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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의 서해안 최북단에 자리한 당진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으로만 바다를 접하고 있는 도시다. 당진시는 서쪽으로는 서산시, 동쪽으로는 아산시, 남쪽으로는 예산군과 접하고 있는데 북쪽으로는 바다를 경계로 평택시와 만나고 먼바다는 인천 옹진군, 경기도 화성시, 안산시와 경계를 이룬다. 그만큼 바다는 당진시와 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근. 현대사의 흐름 속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큰 개펄 지역에 간첩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바다가 육지로 다수 바뀌는 변화가 있었지만, 과거에는 밀물 때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이를 이용한 해상 교통이 더 발달했다. 이는 해상을 통한 대외 교류도 활발하게 했다. 조선 후가 서양의 배가 이 지역 바다에 출몰해 통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육상 교통이 불편한 탓에 중앙 정부의 통제가 느슨하면서 서구 문물 유입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당진 지역은 천주교가 유입되고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다. 이후 조선 정부의 강력한 천주교 탄압으로 다수의 순교자가 발생했고 지금도 당진시 일대에는 천주교 순교 성지가 존재하고 있다.

육지와 접해있지만, 내륙 깊숙이 들어온 바다로 인해 육지와 멀어졌던 도시 당진시는 조용한 지역으로 보이지만, 근. 현대사 속에서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철강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공업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등 시대 변화가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74회에서는 당진시를 찾아 이곳의 새로운 명소와 이곳을 지켜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했다.

 

 


높은 산이 없고 평야가 많은 당진시의 지형, 그 지형과 닮은 삼선산 수목원, 다양한 식물들이 공존하는 자연체험 학습장 초록의 실록 속 들꽃들 화려하지 않지만, 당진의 농촌 풍경과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본격적인 당진시 여정을 시작했다. 성곽길 따라 걷다 콩국수 거리에 닿았다. 그중 가정집인 듯 식당인 듯한 식당을 들렀다. 마침 콩국수 재료인 콩을 고르고 있는 시어머니, 며느리가 있었다. 1960년대 문을 연 이 콩국수 식당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이어지는 가업이 됐다. 며느리는 이 식당에서 26년을 시어머니와 함께 했다. 이 식당은 지역의 콩을 사용하고 3대를 이어온 전통방식, 손으로 국물을 짜낸다. 또한, 하루 150그릇만을 만드는 걸 철칙으로 하고 있었다. 좋은 재료로 최고의 콩국수를 손님들에게 내놓기 위한 이 식당의 철학이었다.  수작업으로 걸러낸 콩국수 국물은 걸쭉했다. 오랜 역사를 묵묵히 지켜가는 콩국수 식당은 평화로운 당진시의 농촌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여름 풍경 속 농촌 마을을 찾았다. 누렇게 익어가는 청보리 밭, 그 옆 비닐하우스 극장에서 공연 소리가 들렸다. 인형극 연습이 한창이었는데 지역 어르신들이 함께 하는 극단의 공연이었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들이 대부분인 이 극단의 공연은 가끔 틀리는 장면도 있었지만, 어느 공연에서도 볼 수 없는 정감이 있었다. 어머니들은 일상에서 시간을 쪼개 극단에 모여 인형극을 연습하고 소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머니들은 그 속에서 무료할 수 있는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또한, 이 극단은 주민들 소통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어머니들에게 삶의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들은 외로움을 잊고 노년의 시간을 행복으로 채워가는 중이었다. 이 인형 극단의 이름을 회춘 유랑단으로 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진의 구시가지를 찾았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지역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대장장이 운영하는 대장간이었다. 그의 대장간은 긴 세월 무려 5대를 이어가는 대장간이었다. 그 역시 13살부터 아버지 일을 돕다 대장장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제 칠순의 나이가 됐다. 그 역시 그의 아버지, 그 위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평생을 대장장이로 살았다. 그는 수작업으로 다양한 농기구와 함께 바다가 접한 지역 특성에 맞게 바다에서 사용되는 어구들도 함께 만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대장장이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처로 가득했다. 한 번은 크게 다쳐 일을 못할 상황도 있었지만, 그를 찾는 단골들을 위해 치료를 채 마치지 못하고 대장간으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됐지만, 대장장이는 그를 찾는 단골손님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불과 쇠와 씨름하고 있었다. 이런 책임감과 사명감은 그를 지탱하는 큰 힘이었다. 그렇게 대장간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었다.  

당진 시내 한적한 골목길을 걸었다. 그 길에 고택이 보였다. 그 고택의 마당에 오래된 그리고 커다란 장독이 보였다. 그곳은  전통주를 만드는 양조장이었다. 마침 전통주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양조장은 3대를 이어온 유서 깊은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3년부터 한 장소에서 역사를 이어온 양조장은 이제 지역의 명소가 됐다.

지금 양조장의 사장님은 지역 명사로 선정됐고 이 양조장은 문화여행의 장소가 됐다. 그의 아들이 그의 뒤를 이어가기 위해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이 양조장의 비법 연잎에 있었다. 이 연잎이 들어가면서 전통주의 맛을 깊게 하고 독특한 향이 나도록 한다고 했다. 톡톡 방울방울 기포가 터지며 익어가는 전통주의 모습과 함게 100년 양조장의 또 다른 미래를 위한 또 다른 하루가 채워지고 있었다.  

당진의 포구 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 바다로 나가기 위해 준비 중인  낚싯배가 보였다. 선장님의 배려로 배에 올라 당진의 바다로 나갔다. 배가 향한 곳은 당진의 바다 명소 난지도 해역으로 낚시 명소이기도 했다. 이 배의 선장님은 당진에서 나고 자랐지만, 바다와 먼 내륙에 살았다. 그는 아내와 함께 7년 전 귀촌을 택하고 소난지도라는 섬에 정착했다.

사장님 부부는 도시에서 사업 실패 후, 마음 가득 아픔을 안고 섬 살이를 시작했다. 경험이 없었고 두 부부가 모든 걸 해결하야 하는 상황이 부부에게는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한 번은 아내가 많은 아팠지만, 섬에서 나갈 수 없어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고 신뢰하며 섬에 적응했고 이제는 바다가 편안해졌다. 이제는 일한 만큼 얻을 수 있는 삶이 행복하기만 하다. 그렇게 흘러간 7년의 세월, 부부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졌고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거워 보였다. 부부는 섬에서 멋진 제2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소난지도의 풍경과 함께 하며 걸었다.  섬 이곳저곳의 정감 있는 풍경과 함께 했다. 선착장 인근 개펄에서 바지락 캐는 노부부를 만났다. 80살이 넘도록 섬에서만 살아온 남편, 육지에서 섬으로 시집온 아내의 터전은  개펄과 멀지 않았다. 부부의 집은 잘 정리된 정원이 있었고 섬에서 귀한 가게가 있었다. 

부부는 이 섬에서 섬에서 4남매를 키워냈다. 하지만 집은 가난했고 마을 역시 먹을 물마저 귀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아내는 육지에서 시집와 시집 식구까지 12명의 가족을 챙겨야 하는 고단한 시집 살이를 했다. 남편 역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헌신했다. 그렇게 세월을 흘러 자식들은 장성해 섬을 떠났고 온전히 부부만의 행복한 노년을 꿈꿀 시점에 큰 시련이 찾아왔다.

남편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남편은 점점 기억을 잃었다. 이제는 청년 시절 기억만이 남았다. 그 시절은 힘들고 고된 시간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시절이 지나 보다 여유 있고 행복한 기억이 사라진 남편이 아내는 안타깝기만 하다. 그나마도 자신을 아내로 기억하고 있는 남편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아내는 일부로 남편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사라져가는 남편의 기억들을 조금이나마 더 오래 붙들어 두기 위해 애쓰는 아내의 노력에 하늘에 닿아 이 부부가 보다 행복한 노련을 보내길 기원했다.  

 

 


다시 섬을 떠나 내륙으로 돌아왔다. 여정의 막바지, 큰 저수지가 있는 농촌 마을을 찾았다. 제방 길을 지나 마을 길을 걸었다. 그 길에 딸 부잣집 간판이 붙어있는 식당을 만났다.  마당 곳곳에 핀 꽃들을 보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어머니와 2명의 딸이 식당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집은 말 그대로 딸 부자집이었다. 7녀 1남의 다복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그 다복함은 어머니에게 고단한 삶으로 다가왔다. 8명의 자녀와 병약한 남편, 시댁 식구까지 어머니는 대가족을 챙기며 평생을 살았다. 이를 위해 어머니는 밤낮으로 일했고 자녀들을 챙기지 못했다. 당장은 먹고사는 일이 급했다. 그 한편에서 어머니는 자녀들을 어떻게든 공부시키기 위해 온 힘을 더했다. 하지만 정작 자녀들이 졸업식에는 일 때문에 마땅한 옷이 없어 참석하지 못하는 아픔도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딸들은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두 딸이 어머니의 식당 일을 도우며 가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딸들에게 어머니의 일생의 담긴 이 식당과 이 식당의 주메뉴인 어죽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시절 딸들에게 어머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평생의 한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을 향한 딸들의 원망을 애써 모른척하며 가정의 생계를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때 어머니는 외로웠지만, 이제는 딸들이 있다. 이제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과 함께 한 식당을 지킬 수 있다. 이렇게 50년 넘은 식당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잔잔한 바다와 같은 당진시 안에는 폭풍 같은 인생을 살아온 이웃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시련을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평화로운 풍경 속 큰 시련의 역사를 안고 있는 당진시 그 자체였다. 당진시는 과거 힘든 시절을 지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나가고 있다. 여정 속에서 만난 이들의 삶도 밝은 미래를 꿈꾸는 당진시와 함께 행복으로만 채워지길 기대해 본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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