과 좌절, 분단의 아픔이 교차하는 철원 (10) | 2021.06.06 |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4회] 낙동강 지류 유서 깊은 도시 상주에서 만난 이웃들 (17) | 2021.06.01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2회] 천년 수도 경주에서 또 다른 역사 만드는 사람들 (7) | 2021.05.19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1회] 유서 깊은 전통의 도시 경북 영주에서 만난 사람들 (12) | 2021.05.09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0회] 한결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과 만난 충남 홍성 (14) | 2021.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