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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양군은 인근의 봉화, 청송군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 오지다. 영양군의 위치는 태백산맥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 해발고도가 높고 도로 등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에 영양군은 전국에서 가장 면적당 인구, 인구 밀도가 가장 작은 기초 자치단체다. 

인구 역시 17,000여 명 수준으로 기초 자치 단체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이와 관련한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에 영양군은 봉화, 청송군과 함께 영어 약자를 합해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을 뜻하는 BYC(봉화, 영양, 청송)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영양군은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를 이용해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이 있는 관광지로 점점 그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맑은 대기로 인해 영양군은 별 관측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졌고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국제 밤하늘 보호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이 별 관측의 명소가 되면서 지역의 관광명소가 됐다. 또한, 청정한 자연환경 속에서만 사는 반딧불이 서식처가 있어 이를 이용한 반딧불이 생태공원이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76회에서는 이 영양군을 찾아 미쳐 알지 못했던 지역의 매력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낙동강 지류인 영양군의 하천을 따라 펼쳐진 기암괴석의 풍경과 만나며 여정을 시작했다. 하천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진 절벽, 산촌의 모습은 자연의 위대함을 담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잠시 그 풍경을 감상했다. 손자와 함께 인근 공원에 산책 나온 노부부에게 영양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멋진 풍경을 뒤로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한 산촌 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 빛바랜 간판과 건물 외형까지 세월의 흔적을 가득 담은 가게가 보였다. 그 가게는 과거 점방이라 불렸던 곳이었다. 시계도 수리하고 도장도 파주고 일부 생활용품도 판매하는 일종의 만물상이었다. 이 점방의 역사는 50년이 넘었다고 했다. 사장님은 50여 년 전부터 집과 연결된 이 점방을 지키며 살았고 팔순의 노인이 됐다. 

그 사이 마을의 인구는 크게 줄었고 한때 번성했던 점방도 한적해졌다. 이제는 점방을 접어도 될 법도 하지만, 사장님은 이따금 찾아오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점방을 접을 수 없다. 이 점방은 동네 주민들이 유일하게 시계를 수리하고 도장을 팔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사라진다면 노년층이 대부분인 마을 주민들은 읍내로 먼 길을 나서야 한다. 마을 사람들은 오랜 세월 점방을 지키는 사장님이 고맙기만 하다. 사장님에게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큰 힘이 되고 있었다. 사장님은 오랜 세월 함께 마을, 그와 함께 살았던 이웃들을 위해 매일매일 점방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양양군 읍내로 향했다. 영양군의 특산물 중 하나인 고추를 재배하는 고추밭을 지나 걸었다. 그 길에 마을에서 보그 드문 양식당이 보였다. 그 식당을 젊은 부부를 만났다. 부부는 도시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도시에서의 각박한 삶에 지친 부부는 귀촌을 결심했고 아내의 부모님이 계시는 영양군에 새 보금자리를 열었다.

부부는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이용한 양식 요리를 개발했고 그 요리를 주메뉴로 하는 양식당을 열었다. 지역 특성상 어르신들이 많은 곳에서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부부는 큰돈을 벌기 보다 지역에서 함께 하는 식당을 원했다. 부부의 요리는 지역민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입소문을 타고 영양군의 양식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부부의 옆에는 아내의 부모님이 함께 하며 든든하게 이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식재료로 공급해 주고 부부는 그 재료를 요리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식당이었다. 이이 오래전 귀촌을 한 부모님들은 그 경험을 알려주고 부부가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가족의 사랑은 젊은 부부가 이곳에 정착하는 데 있어 큰 힘이 되고 있었다. 

영양의 한옥 집성촌을 찾았다. 과거 한옥들의 잘 보존되고 있었다. 전국 3대 민간 정원으로 꼽히는 영양 서석지 멋진 연꽃 정원과 흙돌담까지 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그 마을에서 이웃들과 만났다. 오래된 한옥을 지키고 살아가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이곳에 시집와 60여 년을 살았다는 할머니는 외부 방문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에게는 당시 어머니들이 겪었던 모진 시집살이도 힘들었지만, 귀한 외동아들이 마음의 짐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난치병을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각지의 병원을 찾았지만, 그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아들이 자신 때문에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자책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들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평생의 소원을 이루고자 하루하루 힘을 내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한옥마을 길을 걸었다. 그 길에 100년 넘은 한옥을 지키며 살아가는 젊은 남매를 만났다.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마을에서 청년을 만나니 반가웠다. 이들을 몇 해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귀촌했다. 평소 티격태격하고 별도 친하지 않았던 말 그대로 현실 남매의 귀촌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남매는 한옥에서 카페를 열었지만, 의견 대립으로 갈등이 깊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은 그런 갈등 속에도 결코 서로를 떠날 수 없었다. 역할을 분담하고 누나가 요리를 전담하는 것으로 하고 카페를 열었다. 

누나는 지역에서 많이 나는 산나물을 기반으로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들었다. 취나물 스콘과 송이버섯이 들어간 음료가 대표적이었다. 이 마을, 한옥과 잘 어울리는 메뉴였다. 남매는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것과 함께 마을 주민으로 녹아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제는 외지인이 아닌 마을 주민으로 제2의 인생을 열어가고 있었다. 이 남매의 귀촌 생활을 응원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어느 산촌 마을을 찾았다. 골목길을 걷다 문이 열린 한 집이 보였다. 그 집 마당에 특이한 모습이 화병이나 각종 공예 작품들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많은 이들이 즐기는 봉지 커피, 믹스 커피의 봉투로 만든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이 집 주인 할아버지의 작품이었다. 할아버지는 믹스 커피 봉투로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남모를 아픔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30대 젊은 나이에 아내와 사별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는 5남매가 남겨졌다. 할아버지는 가정의 생계와 살림을 함께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한때 돈을 벌기 위해 외지로 나가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양육을 위해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으며 5남매를 키워냈다. 그렇게 50여 년의 세월을 흘렀다. 

자녀들을 모두 장성해 각자의 가정을 이뤘고 할아버지는 이 집에 홀로 남았다. 믹스 커피 공예는 자칫 무려할 수 있었던 할아버지의 일상을 채워주는 소중한 일이 되고 있었다. 이 작품은 할아버지의 소일거리이기도 했지만, 그의 인생을 담긴 작품이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인생과 함께 한 그 작품들이 더 소중하게 보였다. 

또 다른 산골 마을을 찾았다. 그 마을에서 헌 신발을 수레에 실어 옮기는 마을 주민이 보였다. 그를 따라 간 집에는 헌 신발들이 마당에 가득했다. 그 신발들은 한 작가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작가는 도시에서 오랜 세월 직장 생활을 했고 은퇴하고  몇 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꿈꿔왔던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헌 신발을 재료로 하는 작품은 그의 예술관이 투영되어 있었다.

다만, 부부는 작품 활동에 매진한 탓에 아직 가족이 거처할 집 공사도 제대로 못하고 작업실 한편에서 숙식을 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었다. 그래도 하루하루가 작가는 행복하기만 하다. 

아직은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고 작품이 크게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런 그의 곁에는 그를 응원하고 함께 하는 가족이 있었다. 가족들은 말 그대로 돈이 안되는 그의 작품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그런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작가는 매일매일 창작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직장 생활 내내 가정의 가장으로 온 힘을 다했고 가족을 지키는 울타리였지만, 이제는 가족들이 그가 제2의 인생을 열어갈수록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고 있었다. 진짜 가족이 무엇인지 이 작가의 가족들로부터 알 수 있었다. 

 

 

 



여정의 막바지 영양군의 명소인 일월산 산중 마을을 찾았다. 마을 곳곳의 집이 폐가가 되고 인적이 드문 마을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그 부부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가장 깊숙한 산중에 자리한 집이었다. 그곳에서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대구에서 살다 산중 마을로 시집을 왔다. 할머니는 우연한 기회에 산중 마을 청년들과 만났고 그중에서 할아버지가 가장 눈에 띄었다. 할아버지는 병으로 몸이 크게 쇠약해진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이런 할아버지가 안쓰럽고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할머니는 도시에서 살다 첩첩산중의 마을로 시집을 왔다. 

시집살이는 고난의 연속이었던 병약한 남편은 병석에 눕기를 반복했다. 힘든 살림살이에 병원을 가기도 힘들었다. 여기에 할머니는 6남매를 부양해야 했다. 할머니는 남편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산나물과 약초를 캤다. 그렇게 캔 산나물과 약초는 남편의 병을 치료하는 치료제가 됐다. 그런 할머니의 정성에 남편은 건강을 회복했다. 하지만 삶의 무게를 홀로 짊어지며 살았던 할머니의 등은 크게 굽어지고 말았다. 그런 몸으로 할머니는 매일매일 농사를 지으며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건강을 되찾은 남편이 할머니와 함께 하고 있어 할머니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헌신을 항상 마음에 담고 여생을 할머니를 위해 살려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를 위해 60살의 나이에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할머니의 기사를 자청했다. 할머니는 이런 할아버지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할머니의 측은지심으로 맺어진 부부의 인연은 힘든 세월을 지나 서로에게 힘이 되는 황혼기로 이어졌다. 조금 늦었지만, 행복으로 채워지는 부부의 삶이 오래오래 이어지길 기원했다. 

이렇게 오지 두메산골로 보였던 영양군이지만, 그 안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도시인들은 이곳의 삶이 불편하고 조금은 측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양군에서 만난 이웃들은 그 속에서 가치 있는 삶을 만들고 있었다. 또한, 마음 한편에 따뜻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영양군의 모습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줬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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