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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쪽 강북구에 속한 수유동은 북한산 국립공원에 접한 동네다. 수유동의 동네 지명이 북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 마을에 넘쳐 물 수자와 넘칠 유자를 더해 붙여졌다는 유래가 있을 정도로 수유동은 북한산과의  떼려해도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42회에서는 북한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유동을 찾았다. 

이른 아침 한강으로 흘러가는 지역의 하천 우이천 변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여정을 시작했다. 많은 주민들이 운동 겸 산책 겸 그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서 마라톤복 차림의 노년의 주민이 보였다 그들은 제법 쌀쌀해진 아침 기온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우이천변을 뛰고 있었다. 그들의 에너지를 받아 본격적인 동네 탐방에 나섰다. 

오래된 동네 골목길을 걷다가 그 동네와 딱 어울리는 오래된 단독주택 건물을 만났다. 멋진 홍도화 나무가 있는 정원이 인상적이었다. 정원을 살펴보니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였다. 1970년대 이 집을 구입한 주인은 이 집을 떠나지 못하고 함께 하고 있다. 50여 년간 지켜온 이 집은 3대를 넘어 이 가족의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이 집에서 유년의 추억을 쌓은 아들은 낡고 허름해진 집을 고쳐 레트로 감성 가득한 카페로 만들었다.

아들은 오래된 집은 헐고 새롭게 짓기보다는 추억을 지키고 보다 많은 이들이 이 그들의 추억의 공간과 함께 할 수도 있도록 했다. 카페의 한 편에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릴 테이프 방식의 음악 플레이어가 있었다. 과거 영화 영사기를 돌리는 듯한 이 플레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옛 감성을 자극했다. 과거의 흔적들을 새롭게 하는 게 아니라 잘 지키고 보존해 새로운 가치는 창출하는 게 중요한 흐름이 되고 있는 요즘, 이 카페는 그 흐름에 너무 잘 부합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다시 마을을 탐방하다 오래된 가게를 만났다. 지금은 보기 힘든 철물점, 만물상, 전파사를 섞어놓은 듯한 이 가게는 특별함이 있었다. 이제 80살을 훌쩍 넘긴 나이의 이 가게 사장님은 전통 방식의 인장, 도장을 만드는 기술을 지켜가고 있었다. 그의 인장 기술은 지역에서 장인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일생의 바친 일에 대한 작은 보상이 인생의 황혼기에 찾아왔다. 

이제는 컴퓨터와 기계로 만드는 게 빠르고 편리하게 느껴지고 보편적인 인장제작이지만, 그 장인이 만드는 수작업 인장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의 정성이 담겨있었다. 그 인장을 사용하는 이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를 위해 만들어진 인장을 사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귀한 기술이지만, 전통 방식의 인장제작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수적이었다. 더 많은 수익과 효율성을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장인의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며 전통의 기술을 지켜냈다. 그의 인장은 이제 예술적 경지에 올랐고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 가치도 크게 높아졌다. 장인은 그런 현실에 만족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노년에도 하루하루 인장 제작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이런 장인의 길에는 그를 응원하고 지원해 준 가족이 있었다. 가족들은 그가 제작한 인장을 높은 가격에 판매하려 할 때도 이를 만류하고 그의 작품을 지키도록 해줬다. 자신을 이해하고 가치를 인정하는 가족이 있는 한 그의 인장장인의 삶이 계속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다시 또 다른 동네 골목길을 걸었다. 그 길에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나는 식당이 있었다. 그 식당은 콩을 재료로 하는 청국장과 콩탕을 주 메뉴로 하고 있었는데 그 재료를 모두 국내 산지에서 직접 공수해 온 토종콩으로 한다고 했다. 그 토종콩은 과거 어머니 손맛에 대한 기억을 레시피로 하는 식당 사장님에 손길에 의해 청국장과 콩탕으로 변신했다. 소박하지만 고향의 식재료 고향의 맛으로 채워진 청국장과 콩탕은 평범한 속에서 특별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동네를 벗어나 지역의 명소인 북서울 꿈의 숲으로 향했다. 과거 놀이공원 자리를 자연친화적인 공원으로 조성한 북서울숲 공원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문화, 여가 공간이 부족했던 서울 북부지역의 공원으로 자리했다. 북서울 꿈의 숲은 서울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드넓은 숲과 초록의 자연이 함께 하며 서울의 공기를 지키는 허파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었다. 

그 공원길을 걷다 공원 한편에 놓은 피아노를 치는 노년의 신사를 만났다. 그는 이 숲을 수시로 찾고 있었는데 힘든 시기 이 숲은 그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편안함을 주는 곳이었다. 그는 아내의 병으로 고민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숲에서 마음의 병을 고치고 건강한 삶도 살 수 있게 됐다. 자연의 치유력이 그의 삶을 바꿨다. 오늘도 그는 이 숲과 공원을 찾아 삶의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 

북서울숲을 떠나 자연과 함께 하는 공원과 어울리는 가게를 만났다. 이 가게는 오염물 배출과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입각한 재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손님들의 다회용 리필 용기를 직접 가져와 구매한 재품을 그 용기에 채워가기도 하고 가게에서는 재활용품을 수거하기도 한다고 했다. 아직은 보편화된 형태의 가게는 아니지만, 환경오염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지구 온난화의 위협이 현실이 되는 시기에 우리 환경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소비를 이끌어내는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이런 가게들이 더 많이 우리 일상과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다. 

다시 지역의 전통 시장 골목을 걸었다. 가을과 어울리는 빨갛게 익은 고추와 제철 식재료들이 반가웠다. 전통시장에 가면 항상 만나게 되는 떡집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 떡집에서는 다양한 떡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모양이 색깔이 인상적이었다. 이 떡집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떡집을 운영하는 부부는 애초 이들을 하지 않았다. 20여 년 전 남편이 큰 병을 얻고 투명을 하는 과정에 이 떡집을 시작했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과거 어설픔을 사라지고 이제는 시장과 동네 사람들이 즐겨 찾는 떡집이 됐다. 이렇게 된 데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며 함께한 부부의 부지런함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든 일상이지만, 그만큼 더 오랜 시간 서함께 하게 된 부부는 그들의 시간을 행복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여정의 막바지 오래된 주택들이 좌우로 자리한 마을 길을 걸었다. 그 길에 마을과 함께 나이를 먹은 이용원(이발소)이 보였다. 그런데 그 이용원을 지키는 사장님은 다름 아닌 이른 아침 우이천변에서 만났던 마라톤맨이었다. 그의 이용원에는 그가 과거부터 최근까지 각종 아마추어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한 메달과 사진 등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50년 넘게 이용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마라톤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요소였다.

 

 


수시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이용원까지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를 믿고 함께 하는 아내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아내는 먼 시골에서 남편 하나만을 믿고 서울로 시집을 왔다. 초기 신혼시절에는 낯선 환경과 여의치 않은 경제사정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고향에 대한 향수병에 시달리며 눈물짓는 날도 많았지만, 과거의 일이고 추억이 됐다.

그 사이 이 부부의 이용원은 자리를 잡았고 삶도 나아졌다. 마라톤맨은 이런 아내에게 항상 감사하고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아내 칠순을 맞이해 직접 제작해 이용원 한편에 전시한 아내에 대한 감사패와 그 안에 새겨진 장문의 글은 아내에 대한 마음을 가득 담고 있었다.

굴곡지고 험난한  인생의 다리를 서로 의지하며 헤쳐나간 부부는 이제 조금의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인생의 황혼기에 생긴 여유가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 부부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고 알차게 채워가며 주연으로 살고 있었다. 이 부부의 이용원을 찾는 수십 년 단골들이 그들 삶의 조연이 되어 함께 행복으로 그들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수유동은 국립공원인 북한산과 함께 하면서 개발의 파고를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발전이 더딘 것이 서운할 수도 있지만, 대신 덜 파괴된 자연과 과거 삶의 흔적이 더 많이 유지될 수 있었다. 특색 있는 콘텐츠가 중요한 자산이 되는 요즘 시대 수유동은 어디에서 없는 독특한 스토리와 콘텐츠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수유동에 오랜 세월 터전을 잡고 살아온 이웃들은 수유동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는 지킴이라 할 수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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