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도심을 흐르는 하천 청계천은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중심부를 흐르는 하천으로 그 상징성이 매우 컸다. 조선은 왕조 초기부터 하천의 폭을 넓히고 제방을 쌓는 등 청계천을 지속 관리했었다. 영조 임금 때는 국책 사업으로 대규모 준설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요한 청계천이었지만, 일제 강점기부터 하천은 그 원형을 잃어갔다. 복개공사를 통해 하천은 그 원형이 파괴됐다. 우리 현대사의 산업화 시기 구간 전체가 복개되어 도로가 생기고 고가 도로가 건설되어 하천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인왕산 자락의 백운동 계곡에서 발원해 도심을 거쳐 중랑천으로 흘러가는 청계천은 과거 기록 속에만 남은 하천이었다. 청계천은 2000년대 들어 복원 움직임이 커졌고 2003년 청계 고가도로의 해체를 시작으로 2005년 9월까지 공사를 통해 서울 시민들과 함께 하는 하천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공사 과정에서 청계천 인근의 상인들의 이주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했고 조선시대 유물들의 복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복원의 취지가 퇴색되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장의 치적 쌓기를 위해 공기를 무리하게 앞당기면서 부실시공의 문제도 있었다.
또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하천을 정비하면서 친환경적 생태 하천이 되지 못했다. 수돗물을 끌어와 인위적으로 물을 흐르게 하면서 하천이 아닌 거대한 인공 분수와 같은 형태가 된 한계점을 노출했다. 인공 구조물인 탓에 매년 관리와 운영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도심에서 물이 흐른다는 건 큰 의미가 있었다. 인공적인 형태지만, 흐르는 물을 통해 자연 생태계가 형성되고 동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도심 속의 자연 생태계는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이 됐다. 청계천을 매개로 각종 문화, 예술 행사가 열리고 있고 청계천을 따라가는 산책로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어느덧 청계천은 서울의 명소로 자리했다. 서울시는 향후 장기 비전으로 청계천을 보다 친환경적이고 그 원형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복원 사업을 지속하기로 했고 2050년 경에는 청계천의 본래 취수원이라 할 수 있는 인왕산의 계속까지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청계천은 도시 재생의 한 예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 주변에서 그들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시민들도 다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청계천이라는 존재 속에 사람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35회에서는 청계천변 우리 이웃들을 삶과 만났다.
여정의 시작은 청계천의 시작 지점이었다. 그곳에서 젊은 관광안내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방문자들이 보다 쉽게 청계천을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그들의 안내로 서울 관광플라자를 찾아 서울의 명소와 맛집 등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청계천을 따라 걸었다. 조선시대 성곽 흔적을 뒤로하고 신당동의 골목으로 들어섰다. 좁지만 정감 있는 골목길을 지나 마을의 이곳저곳을 안내하는 그림 지도가 방문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지도의 안내를 받아 마을을 다시 살폈다. 그 길에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던 마을의 쉼터가 보였다. 그곳에서는 개미꽃밭이라 불리는 작은 꽃밭과 정원은 크지 않았지만, 아기자기하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마을 주민들을 그곳에서 함께 소통하고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곳의 주민들은 남이 아닌 가족과 같아 보였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도심 속에서 보기 드문 공간이었다.
다시 마을 안쪽을 탐방하다 한 식당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평범한 백반집으로 보였는데 특이하게도 마을 주민 등 손님들이 함께 주인의 일손을 돕고 있었다. 손님들의 손길이 더해져 식당의 반찬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식당 사장님은 과거 30여 년 전 인근 소방서 근무자들의 식사를 제공하면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쌓인 식당업의 노하우는 수십 년이 흘러 백반집으로 이어졌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성스럽게 만들어지는 반찬과 국 등은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집 밥과 같았다. 그 집 밥의 맛을 잊지 않고 과거 소방서 근무자들과 오랜 단골들이 이 식당을 찾고 있었다. 사장님에서 이 식당과 단골손님들은 힘들었던 과거 삶을 지탱해 주는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그는 지금도 그들과 정을 함께 나누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했다. 손님들은 그곳에서 과거 추억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수십 년이 인연이 쌓이고 쌓여 그 역사를 채워가는 식당이었다.
다시 청계천변으로 나왔다. 새롭게 생긴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라이딩하고 있는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과 함께 걷고 또 걸어 을지로로 향했다. 그곳에서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구거리를 따라 걸었다. 을지로는 공구거리 외에 도기나 조명가게들이 즐비한 특화된 거리가 곳곳에 있다. 최근에는 힙지로라 불리며 레트로 감성 가득한 거리들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그런 을지로에서 지금은 생소한 이름인 다방이 보였다. 예사롭지 않은 입구와 인테리어는 70, 80년 감성이 가득했다. 촌스럽다는 말도 표현되는 다방의 모습은 이제 독특함으로 그 평가가 변했고 사진 명소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로 변하게 했다. 지금은 과거를 추억하는 장년층과 새로운 감성을 만나려 하는 청년들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고 있었다. 이 다방을 지키고 있는 여성 사장님은 독신으로 40여 년 다방과 함께 했다. 이 다방에서 사장님은 시대의 흐름, 변해가는 손님들의 면면과 함께 했다.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를 외롭지 않게 했다. 이 다방을 방문하는 이들의 손글씨로 가득한 방명록은 다방의 또 다른 역사를 더 채워가고 있었다.
다방을 떠나 동대문으로 향했다. 서울의 명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찾았다. DDP는 미래지향적인 건물 디자인과 인테리어로 서울의 발전을 상징하고 있다. 건축을 하면서 발견된 조선시대 유적들과 유물은 DDP를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다만, 공사를 하기 전 일제에 의해 파괴된 성곽 유적 등 우리 역사들이 오랜 세월 땅속 깊숙이 잠들어있어야 했던 암흑의 역사에는 안타까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러 시장들이 공존하는 동대문에서 방산 시장을 찾았다. 방산시장은 인쇄, 포장지, 판촉물로 대표되는 시장이다. 그 시장 한 편에 우산 가게가 보였다. 그 우산 가게는 우산을 사는 사람들보다 수리하는 이들이 더 많이 찾고 있었다. 우산 가게의 사장님은 다양한 손님들이 가져온 우산들을 정성스럽게 수리하고 있었다. 우산은 만드는 곳마다 그 부속이 다르다. 따라서 수리를 위해 부속품을 찾기 어렵다. 사장님은 우산 부속품을 직접 만들며 수리를 하고 있었다. 천이 상하지 않으면 웬만한 우산은 수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의 실력은 각지에 알려져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서도 수리를 위해 이 가게를 찾는다고 했다. 수리를 맡기는 이들은 당장의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자신의 추억과 함께 하는 소품인 우산을 버릴 수 없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는 우산은 고장이 나면 쉽게 버려지기도 하지만, 이 가게는 우산에 새 생명력을 불어넣고 주고 있었다. 그와 함께 누군가에는 추억이 지켜지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여정의 막바지 숭인동 골목을 따라 걸었다. 접고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걷다 방충망 설치 작업이 한창인 집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할머니와 그 아들이 함께 하는 모습으로 보였지만, 이들은 마을 이웃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하기 어려운 작업을 위해 동네 전파사, 전자제품 수리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집을 방문했다. 사장님은 숭인동에서 어린 시절부터 쭉 자라고 살았다고 했다. 그는 동네 할머니들의 일에 항상 발 벗고 나서고 있었다.
그는 과거 어린 시절 그를 돌봐줬던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 힘들었던 시절 도움을 줬던 이웃들에 대한 고마움을 나름의 방법으로 보답하고 있었다. 그는 생업이 있음에도 수시로 마을 봉사활동에 나서고 동네 할머니들의 집 수리나 집안일을 도왔다. 그의 선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 댓가도 없지만, 배우자와 가족들도 그를 적극 지지하고 돕고 있었다. 그는 어려운 형편의 마을 할머니의 100세 잔치를 열어주기도 했다. 그의 계속된 선행은 이웃들로부터 그의 까무잡잡한 얼굴에서 나온 또 다른 이름 까망천사로 그를 불리게 했다. 숭인동의 까망천사는 지금도 그의 선행을 멈추지 않고 하고 있었다. 까망천사가 있는 숭인동의 마을은 마음을 훈훈함으로 채워주고 있었다.
이렇게 청계천변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다. 그 이야기는 도심의 삭막함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청계천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지만, 이웃들은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삶을 이어왔고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그렇게 채워진 일상은 청계천의 새로운 역사를 ㅏ만들어가고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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