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종전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는 민주주의 미국과 공산주의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 진영이 대립하는 냉전시대가 지배했다. 이 냉전체제는 두 강대국 간 직접적인 대결은 없었지만, 전 세계를 팽팽한 긴장감 속에 몰아넣었다. 양 진영을 대리하는 국지전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세계를 핵 전쟁을 포함해 제3차 세계대전의 위협 속에 살게 했다. 우리 민족 그 민족이 살고 있는 한반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긴 일제 강점기의 시련을 보낸 우리 민족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지만,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아래 남한과 북한에 다른 체제의 정권이 들어섰다. 이후 민족은 분단됐고 6.25 한국전쟁의 큰 전쟁을 겪었다. 이후 한반도는 휴전 체제 속에 분단되어 대립의 세월을 이어가고 있다. 휴전선을 중심으..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했던 전장이었던 동부전선에서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소련의 대결했던 독소전쟁을 재조명하고 있는 역사저널 그날 324회에서는 독소전쟁의 배경과 초반 전투 상황에 이어 전개 과정을 다시 살폈다. 그 과정에서 나치 독일의 잔혹함과 엄청난 희생이 있었던 레닌그라드 포위전과 관련한 비극에 접근할 수 있었다. 1941년 6월 22일 기조의 상호 불가침 협정을 어기고 소련 서부지역 전반에 기습공격을 감행한 나치 독일은 개전 초반 큰 우세를 보였다. 소련은 나치 독일의 침공에 대비가 부족했고 그들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대규모 전차부대를 앞세운 독일의 고속 기동적, 전격전에 소련의 서부 방어선을 붕괴됐고 나치 독일은 소련의 영토 깊숙이 빠르게 진격했다. 3개 집단군으로 구성된 나치 독..
조선의 역사에서 태종 이방원은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소재가 될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그는 조선 건국 이후 신권과 왕권의 대립하는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며 왕권으로 힘은 균형추가 완전히 기울게 했다. 태종 시대 조선은 제왕 중심의 중압 집권제로 강력히 시행했다. 이런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수 많의 희생이 뒤따랐다. 조선 건국을 이끌었던 정도전이 그의 칼에 목숨을 잃었고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건국에 일조했던 공신들 상당수가 피의 숙청을 피하지 못했다.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정치를 꿈꿨다. 권력의 중심은 3정승이 중심된 의정부에 있었고 왕권은 제한됐다. 이성계도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태종은 생각이 달랐다. 이는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태종은 정도전 세력의 숙청에 이에 세자였던 이복동생..
668년 중국과 맞섰던 동아시아의 강국 고구려가 멸망했다. 고구려는 중국 통일 왕조였던 수나라와 당나라와의 계속된 전쟁에서 승리하며 굳건함을 보였지만, 그 전쟁으로 국력은 나날이 쇠퇴했다. 여기에 신라와 당나라가 군사 동맹을 체결하며 고구려는 남쪽과 북쪽에서 동시에 적을 상대해야 했다. 신라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던 백제가 660년 나. 당 연합군에 멸망하면서 고구려는 외교적 고립에 빠졌다. 또한 절대 권력자가 연개소문의 사망 이후 권력층의 내분이 겹쳤다. 고구려의 내분은 나. 당 연합군에 큰 호재였다. 결국, 고구려는 그 운명을 다하고 말았다. 고구려의 멸망으로 고구려가 장악했던 만주, 요동지역은 힘의 공백이 발생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대동강 이남으로 그들의 영토를 한정했다. 당나라는 옛 백제지역과..
지금은 우리 영역이 아닌 만주지역을 호령하던 고구려는 인접 이민족과 중국 왕조들과 국경을 접하면서 그들과의 대결이 불가피했다. 고구려는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기보다는 강하게 맞서며 영토를 넓히고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런 고구려의 성장 배경에는 오랜 세월 계속된 중국의 분열이 있었다. 한나라 멸망 이후 위 진 남북조, 5호 16국의 혼란 속에 고구려는 만주지역의 패권을 공고히 하고 남으로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며 한강유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6세기 삼국 중 가장 늦게 고대 국가로 발전한 신라가 진흥왕 시기 국력을 강화하면서 고구려를 위협했다. 진흥왕의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함께 공격했고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신라는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독자적으로 한강..
현대사의 여러 사건들을 재조명했던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이 다시 고대사의 각 장면들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만주 벌판을 호령했던 고대 왕국 고구려였다. 그 시작은 광개토대왕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대왕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왕은 얼마 없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함께 광개토대왕이 그중 한 명이다. 그만큼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우리 고대사에서 중요했다. 광개토대왕이 재위했던 391년 ~ 413년은 국내외로 격변의 시기였다. 멀리 유럽에서는 로마가 395년 동. 서로마로 분열되면서 절대 왕국이었던 로마제국이 사라졌고 중국은 위 진 남북조, 5호 16국의 혼란기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북방의 이민족들이 세운 5호 16국의 왕조는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며 수시로 충돌했다. 여기에 고구려는 남쪽..