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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종시라 부르는 세종특별자치시는 2012년 7월 1일 충청남도 연기군 전체와 공주시 일부, 충청북도 청원군의 일부를 포함하여 출범하였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로서 출범한 세종시는 중심 정부의 10부 3처 3청이 세종시의 정부청사로 이전하여 자리했다.

세종시의 건립은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충청권으로 청와대와 정부 부처를 이전하는 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하면서 시작됐다. 그 이면에는 정치적 고려도 있었지만, 수도권의 지나친 비대화와 인구 집중을 막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려는 명분이 있었다. 실제 충청권으로서 수도 이전 움직임은 197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있었다. 당시 정권에서는 외국인 행정수도 건설 사례를 참고하여 수도 이전과 관련한 계획을 마련했고 충남 공주 일원에 도시 건설을 계획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고 유신정권이 종말을 맞이하면서 그 계획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세월의 지나 충청권 행정수도가 공론화됐다.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이를 본격화했고 정부 주도로 이전을 진행했다. 또한, 신행정 수도 특별법을 제정하고 여야의 합의로 이를 국회에서 가결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이 법과 관련한 위헌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2004년 10월 서울이 수도라는 일종의 관습헌법이 존재한다는 이전 그 어디에서 없었던 희대의 관습헌법 논리를 내세워 특별법의 위헌을 결정했다.

이에 행정수도 건설은 축소되고 일부 행정부처만 이전하는 행정복합도시로 방향이 전환됐다. 이후 세종시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행정복합도시 건설마저 백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반대와 여당 내 반 이명박 세력과 충청권 정치인들의 반대 속에 백지화 시도가 무산되고 행정복합도시 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며 세종특별자치시는 부지를 확정하고 공사기간을 거쳐 그 이름을 국민 공모로 결정했고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이제 출범한지 10년을 조금 넘긴 세종시를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41회에서 찾았다. 계획도시답게 잘 정리된 도심지가 방문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도심에 자리한 넓은 호수는 멋진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세종시의 호수는 그 규모가 우리나라 최대라고 했다. 멋진 호수 풍경과 함께 하는 산책로에는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율주행차가 시범운영 중이었다. 젊은 도시다운 진보된 도시 풍경이었다. 또 한 편에서는 모래사장이 있어 바다에 가지 않고도 해변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런 공원과 함께 도심에서는 요즘 트렌드에 부합하는 코인 애견 목욕방이나 청양고추샌드위치는 만드는 가게 등 특별함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도시 풍경을 뒤로하고 세종시에 남아있는 옛 기억과 추억의 조각들을 찾아 나섰다. 과거 연기군의 농촌 마을로 향했다. 추수를 앞둔 황금색의 벼가 반겨주고 있었다. 논을 지나 오래된 정미소가 보였다. 건물 외관이나 내부의 기계 모두 옛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70년은 넘은 나이의 기계는 여전히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오랜 단골인 마을 주민들은 이 정미소에서 그들의 수확물을 고운 쌀로 바꿔가도 있었다. 현대식 시설의 정미소가 이제는 대세지만 정감 있는 이 정미소가 그 생명력을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다.

다시 오래된 집들을 양옆에 둔 골목길을 걸었다. 몇 대의 재봉틀이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 가정집이 보였다. 그곳에서 몇몇 마을 주민들이 재봉틀 작업에 열중이었다. 이곳에서는 동네 노인들의 생활복을 제작해 나눠주고 있었다. 애초 이곳에서는 코로나 초기 마스크가 귀한 시절 마스크를 제작해 나누는 것에서 시작해 지금은 재봉틀 기술을 이용해 나눔을 지속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명이 다음에서 다른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며 그 규모가 커졌다. 이웃과의 교류가 줄어들고 나날이 각박해져 가는 세태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현장이었다.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풍경을 따라 한마을로 발걸음이 향했다. 골목길에서 어느 집으로 향하는 방앗간 집을 운영하는 이웃을 만났다. 그를 따라 도착한 집에서는 전통주를 빚고 있었다. 이 집에서는 구절초를 포함해 계절마다 피는 꽃을 이용한 약주를 빗고 있었다. 집 주인분은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에 비법에 따라 술을 빚는다고 했다. 이제는 이 집의 전통주가 많이 알려져서 외부에서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 지역의 전통주가 상당수 사라진 이후 복원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는 중인데 이 집은 그 비법을 잃지 않고 이어가고 있었다. 

이 집 어머니는 남편과 큰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을 마음에 묻고 있었다. 전통주는 남편 사후 막막한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다. 지금은 꼭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이 됐다. 물론, 그 유산을 지켜가는 와중에서 남모를 가정의 아픔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렇게 빗는 약주에는 계절 꽃의 향기에 어머니 삶의 희로애락이 함께 담겨 있었다. 

또 다른 농촌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 전통 놀이에 열중인 아이들이 보였다. 나무 공을 나무 막대로 치는 장치기 놀이라고 했다. 마치 지금의 하키와 비슷한 형태의 이 놀이는 세종대왕이 했다는 문헌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마을에 자리한 개인이 운영하는 전통놀이 연구소 소장님이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 전통놀이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이를 연구했고 그 놀이를 복원하고 알리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상당수 전통놀이가 사실은 일본에서 건너온 게 많다고 했다. 그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놀이는 찾고 이를 알리는 일을 계속하려 하고 있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그의 연구소였다. 

다시 어느 마을 길을 걷다 예쁜 정원이 있는 건물이 보였다. 카페로 보이는 이 건물에는 초콜릿을 만드는 공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보통의 초콜릿이 아닌 인근 조치원의 특산물인 복숭아를 활용해 복숭아 초콜릿을 만들고 있었다. 복숭아가 수급 상황이나 여러 사정에 의해 버려지는 게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었다. 이곳에서는 안정적인 복숭아 공급을 받고 농가에서는 버려질 수 있는 복숭아를 판매할 수 있어 생산자와 재로 공급자가 서로가 윈윈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농업의 산업적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공품의 제조와 판매가 중요해진 지금, 가치 있는 일을 이곳에서 하고 있었다. 

 

옛날 TV 이미지 - 픽사베이

 



다시 가을 하늘 아래 또 다른 마을로 향했다. 길을 걷다 지금은 보기 힘든 초가지붕의 집이 보였다. 가서 보니 식당이었다. 식당 한편에는 오래된 농기구가 전시되어 있었고 마치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듯한 정겨움이 느껴졌다. 식당 사장님에서 물어보니 과거 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집은 개조해 식당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운영 중이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배운 손맛으로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과거 식당 일을 잘 안되고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성실함으로 이를 견디고 견뎠고 식당도 자리를 잡았다. 이들 아들의 곁을 어머니는 걱정 반, 기대반의 마음으로 지켰고 식당이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 일을 돕고 있었다. 이런 모자의 서로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모여 이 식당은 기분 좋은 분주함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었다. 

여정의 막바지 금강 지류의 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그 길을 지나 상가들이 자리한 한 골목에서 지금은 보기 힘든 지게를 파는 가게가 보였다. 마침 그 가게의 사장님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만든 지게를 팔고 있었는데 50년 넘게 지게를 만든 지게 장인이었다. 이 가게의 지게는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지금의 주인에게로 기술이 전수되어 그 역사가 150년에 이른다고 했다. 

최근 지게는 그 사용자가 크게 줄고 힘든 작업의 결과물에 비해 그 수익이 크께 떨어졌지만, 가게 사장님은 지게 만드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 튼튼하고 편안한 지게를 만드는 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힘들어진 생계는 그의 아내가 빗자루를 만들어 대신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가업과 전통을 이어가려는 남편의 의지를 묵묵히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이런 부부의 이해와 조화가 사라져가는 전통 지게의 명맥을 유지하게 하고 있었다. 이 지게 장인의 노력이 이 대에서 끝나기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세종시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기회의 도시다.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이행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도시다. 한발 앞선 행정의 시스템을 먼저 경험하고 시행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렇게 새롭고 발전된 모습으로 채워지는 도시의 역사지만 그 이면에는 도시화 이전의 역사과 전통도 함께 공존하고 있다. 세종시 편에서는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기억들을 다시 한번 살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와 조화롭게 공존하는 행정복합도시로 세종시가 지속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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